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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식 형벌 완화 검토”…식약처, 소상공인 규제 손본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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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기능식품 규제가 소상공인 친화 방향으로 재정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식품의약품 안전 규제를 총괄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건강기능식품 산업의 특성과 소상공인 영업 구조를 반영해 형벌 수준과 절차 규제를 재점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를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유통 확대와 맞춤형 건강기능식품 시장 성장기에 맞춘 “규제 체계 전환점”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28일 열린 식의약 정책이음 지역현장 열린마당 건강기능식품 소상공인편 행사에서 소상공인 대상 규제 합리화를 예고했다. 오 처장은 “소상공인이 안전과는 무관한 절차적 문제로 인해 형벌이 무거웠던 것들은 없는지 살피고, 형벌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며, 현행 규제 항목별로 공중 보건 안전성과 직접 연관된 사안과 절차 위주의 행정 위반을 구분해보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번 정책이음 열린마당은 소상공인연합회에서 ‘국민이 안심하고 현장에 힘이 되는 소상공인 정책’을 주제로 진행됐다. 식약처는 지난 9월부터 의료기기, 수입식품, 화장품, 식품·축산물 등에 이어 다섯 번째 현장 소통 채널로 건강기능식품 영업자를 찾았다. 건강기능식품 분야에서 영세 사업자 비중이 높은 만큼, 직접적인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맞춤형 규제 조정 방향을 찾겠다는 의도다.  

 

행사에는 건강기능식품 분야 소상공인과 관련 단체가 참석해 맞춤형건강기능식품 판매업 운영상 애로사항, 제품 개발·제조·유통 과정에서의 제도 개선 요구,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국민 신뢰 제고 방안 등을 집중 논의했다. 맞춤형건강기능식품은 소비자 건강 상태, 생활습관, 복용 이력 등을 데이터로 수집·분석해 개별 성분과 용량을 조합하는 서비스형 제품으로, 인허가와 표시·광고 기준, 데이터 관리 규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영역이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동일한 건강기능식품이라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맞춤형 조제 여부에 따라 적용되는 규제가 달라 복잡도가 높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참석자들은 인허가와 품목 신고 등을 실제로 담당하는 식약처 담당자와 직접 논의할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식약처가 기존에 공문과 공지 위주로 전달하던 규제 정보를 현장 설명과 질의응답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제도 이해도 제고와 규제 리스크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인허가 심사 기준의 해석 차이, 서류 보완 과정에서의 행정 부담, 소규모 제조시설의 설비 기준 충족 문제 등도 구체 사례 중심으로 공유된 것으로 전해졌다.  

 

오유경 처장은 “건강기능식품 안전관리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제도 개선이 가능한 영역부터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안전성과 직결되는 원료 관리, 이상사례 보고, 제조 위생 기준 등은 엄격하게 유지하되, 중복 서류 제출이나 경미한 절차 위반에 부과되던 과도한 형사 처벌이나 행정 제재는 단계별, 위험도별로 재설계하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는 또 “실무 가이드라인 제공 등 즉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반영하겠다”고 말해, 현장 해석 논란이 잦은 조항부터 세부 지침을 정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건강기능식품 산업이 기능성 원료 개발, 임상 근거 축적, 디지털 헬스케어와의 연계 등으로 고도화되는 흐름과도 맞물린다. 온라인 플랫폼 기반 판매, 구독형 배송, 모바일 문진 기반 추천 서비스 등 IT와 결합한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늘면서, 기존 규제 체계가 제조·유통 분리와 오프라인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소상공인의 상당수는 온라인 쇼핑몰, 라이브커머스, 건강 관리 앱과 연계해 판매하는 만큼, 데이터 활용과 광고 심의, 판매 채널별 책임 소재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가 요구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건강보조식품과 디지털 헬스 서비스가 결합하는 형태가 확산되면서, 표시·광고 규제와 소비자 보호 기조를 유지하되 영세 사업자에 대한 형벌보다는 과징금·시정명령 중심의 행정제재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진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형벌 중심 규제를 합리적으로 손볼 경우, 신뢰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혁신 서비스와 맞춤형 제품 개발이 촉진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건강기능식품은 일반 식품과 달리 인체 기능성에 대한 표시가 허용되는 영역인 만큼, 안전성과 과학적 근거에 대한 엄격한 관리가 필수라는 점도 여전히 강조된다. 형벌 완화가 곧 규제 완화로 오해될 경우, 과장 광고와 불법 유통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제도 개선과 병행해 소비자 대상 정보 제공과 사후 감시,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와의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오유경 처장은 “식약처는 정책 설계 단계부터 국민과 업계의 목소리를 듣는 현장 기반 소통을 더 확대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안전한 건강기능식품 정책과 소상공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건강기능식품 규제 체계가 안전 중심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현장 친화적으로 재설계될 수 있을지, 향후 입법과 하위 규정 개정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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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유경#식품의약품안전처#건강기능식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