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거품 아니다”…글로벌 운용사, 2026년까지 위험선호 유지 전망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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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7일, 미국(USA)을 포함한 북미와 유럽(Europe), 아시아(Asia)에 기반을 둔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향후 2026년까지 글로벌 증시에 대해 위험선호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인공지능(AI) 관련 업종의 거품 논란과 경기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주식시장의 강세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자금 운용의 최전선에서 제시된 셈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AI 랠리와 지정학 리스크, 통화정책 전환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시장이 어떤 방향성을 선택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아시아에 본사를 둔 글로벌 운용사 37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 조사에서 30개사는 2026년까지의 증시 전망에 대해 위험선호(Risk-on) 시각을 유지한다고 답했다. 4개사는 긍정·부정 요인이 혼재된 중립적 관점을 제시했으며, 3개사만이 위험회피(Risk-off) 관점에서 방어적 포지션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현지시각 기준 7일 공개된 이 결과는 세계 증시가 이미 상당한 고점 논란에 직면해 있음에도 기관투자가 다수가 여전히 ‘상승 추세 연장’을 기본 시나리오로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운용사 81% “2026년까지 위험선호 유지”…AI 거품 논란에도 증시 강세 전망
글로벌 운용사 81% “2026년까지 위험선호 유지”…AI 거품 논란에도 증시 강세 전망

운용사들이 제시한 낙관론의 배경에는 견조한 글로벌 성장 흐름과 AI 기술 발전에 대한 기대, 완화적 통화정책 전환 전망, 각국의 재정 부양정책이 결합해 주식과 신용(credit) 자산의 상대 매력을 높이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JP모건자산운용의 실비아 셩 글로벌 멀티애셋 전략가는 “견고한 성장과 완화적인 통화·재정 정책에 대한 기대가 우리의 복수 자산군 포트폴리오에서 위험 선호 성향을 뒷받침하고 있다”며 “우리는 주식과 신용 자산에 대한 비중 확대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책금리 인하 기대와 정부 지출 확대가 실물 경기의 급락을 방지해 줄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채권보다 주식과 기업 신용상품의 상대적 수익 기회가 크다고 진단했다.

 

미국 운용사 DWS의 데이비드 비앙코 미국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우리는 현재 진행 중인 강한 주식 상승 추세에 타고 있다”며 “우리는 현재 역발상 투자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장이 과열 구간에 진입했다는 우려 속에서도 일부 기관은 여전히 ‘상승하는 시장을 따라가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앙코 CIO의 발언은 가격 조정 가능성을 인지하면서도, 당분간 추세를 거스르는 매도 전략보다 자산 배분을 통해 위험을 관리하는 방향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낙관론은 AI 관련 종목을 중심으로 뉴욕증시가 거품 구간에 접어들었다는 월가 일각의 경고와 맞물려 나온 것이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AI 수혜주가 주도하는 현재의 상승장이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직전과 유사한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 여파가 여전히 글로벌 교역 구조를 압박하고 있고, 중동과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지정학적 긴장, 각국의 정치 일정 등도 내년 미국 경제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키우는 변수로 지목되고 있다. 이 같은 불확실성 요인은 글로벌 운용사들 역시 위험 요인으로 인정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조사에 응한 다수 펀드매니저는 AI 관련 자산의 거품론과 경기침체 경고가 과장됐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운용사의 85%는 ‘매그니피센트7(Magnificent 7, M7)’과 기타 AI 관련 대형 기술주의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답했다. 블룸버그는 뉴욕증시 기술주 섹터의 주가수익비율(PER)이 10년 평균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지만, 극단적 과열 국면이라 보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과거 닷컴 버블과 달리, 이번 사이클에서는 ‘엔비디아(Nvidia)’, ‘알파벳(구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아마존(Amazon)’, ‘애플(Apple)’, ‘테슬라(Tesla)’, ‘메타(메타플랫폼스)’ 등 대형 기술기업들이 시장 예상을 웃도는 규모의 이익을 지속해서 내고 있다는 점이 핵심 차이로 지목된다. 노던트러스트 자산운용의 안위티 바후구나 공동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는 “기술기업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이를 두고 거품이라고 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주요 AI 관련 기업들은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반도체 수요 확대에 힘입어 매출과 이익이 동반 성장하고 있어, 밸류에이션 부담을 일정 부분 상쇄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이 같은 운용사들의 견해는 AI 관련 기술 투자가 향후 생산성 향상과 산업 구조 개편을 통해 실물경제에도 실질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와 맞물린다. AI 인프라 투자, 소프트웨어 서비스 확대, 로봇·자동화 확산 등이 기업 수익성과 경제 성장률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 투자 판단에 반영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AI 투자 흐름이 일부 소수 종목에 집중될 경우 향후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잠재적 리스크로 거론된다.

 

글로벌 운용사들은 강세장이 미국 증시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유럽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웰링턴 운용의 앤드류 하이스켈 주식 전략가는 “우리는 일본(Japan), 대만(Taiwan), 한국(ROK)을 포함한 지역 전반에 걸쳐 실적 모멘텀의 의미 있는 확대를 보기 시작했다”며 “2026년을 바라보면 유럽은 물론 더 넓은 범위의 신흥시장에서 실적 성장의 부활 가능성이 명확히 보인다”고 말했다. 하이스켈 전략가의 발언은 제조업과 기술 수출에 강점을 가진 동아시아 시장이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실적 개선을 통해 재평가될 수 있다는 관점을 반영한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의 알렉산드라 윌슨-엘리존도 공동 최고투자책임자는 한국 증시의 재평가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한국의 주식시장이 재평가됐는데, 우리는 2026년도에 이와 같은 성격의 시장 재평가가 인도(India)에서 벌어질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시선이 이미 저평가 해소와 구조 개혁 기대가 맞물린 한국, 일본 등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가운데, 인도와 일부 신흥국이 다음 순번의 ‘리레이팅(relating)’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관점은 미국 중심의 투자 자금이 중장기적으로 아시아와 기타 신흥시장으로 분산될 여지가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번 조사 결과는 몇 가지 함의를 던진다. 첫째, 지정학 리스크와 경기침체 논쟁에도 불구하고 기관투자가 다수는 통화정책 완화 전환과 AI 주도 성장 기대를 근거로 위험자산 비중 확대를 선호하고 있다. 둘째, AI 기술주에 대한 거품 우려와 닷컴 버블 재연 가능성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실제 자금 운용 현장에서는 이익 성장과 밸류에이션을 감안해 ‘지속 가능한 강세장’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셋째, 강세장 기대가 미국을 넘어 한국과 일본, 대만, 유럽, 신흥국 등으로 확장될 것이라는 전망은 향후 글로벌 자본 흐름의 다변화를 예고한다.

 

다만 일부 운용사가 여전히 위험회피 관점을 유지하고 있고, 관세 정책 재격화, 지정학 분쟁 악화, 예상을 넘어선 경기 둔화 등 변수가 잠재해 있다는 점은 시장이 피해야 할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국제 금융시장은 향후 주요국 중앙은행의 금리 경로, AI 투자 사이클의 지속 가능성, 지정학 리스크의 강도를 종합적으로 반영하며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제사회와 투자자들은 글로벌 운용사들이 제시한 ‘2026년까지 위험선호 유지’ 시나리오가 실제로 실현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역별 자산시장에 어떤 재편을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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