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 관계"…정동영, 선평화 후통일 기조 재확인
정치적 충돌 지점이었던 남북관계의 방향을 두고 통일부와 학계가 다시 논의를 시작했다. 통일과 평화 중 무엇을 우선할지에 대한 물음은 이번 정국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론조사 수치를 추적해 보면, 남북관계 기조 변화의 이면엔 선평화 후통일을 지향하는 정책 전략이 깔려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통일부·한국정치학회 공동세미나에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정 장관은 김남중 통일부 차관이 대독한 환영사를 통해 남북이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적 두 국가 관계를 이루는 것과 이를 토대로 한 평화공존의 제도화를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정 장관은 "당면한 과제는 남북 간 적대성을 평화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적대 구도를 완화하는 것이 통일 논의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평화 상태의 고착과 제도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장관은 또 "이재명 정부는 대결과 적대에서 벗어나,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공동성장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화공존의 새로운 남북관계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반도 긴장 관리와 경제 협력 확대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남북 합의 이행의 연속성도 강조했다. 정 장관은 "남북 간 과거 합의를 존중하면서 남북관계가 화해협력의 방향으로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도록 평화공존의 규범적 토대를 마련하고,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 추진의 법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군사적 긴장 완화 합의와 경제·사회·문화 분야 합의를 포괄하는 법적 근거를 갖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대북정책이 유지돼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한편 세미나에서 발제에 나선 이유철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대북정책 기조에 대한 여론 흐름을 소개했다. 그는 통일평화연구원이 지난 10월 발표한 2025 통일의식조사 결과를 토대로 "최근 대북 정책의 목표에 관한 여론이 평화가 통일보다 훨씬 우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대북 정책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평화 공존 및 평화정착이라고 답한 비율이 61.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북한의 개혁개방과 남북 경제공동체 통합이라는 응답은 24.6%였고, 남북통일을 꼽은 응답은 13.7%에 그쳤다. 통일을 직접 목표로 제시하는 응답보다, 평화와 단계적 협력을 중시하는 응답이 크게 앞선 셈이다.
이 연구원은 "현재 여론은 선평화 후통일을 선호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두 국가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북이 각각 국가 실체를 인정하면서도, 장기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제언으로 볼 수 있다.
정치권에선 선평화 후통일 기조가 제도화될 경우 남북 대화 재개와 군사적 긴장 완화 정책이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대북 제재 체제와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 등 변수도 여전해, 관련 법적 기반을 둘러싼 여야 논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통일부는 학계와의 논의를 토대로 평화공존을 위한 법·제도적 과제 정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대북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법안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