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암이라 미루다 악화”…갑상선암 조기 진단이 관건
갑상선암이 진행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착한 암’으로 불리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주변 장기로 퍼져 예후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특히 초기에는 특별한 자각증상이 거의 없어 정기적인 초음파 검진 여부가 조기 진단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다. 의료계는 암 크기가 작고 전이 소견이 없는 저위험군에 한해 수술을 미루는 적극적 감시 전략을 활용하고 있지만, 환자 상태와 암의 위치, 병리학적 특성을 종합한 맞춤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산업적으로는 고해상도 초음파 장비와 미세침흡인세포검사 등 진단 기술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흐름이며, 조기 검진 확대에 따라 디지털 헬스 기반의 추적 관리 서비스도 성장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갑상선은 목 앞에 위치한 나비 모양의 내분비 기관으로, 체온 유지와 에너지 대사를 조절하는 갑상선호르몬을 분비한다. 이 부위에 악성 종양이 생긴 질환이 갑상선암이며, 국내에서 가장 흔한 암으로 집계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갑상선암 환자 수는 41만 3573명으로 2020년 36만 6145명 대비 12.9퍼센트 증가했다. 영상 진단 기술 발달과 건강검진 확대가 환자 수 증가의 큰 축으로 지목된다.

갑상선암은 대체로 성장 속도가 느리고 조기에 발견하면 예후가 매우 좋은 편이다. 이 때문에 ‘착한 암’ ‘거북이 암’으로 불려 왔다. 그러나 의료진은 이런 인식이 방심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종양이 커지거나 주변 림프절과 조직으로 전이되면 수술 범위가 넓어지고, 성대 신경이나 기도 손상으로 인한 목소리 변화, 호흡 곤란 같은 합병증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방치 기간이 길수록 치료 옵션이 제한되고, 재발률과 장기적인 기능 저하 위험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초기 갑상선암의 가장 큰 문제는 증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많은 환자가 통증이나 이물감 없이 정기 건강검진 또는 다른 질환 검사를 받다가 우연히 초음파에서 결절을 발견한다. 자각 증상에만 의존할 경우 발견 시기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어, 의료계는 일정 연령 이상 또는 가족력, 과거 방사선 노출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기적인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권고하는 분위기다.
암이 일정 크기 이상으로 진행되면 신체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증상이 목 앞쪽에서 만져지는 멍울이다. 이 결절이 기도를 눌러 숨쉬기 불편해지거나, 성대 신경을 침범해 쉰 목소리가 지속될 수 있다. 음식물을 삼키기 어려운 연하 곤란, 목에 걸린 느낌도 동반될 수 있다. 특히 만져지는 멍울이 매우 단단하고 주변 조직에 고정돼 잘 움직이지 않거나, 이유 없이 목소리 변화가 오래 간다면 신속한 전문 진료가 요구된다.
진단 절차는 대부분 초음파 검사에서 출발한다. 고주파 음파를 이용해 갑상선 구조를 영상으로 확인하면서 결절의 모양, 경계, 내부 에코 패턴, 석회화 여부 등을 평가한다. 악성이 의심되는 소견이 확인되면 미세침흡인세포검사 단계로 넘어간다. 가느다란 바늘을 결절에 찔러 소량의 세포를 흡인한 뒤 현미경으로 관찰해 암 여부를 판정하는 방식이다. 디지털 병리 시스템과 영상 인공지능 분석 기술이 접목되면서 진단 정밀도와 판독 효율이 점차 개선되는 추세다.
갑상선암이 진단됐다고 즉시 수술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암의 크기, 위치, 전이 여부 등 위험도를 분류해 저위험군에 대해 ‘적극적 감시’ 전략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암 크기가 1센티미터 미만이고, 주변 림프절 전이가 없으며, 기도나 성대 신경 등 주요 구조물과 거리가 있는 경우가 대표적인 대상이다. 이 경우 일정 간격으로 초음파 검사를 반복하며 크기 변화나 새로운 전이 소견을 관찰하고, 진행 신호가 확인될 때 수술을 시행한다. 장점은 불필요한 수술과 그에 따른 갑상선 기능 저하, 평생 약 복용 부담, 흉터 문제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든 작은 갑상선암이 감시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암이 후두 쪽에 가깝거나 기도, 식도, 성대 신경과 인접해 있는 경우, 조직학적으로 공격성이 높은 아형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크기가 작더라도 조기 수술이 권고된다. 환자의 나이, 동반 질환, 향후 임신 계획 등도 치료 전략을 결정하는 변수다. 의료진은 영상과 세포 검사, 환자 상태를 종합해 수술과 감시 중 어느 쪽이 장기적으로 유리한지 판단해야 하며, 이를 위해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와의 충분한 상담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수술 방식은 종양의 위치와 범위, 전이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갑상선 전체를 제거하는 전절제와 한쪽 엽만 제거하는 엽절제가 대표적이다. 전절제는 재발 감시와 방사성 요오드 치료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평생 갑상선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엽절제는 남은 갑상선 기능으로 호르몬제를 적게 쓰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만, 재발 감시에서 미세한 변화를 읽어내기가 상대적으로 까다로울 수 있다.
수술 기술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목 앞을 길게 절개하는 개방 수술이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흉터를 줄이기 위한 내시경·로봇 수술이 확대되고 있다. 겨드랑이, 구강, 귀 뒤 등 목을 직접 절개하지 않는 접근로를 활용해 미용적인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고가 장비와 긴 수술 시간, 숙련도 문제 등 해결 과제는 남아 있지만, 로봇 수술 도입 확대는 의료 로봇 산업 성장과 연동되며 수술용 로봇과 3차원 영상 시스템 시장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방 측면에서 갑상선암은 아직 명확한 발병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어린 시절 머리와 목 부위에 과도한 방사선이 노출된 경우 위험도가 높아지는 점은 비교적 잘 입증된 편이다. 가족 중 갑상선암 환자가 있는 경우, 특히 부모나 형제에게 환자가 있다면 유전적 소인이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비만으로 인한 호르몬 환경 변화, 요오드 섭취의 과잉 또는 부족도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식습관 변화와 환경 요인의 복합적 영향까지 고려하면 인구 고령화와 함께 유병률 증가는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우영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균형 잡힌 식단과 꾸준한 운동을 통한 적정 체중 유지, 갑상선 기능을 악화시킬 수 있는 생활습관 개선을 강조했다. 그는 갑상선암에 뚜렷한 예방법이 없는 만큼 조기 발견이 사실상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자 치료 전략이라며, 정기적인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통해 상태를 점검하고 이상 소견이 보이면 신속하게 전문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헬스케어 업계에서는 갑상선암 환자 증가와 적극적 감시 대상자의 확대를 디지털 헬스와 정밀의료 시장 확대 요인으로 본다. 초음파 영상과 세포 검사 결과를 장기간 추적 관리하는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 위험도에 따른 맞춤 추적 주기를 제시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이동형 초음파 장비를 활용한 지역사회 검진 모델 등의 수요가 늘어날 수 있어서다. 다만 과잉 진단 논란과 의료비 증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병행되고 있어, 향후에는 고위험군 선별과 진단 기술 고도화를 통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암을 정확히 걸러내는 방향으로 제도와 기술이 함께 조정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갑상선암을 둘러싼 검진·진단·치료 전 과정에서 기술 발전과 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는 데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기술과 장비가 아무리 앞서가더라도, 실제로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 적정 진단과 치료 기준이 마련되지 않으면 부담만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의료 현장의 경험과 데이터, 규제와 산업 전략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갑상선암 관리 패러다임이 재편될지가 향후 관전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