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2 표적 다중항체”…셀트리온, 美 1상 승인으로 항암 신약 가속
HER2 표적 다중항체 기술이 면역항암제 시장의 경쟁 구도를 흔들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셀트리온이 미국 식품의약국 FDA로부터 다중항체 기반 항암 신약 후보의 임상 1상 승인을 받으면서, 국내 기업의 차세대 T세포 인게이저 플랫폼이 글로벌 무대에서 검증을 받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업계는 전임상 단계에서 확인된 안전성 개선과 치료지수 확대를 향후 임상 성패를 가를 핵심 요인으로 보고, 글로벌 면역항암제 개발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셀트리온은 미국 바이오텍 에이비프로와 공동 개발 중인 다중항체 면역항암제 CT-P72·ABP-102에 대해 FDA로부터 임상시험계획서 IND 승인을 획득했다고 29일 밝혔다. 승인 대상은 미국에서 진행될 임상 1상으로, 초기 단계에서 안전성, 내약성, 약동학 및 초기 유효성을 순차적으로 평가한다. 셀트리온은 글로벌 임상 설계에 착수했으며 내년 중 실제 환자 투여를 시작할 계획이다.

CT-P72·ABP-102는 HER2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 2를 표적하는 다중항체 기반 T세포 인게이저 TCE 구조로 설계됐다. T세포 인게이저는 한쪽 팔로는 암세포 표면 항원을, 다른 한쪽 팔로는 면역세포인 T세포 표면의 CD3를 동시에 결합해 두 세포를 물리적으로 근접시키는 항체 약물이다. 이를 통해 T세포가 암세포를 정밀하게 인식하고 공격하도록 유도해 항암 효과를 내는 면역항암제 플랫폼으로, 기존 항암화학요법 대비 표적성과 면역 활성화 측면에서 차별점이 큰 기술로 평가된다.
셀트리온과 에이비프로는 CT-P72·ABP-102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기술적 과제를 동시에 겨냥했다. 첫째는 HER2 발현량에 따른 선택성을 높여, 종양에서는 강한 항암 효과를 유지하면서 정상 조직에서는 독성을 줄이는 것이다. 둘째는 CD3 결합 친화도를 세밀하게 조정해 과도한 T세포 활성화로 인한 사이토카인 방출증후군 CRS 발생 위험을 낮추는 방향이다. 다중항체 엔지니어링을 통해 이 두 요소를 구조적으로 조절한 것이 이번 후보물질의 핵심 설계 전략이다.
전임상 단계에서 확보한 데이터는 이러한 설계 의도를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미국 메릴랜드에서 열린 미국면역항암학회 SITC 2025에서 CT-P72·ABP-102의 전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HER2가 많이 발현된 세포주와 적게 발현된 세포주를 동시에 이식한 동시 이식 마우스 모델에서 HER2 고발현 종양에 대해 뚜렷한 항종양 효과가 관찰됐다. 반면 HER2 저발현 세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반응성이 낮게 나타나, 표적 선택성이 구조 설계대로 구현됐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안전성 지표도 기존 T세포 인게이저 계열 약물의 난제를 의식한 설계 결과가 드러난 대목으로 풀이된다. 전임상 평가 과정에서 HER2가 낮게 발현하는 정상 세포에서 우수한 내약성이 확인됐고, 영장류 독성 시험에서는 80밀리그램 매 킬로그램 수준의 고용량에서도 특이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다. T세포를 과도하게 자극할 경우 유발될 수 있는 전신 염증 반응이 억제되면서, 동물 모델에서의 전반적 안전성 프로파일이 양호했다는 의미다.
