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9만달러 지지선 붕괴…비트코인, 고래 이탈과 레버리지 청산에 나홀로 하락

한유빈 기자
입력

비트코인 가격이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9만달러 아래로 내려가며 투자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라는 전통적 호재가 나온 직후 나타난 급락은 단기 조정을 넘어 구조적 피로 누적 신호로 해석된다. 뉴욕 증시가 사상 최고 수준을 위협하는 랠리를 이어가는 동안 비트코인은 나홀로 하락세를 보이며 다른 위험자산과의 동조성이 약해지는 양상이다.

 

12일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비트코인은 9만4,490달러 선에서 2.7퍼센트 이상 하락해 9만달러 아래로 밀렸다. 국내 원화 시장에서는 같은 날 1억3,700만원 안팎에서 거래됐지만, 달러 기준 가격은 8만9,000에서 9만3,000달러 사이를 오가는 불안정한 흐름이 이어졌다. 불과 며칠 전 9만5,500달러를 돌파하며 재차 신고가 영역을 두드리던 흐름에서 급격히 방향을 튼 모습이다.

독자 노선인가, 여전한 커플링인가…美 연준 Fed 앞에 선 비트코인
독자 노선인가, 여전한 커플링인가…美 연준 Fed 앞에 선 비트코인

가격 급락의 배경에는 레버리지 과잉과 온체인 구조 변화가 동시에 자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13일 토큰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최근 몇 분 사이 수천달러씩 출렁이는 급등락 끝에 8만9,600달러까지 밀렸고, 이 과정에서 하루 4억1,500만달러 규모의 레버리지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다. 단 한 시간 동안 1억6,300만달러가 정리됐고, 하루 새 12만명이 넘는 트레이더가 포지션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과도한 레버리지가 만든 청산 도미노가 매도세를 증폭시키며 단기 지지선 확인조차 쉽지 않은 장세가 연출됐다는 평가다.

 

기술적 가격 구조를 보면 9만4,000에서 9만5,000달러 구간은 여러 차례 돌파를 시도했다가 되밀린 강한 저항선이다. 12일 저녁 기준 분석에서는 비트코인이 명확한 하락 채널에 갇혀 8만2,000에서 10만6,000달러 범위의 중단 영역으로 후퇴한 상태로 평가됐다. 일간 차트에서 9만4,000달러 이상에서의 종가 마감이 이뤄지지 않는 한 중기 추세는 약세로 남을 것이란 관측과 함께, 8만2,000에서 7만9,000달러 사이가 다음 주요 방어 구간으로 제시됐다. 4시간 차트에서는 상승 추세선과 9만3,000에서 9만4,000달러 정체 구간 사이에서 수렴 패턴이 형성되며 한 차례 더 큰 변동성을 예고하는 압축 국면에 진입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수급 주체의 변화도 주목 대상이다. 온체인 데이터와 주문 흐름 분석에 따르면 최근 몇 달간 비트코인 유통량은 빠르게 제도권 대형 투자자와 기관에 집중되는 추세다. 14일 글래스노드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서는 상장사와 정부, 현물 ETF, 거래소 등 기관이 보유한 비트코인이 약 594만개로 전체 유통량의 약 3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사만 놓고 보면 스트레티지가 66만624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1만624개를 추가 매입하는 등 기업의 대량 보유 전략도 이어지는 흐름이다.

 

다만 단기 가격 국면만 놓고 보면 그림은 다르다. 11만달러 선에서 현재 구간으로 내려오는 동안 주요 현물 거래소의 평균 주문 규모는 눈에 띄게 축소됐다. 차트 상에서 과거 저점을 형성할 때 등장하던 대형 매수·매도 블록 대신 소규모 주문 클러스터가 촘촘히 쌓이는 모습이다. 과거 바닥 구간에서 시장의 방향을 결정하던 고래 거래가 사라진 자리를 개인 투자자의 소액 매매가 메우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온체인 분석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과거에 한 차례 더 깊은 하락과 투매 국면을 거친 뒤에야 바닥 형성 패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한다.

 

연준의 금리 인하도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는 예전만큼의 호재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10일 연준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이후 뉴욕 증시에서는 다우와 나스닥, S앤피500이 동반 상승하는 안도 랠리를 연출했지만, 비트코인은 오히려 9만달러를 하회하며 탈동조화 흐름을 보였다. 블룸버그는 위험자산 전반에 대한 수요 둔화 우려 속에서 비트코인이 박스권 하단을 시험하고 있다고 분석했고, 국내 공포·탐욕 지수는 29까지 떨어지며 투자 심리가 공포 국면에 머물러 있다는 지표도 나왔다. 전통 금융시장이 연준 완화 기조를 재평가하며 상승세를 이어가는 동안 디지털 자산 시장은 신뢰 회복에 실패한 채 혼자 흔들리는 형국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구조적 차원에서는 비트코인의 제도권 편입 속도가 오히려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세계 최대 비트코인 보유 상장사로 꼽히는 스트레티지는 나스닥100 정기 변경 과정에서 지수를 유지하며 비트코인을 핵심 자산으로 삼는 상장사 비즈니스 모델이 일정 부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 은행과 투자은행들은 단기 목표가를 하향 조정하면서도 장기 강세 전망은 유지하고 있고,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와 디지털 자산 전략을 내세우는 글로벌 기업도 꾸준히 늘어나는 흐름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하락이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 투자 문화와 시장 구조가 함께 바뀌는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통증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레버리지 중심 투기 문화는 대규모 강제 청산을 거치며 조정을 요구받고 있고, 기관과 고래의 장기 보유 구조는 시장을 더 느리고 무겁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8만5,000달러 안팎의 방어선이 유지될지, 9만4,000달러 위에서 다시 숨 고르기에 나설 수 있을지와 무관하게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더 높은 가격이 아니라 더 두터운 신뢰와 건전성이라는 점이 이번 조정을 통해 다시 확인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향후 비트코인 가격 흐름은 추가 금리 인하 경로와 글로벌 위험자산 선호도, ETF 자금 유입 추이 등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연말까지 예정된 주요 거시 이벤트와 당국 규제 논의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유빈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비트코인#스트레티지#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