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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섬유증 장기관리 필요”…베링거, 환자간담회로 지원 논의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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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난치성 폐질환인 특발성 폐섬유증이 환자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의 삶과 생계 구조를 뒤흔드는 병으로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가 환자와 보호자 목소리를 직접 청취하며 지원체계 논의에 나서면서, 항섬유화제 중심의 장기 치료와 함께 경제·정서적 부담을 포괄하는 통합 관리 모델 필요성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를 국내 희귀호흡기질환 케어 패러다임을 환자 경험 기반으로 재설계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최근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와 보호자를 초청한 특발성 폐섬유증 환자 간담회를 열었다고 4일 밝혔다. 진단부터 치료, 일상 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환자와 가족이 겪는 어려움을 직접 듣고, 국내 치료·지원 환경의 개선 방향을 논의한 자리다. 회사 측은 그동안 임상·의학 중심 논의에 비해 환자 개인과 보호자의 부담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연구와 프로그램이 부족했다는 점에 착안해, 미충족 수요 파악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특발성 폐섬유증은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폐포벽 조직이 점차 굳어지는 섬유화가 진행되는 희귀난치질환이다. 폐 조직이 딱딱해지며 산소 교환 효율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만성 기침과 점진적인 호흡곤란이 나타나 일상생활 전반에 제약을 준다. 초기 증상이 만성 기관지염, 천식 등 일반 호흡기 질환과 비슷해 진단이 수년간 지연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진단 시점에는 이미 폐 기능 저하가 상당 부분 진행돼 있는 사례도 보고된다.

 

IPF의 가장 큰 특징은 폐 섬유화가 비가역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한번 굳어진 조직은 원래 상태로 회복되기 어려워, 질환 경과를 되돌리기보다 악화 속도를 늦추는 관리 전략이 핵심이 된다. 글로벌 진료 가이드라인은 항섬유화제 사용을 표준 치료로 제시하고 있으며, 이 약제들은 폐 기능 감소 속도를 늦추고 급성 악화 빈도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장기 복용이 전제되는 만큼 부작용 관리, 복약 순응도 유지, 경제적 부담 완화가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간담회에서 한국혈액암협회 박정숙 사무국장은 그간 협회가 진행해 온 폐섬유증 환자 지원 프로그램 경험을 공유했다. 박 사무국장은 IPF 환자 상당수가 호흡곤란을 노화나 다른 지병 탓으로 여기며 수년간 1차 의료기관과 여러 진료과를 전전한 끝에 뒤늦게 확진을 받는 사례를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해 치료 시기를 놓치거나, 반복 검사와 전원 과정에서 재정적·정신적 부담이 누적된다고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또 산소치료, 약제비, 정기 검사를 포함한 의료비뿐 아니라, 돌봄과 이동, 주거 환경 조정 등에 드는 간접 비용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호흡곤란 탓에 계단 사용이나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보호자가 상시 동행해야 하는 상황이 잦아지고, 이는 보호자의 근로시간 단축과 소득 감소로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구조적 부담을 완화하려면 의료비 지원을 넘어 심리 상담, 직업 재활, 돌봄 서비스 연계를 포함하는 다층적 환자 지원 체계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호자 자격으로 참석한 A 씨는 IPF가 가족 전체의 생활 리듬을 바꾸는 질환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환자의 호흡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해 하루 일과 전반이 상시 긴장 상태가 되고, 감염 위험을 줄이기 위해 외출, 모임, 여행 등을 엄격히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폐 기능이 떨어진 환자의 경우 마스크 착용 자체도 호흡 부담이 될 수 있어, 실내외 환경을 세심히 조정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A 씨는 장기 치료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크게 체감한다고 밝혔다. 체력 저하로 인해 환자가 직장을 그만두거나 근무 형태를 바꿔야 하는 경우가 많고, 보호자 역시 돌봄을 위해 근로 시간을 줄이거나 경력을 중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IPF를 가족 전체의 소비 패턴과 미래 계획까지 흔드는 질환이라고 표현하며, 의료비와 생계 지원을 함께 고려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청했다.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의약품 접근 및 보건의료 협력부 김배찬 상무는 이번 간담회 내용을 바탕으로 IPF 환자 여정을 전 단계에서 재점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상무는 진단 지연을 줄이기 위한 1차 의료기관 대상 교육, 표준화된 진료 가이드라인 확산, 항섬유화제 접근성 개선 등 의료 시스템 측면의 논의와 함께, 환자와 보호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비약물적 지원 모델도 함께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IPF와 같은 희귀 호흡기질환은 환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연구·투자와 공적 지원이 뒤늦게 따라가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항섬유화제 신약 개발과 병용 요법, 디지털 호흡 모니터링 솔루션 등 기술 기반 관리 수단이 빠르게 등장하고 있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환자와 가족이 체감하는 변화는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에서는 특발성 폐섬유증을 포함한 희귀질환 환자 의료비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으나, 장기 치료와 소득 감소를 동시에 겪는 가정에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활용한 원격 모니터링, 재택 산소요법 관리, 온라인 환자 교육 플랫폼 등 비대면 관리 모델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데이터 기반 질환 관리 솔루션이 활성화될 경우, 환자의 증상 악화를 조기에 포착해 급성 악화를 줄이고 입원 비용을 절감할 여지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IPF 관리 체계 고도화를 위해 정확한 질환 인식과 조기 진단 루트 정비가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호흡곤란과 만성 기침이 지속될 경우 고위험군에 대한 영상 검사와 폐기능 검사를 조기에 연계하고, 진단 이후에는 항섬유화제 치료와 재활, 영양, 정신건강 관리 등을 포함한 다학제 팀 기반 케어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발성 폐섬유증과 같은 희귀 호흡기질환에서 제약사가 환자와 보호자 경험을 체계적으로 듣고 이를 제품 접근성, 지원 프로그램, 정책 제안에 반영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산업계와 의료계, 환자단체, 정부가 함께 장기 관리 모델을 설계할 경우, 폐섬유증 관리 패러다임 전환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산업계는 이번 환자 간담회에서 제기된 목소리가 실제 제도와 진료 환경 개선으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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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베링거인겔하임#특발성폐섬유증#한국혈액암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