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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수칙 위반이 화 키웠다"…해군 향로봉함 화재, 인적 과실 결론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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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유 이송 작업을 둘러싼 부실한 안전수칙 준수와 인력 운용 공백이 해군 상륙함 화재와 맞붙었다. 잇단 실수가 겹치며 장병 30여 명이 치료를 받는 사고로 번졌고, 함정은 사실상 퇴역 수순에 놓였다.  

 

해군은 8일 향로봉함 화재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지난 7월 발생한 화재가 보조기관실 근무자들의 안전수칙 미준수와 장비 노후, 인력 구조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인적 과실 사고라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향로봉함에서는 사고 이틀 전 기관부 병사 2명이 보조기관실에서 연료유 이송펌프와 연결된 샘플링 밸브를 열어 휴대용 연료통에 연료유를 채운 뒤 밸브를 잠그지 않았다. 연료 샘플링 후 밸브를 닫아야 한다는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 상태에서 7월 31일 오후, 학군사관후보생 실습 지원을 마치고 진해항으로 복귀하던 중 기관부 하사가 연료유 이송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또 다른 실수를 범했다. 그는 연료유 이송 펌프를 멈추지 않은 채 출구 측 밸브를 먼저 차단했고, 이로 인해 연료유 계통 내 과도한 압력이 형성됐다. 펌프를 정지한 뒤 밸브를 잠가야 하는 절차를 어긴 것이다.  

 

압력이 높아지면서 열린 상태로 남아 있던 샘플링 밸브에 연결된 호스가 파열됐고, 연료유가 에어로졸 형태로 보조기관실 내부에 분사됐다. 해군 사고조사위원회는 이 연료유가 인접 발전기 고온부와 접촉하면서 폭발성 화재가 발생했다고 결론 내렸다.  

 

연료유 이송 과정에서 정유기 사용이 원칙임에도 이송 펌프를 병행 사용해 온 관행도 드러났다. 정승일 해군 사고조사위원장 준장 진은 "향로봉함의 경우 장비인 정유기가 노후해 작업 시간이 짧은 이송 펌프를 같이 사용해왔다"고 설명했다.  

 

인력 구조의 왜곡도 사고 배경으로 지목됐다. 향로봉함 기관부의 이상적인 편성은 원사 1명, 중사 1명, 하사 5명, 병 5명이지만, 사고 당시에는 원사 1명, 상사 4명, 하사 1명, 병 5명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정 위원장은 "하사들이 작업할 때 중사들이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며 알려줘야 하는데 중사가 없다 보니 미흡했다"고 말했다.  

 

이번 화재로 연료유 이송 작업을 담당하던 하사 1명이 우측 팔과 몸에 3도 화상을 입어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 중이며, 그 외 35명은 연기흡입 등으로 치료를 받았다. 해군은 현재 이들의 건강 상태에는 이상이 없다고 전했다.  

 

해군은 화재 당시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승조원과 지원 부대가 신속하게 대응해 인명 피해 확대를 막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진화 완료까지 만 하루 이상이 걸린 배경으로는 함정 장비 노후화와 친환경소화기 부족이 지목됐다. 소화기 비치 실태와 관련해서는 해군 수사단에 수사를 의뢰했다.  

 

1997년 394억원을 들여 건조된 2천600t급 상륙함 향로봉함은 설계상 사용 연한 30년을 고려하면 약 4년을 더 운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화재로 함교, 기관조종실, 승조원 생활 구역 등 주요 구역이 광범위하게 손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해군 관계자는 "손상 장비의 복구에 드는 비용이 복구 후 활용 가치보다 높다"고 설명하며 도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해군은 샘플링 밸브 안전조치 강화, 연료유 이송 절차 매뉴얼 보완, 정유기 등 핵심 장비 교체 검토 등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 이행 중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사고조사 결과에 따라 관련자에 대한 후속 조치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다른 함정으로 사고가 번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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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향로봉함#정승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