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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값 더 내리겠다”…정부, 제네릭 약가 손질에 신약 투자 위기론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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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가격 인하를 골자로 한 정부의 약가 제도 개편안이 제약바이오 기업의 수익 구조와 신약 개발 투자를 동시에 압박하는 방향으로 설계되면서 산업 전반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내세우지만, 매출과 이익의 기반인 제네릭 가격이 대폭 깎일 경우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 재원이 줄어들어 중장기적으로는 신약 파이프라인과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약가 경쟁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 있지만, 제도 설계에 따라서는 국내 제약바이오 생태계의 성장 동력을 되레 꺾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28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제네릭과 특허 만료 의약품의 건강보험 약가 산정 비율을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53.55%에서 40%대로 낮추는 내용을 포함한 약가제도 개선 방안을 보고했다. 정부는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 수준을 주요국과 비슷한 선으로 조정하겠다는 입장으로, 신규 제네릭의 보험가격을 오리지널 대비 40%대에서 책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미 건강보험 목록에 등재된 기등재 의약품 가운데 인하 대상 품목은 약 3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40%대까지 낮추는 일정이 제시됐다. 2012년 제도 개편 이후 최초 산정가인 53.55% 수준이 유지돼 온 약제들이 우선 조정 대상이며, 업계는 수천 개 품목이 여기에 포함될 것으로 추산한다. 다만 공급 안정성이 필수적인 일부 약제는 예외로 두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오리지널 대비 53.55~50% 구간에 있는 제네릭은 2026년부터 조정에 착수해 2028년 40%대로 인하되고, 50~45% 구간 제네릭은 2027년 조정을 시작해 2029년 40%대까지 떨어질 예정이다. 제네릭 최초 등재 시 일률적으로 주던 가산 혜택은 폐지하는 대신, 혁신성과 수급 안정 기여도에 따른 선택적 우대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개량신약과 복합제,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산정·가산 제도는 현행을 유지한다.

 

제약바이오업계는 제네릭 가격 구조를 직접 손보는 이번 개편이 연구개발 재원 구조 자체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입장문에서 정부가 혁신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면 산업 현장의 의견을 보다 폭넓게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신약을 제외한 의약품의 약가 산정 기준을 53.55%에서 40%대로 일괄 하향하는 방안은 산업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 신중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비대위는 국내 제약기업 100곳의 최근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이 4.8%, 순이익률은 3%에 그치는 상황에서도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을 위해 R&D 투자를 확대해 왔다고 설명한다. 약가 산정 기준을 계획대로 낮출 경우 기업의 신약 연구, 공장과 설비 투자, 인력 확충에 사용되던 핵심 재원이 줄어들어 신약 개발 지연과 생산 인프라 위축, 글로벌 진출 동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저가 필수의약품 시장이 먼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비대위는 약가가 원가 수준까지 더 떨어질 경우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낮은 필수의약품 생산을 우선 축소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럴 경우 수입 의존도가 커지고 필수 의약품의 일시적 공급 중단과 품절 가능성이 늘어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의약품 공급망 안정성 제고라는 정책 목표와 상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12년 정부가 약가를 평균 14% 일괄 인하했을 때의 경험도 다시 소환되고 있다. 당시 학계의 사후 분석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은 단기적으로 절감됐지만, 기업들이 비급여 의약품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대응하면서 국민이 실제 부담한 약값은 오히려 1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이번 개편도 비슷한 구조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신약 개발에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투입하는 대형 제약사일수록 충격이 커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등재 의약품 가격 인하는 곧바로 손익에 반영돼 R&D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존에 최고가를 받아 온 제네릭은 약가가 10%포인트 안팎 더 하락할 수 있어 대형 제약사의 수익 기반이 직접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주요 대형사는 매출의 15% 이상을 R&D에 투입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 기업이 신약 파이프라인을 꾸준히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정부가 병원과 약국의 저가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확대를 검토 중인 저가구매 장려금 제도도 산업계 압박 요인으로 꼽힌다. 저가구매 장려금은 병원과 의원, 약국이 의약품을 보험 급여 상한가보다 낮게 낙찰받을 경우 그 차액 일부를 인센티브로 지급하는 구조다. 이번 개편안에는 민간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병의원, 약국에 대한 장려금 지급률을 현행 20%에서 50%로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업계는 이 제도가 공공조달 시장에서 초저가 입찰 경쟁을 촉발했던 과거 사례를 재현할 수 있다고 경계한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과거 이른바 1원 낙찰 사태처럼 대형병원 입찰을 따내기 위한 극단적인 저가 경쟁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병원이 더 많은 장려금을 받기 위해 제약사에 상한가보다 훨씬 낮은 공급단가를 요구하면, 병원 거래를 포기하기 어려운 다수 제약사는 이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약가 인하 제도와 맞물려 이중으로 가격을 낮추는 메커니즘을 만들 수 있고, 특히 병원 매출 비중이 큰 기업에 구조적 부담을 줄 수 있다.

 

반면 정부는 약가제도 개편에 공급망 안정과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한 보완 장치도 포함했다는 입장이다.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환자 특성을 반영해 가격과 급여 조건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약가 유연계약제 도입, 퇴장방지의약품 제도 내실화, 기존 사후관리 체계 정비 등이 대표적이다. 특정 치료제의 가격 위험을 정부와 기업이 분담하는 방식이 확산될 경우 고가 치료제 접근성이 일부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약가 인하를 통한 건강보험 재정 절감과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이라는 두 목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에 정책이 서 있다고 본다. 비대위는 특히 R&D 투자 비율이 높은 기업이나 공급 안정에 기여한 기업에 대해선 약가 우대 정책이 체감 가능한 수준으로 강화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실제로 성과 기반 약가 가산이나 조건부 가격 유지 등 정밀 설계가 이뤄질 경우, 재정 효율화와 혁신 투자 유인이 일정 수준 균형을 맞출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재정 절감 효과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중장기적으로 국산 신약 개발과 생산기반 유지 비용이 해외 의존도 증가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도 설계 과정에서 혁신·수급 안정 기여도, 기업 규모별 부담 능력, 필수의약품 카테고리별 손익 구조를 세밀히 반영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산업계는 결국 이번 약가제도 개편이 실제 시장에 어떤 속도로, 어떤 보완책과 함께 안착할지에 따라 국내 제약바이오 생태계의 향후 10년 방향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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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제약바이오산업#약가제도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