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헌재 인사검증 지시"…한덕수, 직권남용 기소 파장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헌법재판소를 둘러싼 정치적 충돌 지점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섰다. 헌법재판관 인사검증을 하루 만에 끝내도록 지시했다는 공소장 내용이 드러나면서, 향후 국회와 정치권 공방이 거세질 전망이다.
12일 조은석 내란특별검사팀은 한 전 총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및 직무유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지난 4월 7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내 국무총리 집무실에서 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을 불러 헌법재판관 인선 검토를 지시했다.

한 전 총리는 김 전 수석에게 "내일 국무회의를 통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해야 한다"며 "어떤 사람을 임명할지 추천을 하라"고 말했다고 특검팀은 밝혔다. 이에 김 전 수석은 구두로 이완규와 함상훈을 포함한 10여 명의 법조인 이름을 보고했다.
특검 공소장에 따르면 한 전 총리는 별도 서류 검토나 추가 논의 없이 "이완규, 함상훈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겠다"고 즉석에서 결정했다. 나아가 "내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완규, 함상훈을 지명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검증을 진행하라"고 지시하면서 대통령실 인사검증 절차가 비정상적으로 압축돼 진행됐다고 특검팀은 판단했다.
김 전 수석은 정진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헌법재판관 지명 방침을 보고한 뒤 두 후보자에게 연락해 수락 여부를 확인했다. 이완규 후보자는 연락을 받는 즉시 지명을 수락했다고 공소장에는 적시됐다. 반면 함상훈 후보자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답한 뒤, 같은 날 오후 이원모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재차 연락하자 수락 의사를 밝힌 것으로 조사됐다.
이원모 전 비서관은 이후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들에게 "오늘 중으로 이완규, 함상훈에 대한 인사검증을 완료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한 행정관은 당일 결과 도출이 어렵다고 보고하면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검증, 경찰청 세평조회 및 국가정보원 신원조사 의뢰는 생략하겠다"는 취지로 설명했고, 이 전 비서관은 "그렇게 하라"고 승인했다는 것이 특검의 설명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7일 오후께 두 후보자의 개인정보제공동의서를 받았다. 국세청의 소득 및 납세자료는 이날 오후 9시 50분경 전달됐고, 경찰청의 범죄경력조회는 당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특검팀은 파악했다.
그럼에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과거 인사검증 자료 등을 토대로 검토를 진행해 두 후보자 모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의 검증보고서를 작성했다. 특검팀에 따르면 보고서는 8일 오전 7시경 이 전 비서관에게 최종 보고됐다.
경찰청은 같은 날 오전 9시 11분께 두 후보자에 대한 범죄경력 조회를 실시했다. 검증보고서가 이미 작성된 이후여서, 실질적 검증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다.
한 전 총리는 8일 오전 9시께 헌법재판관 지명 담화문 작성도 지시했다. 이후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직접 담화를 발표하고 이완규, 함상훈 두 사람을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특검팀은 한 전 총리와 정진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주현 전 민정수석, 이원모 전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사건들에 영향을 주기 위한 의도를 공유했다고 보고 있다. 공소장에는 조지호 경찰청장 탄핵심판 등 비상계엄 선포 관련자들의 헌법재판에서 윤석열 정부에 유리한 결론이 나도록 하기 위해 헌법재판관 인선을 서둘렀다는 취지가 담겼다.
통상적인 인사검증 실무에 따르면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검증보고서 회신에는 2∼3주, 경찰청 세평 조회에는 약 1주일, 국가정보원 신원조사에는 약 2주일이 소요된다. 특검팀은 당사자들이 이러한 절차와 기간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부에서 인사검증이 언제부터 진행됐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하루 만에 검증이 이뤄진 것처럼 꾸며 헌법재판관 지명을 밀어붙였다고 적시했다.
특검은 또 한 전 총리 등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하면서, 공직기강비서관실 직원들이 헌법재판관 적격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제없다'는 결론의 검증보고서를 작성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인사검증과 국가정보원의 신원조사를 의도적으로 요청하지 않아 두 기관의 적법한 권리 행사도 방해했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는 헌법재판소 인사가 정권 이해와 직결된 민감 사안인 만큼, 특검 공소장 내용이 공개된 뒤 여야의 공방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는 향후 법사위와 관련 상임위를 중심으로 인사검증 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에 나설 가능성이 크며, 정부는 헌법기관 인사 절차의 신뢰 회복을 위한 보완책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