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이 쏜 누리호 시대”…정부, 반복발사로 우주산업 전환 가른다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네 번째 발사에 성공하며 한국 우주개발 체계가 민간 중심 구조로 넘어가는 분기점을 맞고 있다. 그동안 정부 연구기관이 주도하던 발사체 개발과 운용에 민간 기업이 본격 합류하면서, 반복 발사를 통한 경험 축적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정부는 6차 발사까지의 계획을 토대로 제작과 운용을 단계적으로 민간에 이양한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5차와 6차 발사가 민간 체제 전환의 안정성과 실효성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주항공청에 따르면 누리호 5차 발사는 2026년 상반기, 6차 발사는 2027년에 이뤄질 예정이다. 두 차례의 반복 발사는 민간 주도 체계가 실제 발사 현장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기능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설정됐다. 한국형발사체 고도화 사업 일정이 6차 발사까지 구성돼 있는 만큼, 정부와 업계는 이 구간을 민간 전환 성공 여부를 가르는 핵심 구간으로 인식하고 있다.

누리호 4차 발사는 27일 새벽 1시 13분에 진행됐다. 주탑재 위성인 차세대중형위성 3호를 목표 궤도인 태양동기궤도에 투입하기 위해 처음으로 야간 발사가 선택됐다. 발사 직후 궤도 투입과 위성 분리가 계획대로 이뤄지면서, 민간이 제작과 조립을 맡은 발사체가 정상 임무를 수행한 첫 사례가 만들어졌다. 발사체 제작을 민간이 전담하는 모델이 실제 운영 환경에서 작동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이번 발사에서 체계종합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 기체 제작을 전담하고 발사 준비 과정에 참여했다. 다만 발사운용 주관은 여전히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맡았다. 한화는 제한된 범위에서 발사운용 인력을 배치해 이전보다 참여 폭을 넓혔다. 3차 발사까지 민간의 발사운용 참여가 제한적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4차 발사는 민간 역할이 제작과 조립을 넘어 발사 과정 일부로 확장된 첫 단계로 평가된다.
정부는 5차 발사부터 민간의 발사운용 비중을 더욱 키울 예정이다. 발사운용 결과 분석과 기술 이전 수준을 반영해 한화의 발사지휘센터와 발사관제센터 투입 인원을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2027년 예정된 6차 발사에서는 발사책임자와 발사운용책임자, 일부 관제 콘솔을 제외한 대부분의 운영을 한화가 담당하는 구조 도입이 목표로 제시됐다. 민간이 제작과 조립을 넘어 실제 발사 운용 전 과정에 걸쳐 주도권을 쥐는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진정근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누리호 4차 발사는 민간 기술 이전과 발사체 신뢰성 확보 관점에서 모두 의미가 크다”며 “반복 발사를 통해 안정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이번 성공이 민간 체제 전환의 핵심 단계가 됐다”고 평가했다.
관건은 6차 이후 발사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다. 발사 간격이 벌어질 경우 막 형성되기 시작한 민간 중심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산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우주항공청은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7차 발사와 이후 연례 발사 계획을 준비 중이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누리호 4차 발사 결과 브리핑에서 “현재 고도화 사업은 6차까지지만 2028년 7차 발사를 계획하고 있다”며 “8차 이후부터는 최소 연 1회 이상 정례 발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발사 빈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 산업 생태계와 인력,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7차 발사를 뒷받침할 누리호 헤리티지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한 점은 변수로 남아 있다. 이 사업은 약 1578억원을 투입해 누리호 1기를 추가 제작하고 2028년 국방 시험위성 2기를 발사하는 계획으로 설계됐다. 2027년 6차 발사 이후 차세대 발사체 시험 발사가 예정된 2031년까지 약 4년간 발생할 수 있는 발사 공백을 채우는 역할을 맡는다. 예타 면제 실패로 일정 지연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제 막 본격화된 민간 주도 체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발사체 산업에서는 반복 발사 경험이 곧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발사 간격이 길어지면 제작과 조립 인력의 숙련도가 떨어지고 협력업체 공급망이 불안해지며 발사운용 데이터 축적도 끊긴다. 우주발사 서비스가 하나의 산업으로 정착하려면 일정한 발사 수요와 주기가 필수적인 이유다.
실제로 누리호 3차 발사 이후 4차 발사까지 2년 6개월 동안 이어진 공백은 인력 이탈과 협력사 부담 증가로 나타났다.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는 “3차와 4차 발사 사이 2년 6개월의 공백 동안 산업 생태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핵심 기술 인력 이탈과 협력사 운영 부담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발사 수요와 예산이 불안정하면 민간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 투자와 인력 양성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책 측면에서도 누리호 이후 체계에 대한 조속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우주공공팀장은 “누리호의 향후 위상을 빨리 정리하고, 이를 뒷받침할 헤리티지 예산을 확보해야 전환 성과를 유지할 수 있다”며 “발사 공백이 길어질 경우 산업 생태계, 운용 인력, 공급망 약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반복 발사와 기술 유지가 민간 체제 안착의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안 팀장은 “누리호를 연구개발 단계에서 마무리할지, 차세대 발사체가 본격 등장하기 전까지 공공과 민간 수요를 떠받치는 상용 발사체로 활용할지는 정책 선택의 문제”라며 “정부 결정에 따라 민간 우주 발사 서비스 산업의 성장 속도와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6차 이후 발사 공백을 줄이기 위한 재정·제도 대안을 병행 검토 중이다. 윤 청장은 “누리호 고도화 사업의 연장선에서 7차 발사 예산을 내년 정부 예산안에 반영할 계획”이라며 “8차 이후에는 적어도 매년 한 번 이상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반복 발사 체계가 실제로 작동해 민간 중심 K뉴스페이스 생태계가 안착할 수 있을지 예산과 제도 논의를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