"계엄 예방 못해 깊이 사과"…한동훈, 12·3 비상계엄 1년 만에 고개 숙였다
정치적 상처로 남은 12·3 비상계엄을 둘러싸고 책임 공방이 다시 불붙었다. 1년 전 계엄 국면의 한 축이었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직접 사과에 나서면서, 이재명 대통령을 향한 거센 비판도 함께 쏟아냈다. 여권과 정부를 둘러싼 계엄 책임론과 민주주의 후퇴 논쟁이 다시 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한 전 대표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앞 쪽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하며 "당시 여당 당 대표로서 계엄을 미리 예방하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발언 직후 고개를 숙이며 책임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12·3 비상계엄 당일 국민의힘의 행보를 강조하며 "그날 밤 우리 국민의힘은 바로 저 좁은 문을 통해 어렵사리 국회로 들어가 계엄을 해제하는 데 앞장섰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날 밤, 우리 국민의힘의 공식적인 결단과 행동은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한 비상계엄일지라도 앞장서서 막고 단호하게 국민 편에 서겠다는 것이었음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계엄 발동 이전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한 전 대표는 "민주당은 22번의 탄핵과 함께 국정을 마비시켰다"고 지적하면서도, 당시 야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언급했다. 그는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유죄 판결이 줄줄이 예정돼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버텨내기만 하면 새로운 국면이 열리는 상황이었단 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전 대표는 "그런 상황에서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비상계엄이 모든 것을 망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국민들이 지켜낸 민주주의는 사실 더 나빠졌고 대한민국 사회는 길을 잃고 있다"고 말하며, 계엄 이후 정국이 오히려 후퇴했다고 진단했다.
현 정부를 향한 공세도 이어갔다. 한 전 대표는 "대통령실 특활비는 부활했고, 대통령실 앞 집회는 더 어려워졌고, 실세 측근 비서관은 불러도 국회에 안 나오고 약속했던 특별감찰관은 감감무소식이다"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이 자신의 유죄 판결을 막으려 사법부를 겁박하고 인사 개입하고 검찰을 폐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사법 시스템 훼손을 경고했다.
특히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으로 나라를 망쳤다면 이 대통령은 딱 계엄만 빼고 나쁜 짓을 다 해서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말해, 전임 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을 모두 겨냥하는 강경 발언을 내놨다. 계엄 책임을 윤 전 대통령에게, 현재 국정 혼란 책임을 이 대통령에게 각각 돌린 셈이다.
정치권의 과거 청산과 미래 전략을 둘러싼 메시지도 덧붙였다. 한 전 대표는 "이제 퇴행이 아니라 미래로 가자. 과거 잘못 때문에 미래 희망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내일로 나아가려면 과거의 잘못된 사슬은 과감하게 끊어내야 한다. 반성할 수 있는 용기만이 그 전진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보수 정치의 자기 쇄신을 촉구했다.
당 안팎 논란에 대한 반응도 나왔다. 한 전 대표는 "오늘 당에서 사과라고 보기 어려운 메시지가 나왔다"는 취재진 지적에 "사과받을 분은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이다. 민주당은 이 상황을 만들어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맞받았다. 이어 "국민들이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며 민주당 책임론을 거듭 제기했다.
최근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의혹이 제기된 당원게시판 사건 조사에 착수한 데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는 "미래로 가야 할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퇴행이 아니라 미래로 가야 한다"고만 언급하며 구체적 입장 표명을 피했다. 당내 갈등 이슈로 불거질 소지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내년 6·3 지방선거 역할을 묻는 질문에는 사실상 적극적인 선거 참여 의지를 드러냈다. 한 전 대표는 "저는 국민의힘 정치인이고, 국민의힘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국민의 도구와 힘이 되기 위해 존재하고 일하는 사람"이라며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당 안팎에선 그의 선거 지원과 야권 재편 구상 참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송석준 의원, 배현진 의원, 고동진 의원, 박정훈 의원, 정성국 의원, 정연욱 의원, 진종오 의원, 안상훈 의원 등 이른바 친한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다수 참석했다. 여권 내 한동훈계 집결이 재확인됐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정치권에서는 한 전 대표의 사과와 공세를 둘러싸고 계엄 책임론, 현 정부 민주주의 후퇴 논란, 보수 진영 재편 구도까지 맞물려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국회는 계엄 사태 진상 규명과 제도 보완 논의, 내년 지방선거를 둘러싼 정치적 유불리를 놓고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