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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장기기증 통합관리”…한국장기조직기증원, 이식 안전망 강화 주목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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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20대 청년이 장기기증을 통해 3명의 생명을 살리면서 국내 장기이식 관리 시스템과 바이오 의료 인프라의 중요성이 다시 주목되고 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이식 지정 의료기관은 뇌사 추정 단계부터 장기 적출, 이식 대기자 연계까지 전 과정을 의료정보 시스템으로 통합 관리해 장기 손상 최소화와 이식 성공률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국가 단위 장기이식 네트워크가 향후 유전자·면역정보 기반 정밀의료, 이식 적합도 예측 기술과 결합될 경우 이식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10월 9일 대전 을지대학교병원에서 22세 기증자 안재관 씨가 뇌사 장기기증을 통해 간과 양측 신장을 이식 대기자 3명에게 제공했다고 2일 밝혔다. 안 씨는 지난 9월 24일 교통사고 후 의식 불명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회복하지 못했고, 의료진의 뇌사 판정과 가족의 동의 후 장기 적출과 이식 절차가 진행됐다. 간과 신장은 손상 시간에 민감한 장기여서, 이식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기증자 상태 모니터링, 장기 기능 평가, 수혜자 매칭이 촘촘한 의료 IT 시스템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뇌사 장기기증 과정은 고도의 의료기술과 데이터 관리가 결합된 복합 바이오 프로세스로 운용되고 있다. 뇌사 판정은 뇌혈류 검사, 심전도 및 뇌파 측정, 반복된 신경학적 검사를 포함하는 다단계 검증 절차를 거친다. 이후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의 네트워크를 통해 기증 가능한 장기의 기능 수치, 혈액형, 기증자 연령 등의 임상 데이터가 표준화된 형식으로 이식 대기자 관리 시스템에 연동된다. 이식 적합도는 혈액형과 체격뿐 아니라 HLA라 불리는 조직 적합성 항원 데이터를 바탕으로 평가되며, 데이터 처리와 매칭 의사결정이 점차 정밀화되고 있다.

 

특히 장기이식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특성상, 장기 적출부터 이식까지 허용되는 허혈 시간 관리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간의 경우 일반적으로 8시간 안팎, 신장은 24시간 전후의 허혈 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여겨진다. 국내 이식센터들은 이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송 경로, 수술실 가동 시간, 이식팀 구성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병원 정보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장기 보존 용액과 저온 체외순환 기술 고도화가 이뤄지면서 이식 준비 시간의 유연성이 다소 확대됐고, 일부 해외 의료기관에서는 장기를 체외에서 인공적으로 혈류를 순환시키는 기계적 관류 장비도 도입되고 있다.

 

장기기증 인프라는 향후 정밀의료와 바이오 데이터 산업 전반과도 연결될 전망이다. 이식 대상자와 기증자의 유전자 분석, 면역 반응 예측 모델, 장기 기능 장기추적 데이터는 인공지능 기반 거부반응 예측, 맞춤형 면역억제제 조합 설계 등으로 확장될 수 있는 자산으로 평가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국가 이식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장기별 생존율, 합병증 발생률, 치료 패턴을 분석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며,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모델이 수술 시점과 약제 조합을 제안하는 시범 사례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장기이식 관련 데이터의 활용 범위를 넓히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장기기증과 이식 정보는 강도 높은 민감정보에 해당해 개인정보보호법, 바이오 데이터 관련 지침 등 다층적인 규제의 적용을 받는다. 의료계는 기증자와 수혜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면서도 임상연구에 필요한 범위에서 비식별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 가이드라인 정비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장기기증 동의 절차에서 데이터 활용 범위까지 명확히 고지하고 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투명성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같은 공공 성격의 기관은 현재 장기기증 건별 임상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동시에 기증자 유가족 지원, 사회 인식 개선 캠페인 등도 병행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장기기증과 이식 과정이 지속 가능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생명윤리와 데이터 활용 사이의 균형을 잡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한 대학병원 이식외과 전문의는 생명을 잇는 장기기증은 고도의 의료 기술과 정교한 정보 시스템이 뒷받침되는 영역이라며, 향후 정밀의료와 디지털 헬스 기술이 본격 도입되면 장기이식의 안전성과 효율성이 한 단계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산업계는 장기이식 체계가 첨단 의료기술과 제도 개선을 통해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안착할지 지켜보고 있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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