업계는 특히 CT-P72·ABP-102의 치료지수 확대에 주목하고 있다. 치료지수 TI는 유효 용량과 독성 용량 간의 간격을 수치로 표현한 개념으로, 항암제 개발에서 안전한 투여 범위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셀트리온에 따르면 동일 기전인 HER2 표적 T세포 인게이저 약물들과 비교했을 때 CT-P72·ABP-102는 전임상 단계에서 치료지수가 유의미하게 넓어졌다. HER2 선택성과 CD3 결합력 조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효능을 확보하면서도 부작용 발생 기준 용량을 끌어올린 결과로 해석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HER2 표적 면역항암제와 T세포 인게이저 플랫폼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존 항체약물접합체 ADC, 단일클론항체 mAb에 이어 다중특이 항체와 TCE 계열 파이프라인이 빠르게 확장되는 추세다. 특히 대형 제약사들은 HER2 양성 유방암, 위암뿐 아니라 HER2 발현 수준이 중간이거나 낮은 암종으로 적응증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구조의 다중항체를 앞다퉈 개발 중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셀트리온의 CT-P72·ABP-102는 HER2 고발현 암에 초점을 맞추되, 독성 관리를 통해 임상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전략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T세포 인게이저 계열 항암제는 탁월한 효능만큼이나 면역 관련 부작용 리스크로 인해 규제 당국의 심사가 보수적으로 이뤄지는 영역이다. 미국 FDA와 유럽 규제당국은 사이토카인 방출증후군, 신경독성, 면역계 과활성 등 잠재적 안전성 이슈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초기 임상 단계에서의 용량 증량 설계와 환자 모니터링 체계를 중요하게 본다. CT-P72·ABP-102 역시 전임상에서 확보한 안전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되, 실제 환자 집단에서의 면역반응 패턴을 정밀하게 추적해 약동학과 약력학 프로파일을 규명하는 작업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국내 관점에서는 셀트리온의 이번 IND 승인이 항체 바이오시밀러 중심이던 포트폴리오에서 혁신 신약 중심의 파이프라인으로 이동하는 신호로 읽힌다. 셀트리온은 자가면역질환, 종양 분야에서 항체 개발 경험과 대량 생산 인프라를 축적해 왔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T세포 인게이저, CAR T, 이중 및 다중특이 항체 등 차세대 면역항암 플랫폼으로 경쟁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다중항체 기술을 확보해 전임상 단계에서 설계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후발주자로서의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계기로 평가된다.
시장성 측면에서 HER2 표적 항암제는 이미 검증된 상업 시장을 형성하고 있어, 후속 세대 기술의 진입 여지 역시 크다. 기존 치료에 불응하거나 내성이 발생한 환자군, 중간 또는 저발현 HER2 암종 등은 여전히 미충족 수요가 높은 영역이다. T세포 인게이저는 환자 혈액 내 면역세포를 직접 활용해 종양을 공격하는 기전이기 때문에, 기존 항체나 ADC와 병용요법 또는 시퀀스 전략을 구성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전문가들은 CT-P72·ABP-102가 임상에서 의미 있는 안전성 프로파일과 초기 반응률 데이터를 제시할 경우, 글로벌 제약사와의 공동개발이나 라이선스 아웃 협상에서도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규제 환경 변화도 변수다. 미국에서는 면역항암제와 T세포 인게이저에 대한 개발 가이드라인이 계속 보완되고 있고, 동반진단과 바이오마커 기반 환자 선별 전략을 전제로 임상 설계가 정교해지는 추세다. 향후 CT-P72·ABP-102가 HER2 발현 수준, 이전 치료 이력, 병용요법 여부 등에 따라 세분화된 적응증 전략을 취할 경우, 규제 당국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임상 단계별 요구사항을 조율하는 작업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셀트리온은 이번 IND 승인을 기점으로 다중항체 기반 항암제 개발을 가속화하고 면역항암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회사 관계자는 다중항체 플랫폼을 활용해 HER2 외 다른 종양 관련 표적과 면역세포 활성 인자를 조합하는 후속 파이프라인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했다. 업계에서는 CT-P72·ABP-102의 초기 임상 결과가 셀트리온의 다중항체 기술력과 글로벌 면역항암 시장 진입 속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셀트리온이 확보한 전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CT-P72·ABP-102가 실제 환자 대상 임상에서 어느 수준의 안전성과 효능을 입증할지 주시하고 있다. 기술의 정교함뿐 아니라 글로벌 임상 운영 능력, 파트너십 전략, 규제 대응 역량이 맞물려야 차세대 면역항암제 시장에서 지속적인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과 규제, 치료 효과와 안전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기업의 전략이 곧 새로운 성장 동력을 좌우하는 조건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