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46조원 몰린 암호화폐 ETF”…미국, 블랙록 독주 속 돈의 이동 시작되나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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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2025년 12월 말, 미국(USA) 암호화폐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연말 조정장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자금 유입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디지털 자산이 제도권 금융에 깊숙이 편입되는 흐름 속에서, 블랙록(BlackRock)으로 자금이 치우치는 현상이 심화되며 시장 구조 변화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이번 흐름이 미 금융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자산 투자 흐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코인텔레그래프는 2026년 1월 1일 보도를 통해 “2025년 말 암호화폐 시장이 비틀거렸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투자자들은 총 317억 7000만 달러, 약 46조 2250억 원을 암호화폐 ETF에 쏟아부었다”고 전했다. 영국(UK) 기반 파사이드 인베스터스(Farside Investors)의 집계에 따르면, 비트코인 현물 ETF는 2025년 한 해 동안 214억 달러의 순유입을 기록했다. 다만 2024년 352억 달러 유입에 비해 속도가 둔화된 모습이다. 반면 이더리움 현물 ETF로는 같은 기간 96억 달러, 약 13조 9600억 원이 새로 유입되며 전년 대비 4배 증가를 보였다. 이더리움 상품이 첫 풀타임 거래 연도에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며, 기관 투자자 포트폴리오가 비트코인 단일 자산 중심에서 점차 다변화되는 추세가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 비트코인 현물 ETF로의 자금 집중도가 전년 대비 완화된 반면, 이더리움 ETF로의 유입이 4배 급증하며 기관 자금의 흐름이 다각화되는 '머니 무브'가 관측되고 있다. (사진=톱스타뉴스)
▲ 비트코인 현물 ETF로의 자금 집중도가 전년 대비 완화된 반면, 이더리움 ETF로의 유입이 4배 급증하며 기관 자금의 흐름이 다각화되는 '머니 무브'가 관측되고 있다. (사진=톱스타뉴스)

시장 확대의 또 다른 축은 알트코인 ETF다. 2025년 10월 말 출시된 솔라나(Solana) ETF는 약 7억 6500만 달러를 끌어모으며 단기간에 시장에 안착했다. 이어 리플(XRP)과 라이트코인(Litecoin) ETF도 하반기 잇따라 상장되며, 암호화폐 ETF 투자 대상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넘어 확장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보도에 따르면 친암호화폐 성향의 미 행정부 출범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리더십 교체가 승인 절차를 빠르게 진전시키며, 그동안 높은 규제 장벽에 막혀 있던 기관 자금의 진입 통로가 넓어졌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그러나 시장 전체 유입이 늘어나는 가운데 자산운용사별 성적표는 극명하게 갈렸다.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인 IBIT는 2025년에만 247억 달러, 약 35조 9300억 원을 끌어들였다. 이는 2위 사업자인 피델리티(Fidelity)의 비트코인 ETF(FBTC)와 비교해 약 5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치다. 미국 금융 전문 매체 블룸버그(Bloomberg)의 ETF 분석가 에릭 발추나스는 “악재가 겹친 해에도 250억 달러를 모았다면, 호황기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분석은 블랙록 상품에 대한 신뢰가 경기 변동과 시장 조정에도 불구하고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블랙록을 제외한 나머지 비트코인 ETF 운용사들은 순유출 압박에 시달렸다. 보도에 따르면 블랙록을 뺀 9개 비트코인 ETF에서는 2025년 한 해 동안 총 31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의 GBTC는 약 39억 달러 이탈을 기록하며, 초기 비트코인 신탁 상품의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이탈이 가속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와 낮은 유동성을 보이는 상품에서, 규모와 신용도가 높은 운용사 상품으로 갈아타는 흐름이 뚜렷하게 드러난 셈이다.

 

317억 달러라는 전체 유입액만 보면 암호화폐 ETF 시장의 성장세가 견고해 보인다. 그러나 IBIT를 제외하면 비트코인 ETF 시장이 사실상 순유출 상태라는 점은 구조적 위험 신호로 해석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여파와 통화 긴축,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겹친 2025년 매크로 환경 속에서 투자자들은 위험 분산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1등 브랜드’로 몰리는 피난, 이른바 플라이트 투 퀄리티(Flight to Quality) 전략을 선택했다. 유동성이 한두 개 대형 상품에 집중되면서, 시장 전체 파이가 커지는 효과보다 특정 운용사 쏠림이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같은 자금 집중은 향후 시장 반등 국면에서 낙수 효과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블루칩 ETF만 급속히 성장하고 중소형 ETF로 자금이 흐르지 않을 경우, 운용사 간 격차가 더 벌어지고 경쟁 구도가 일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규모가 작은 운용사들은 유동성 부족과 비용 부담으로 상품 운용이 어려워질 수 있고, 일정 수준 이하 자산으로 장기간 머물 경우 상장 폐지나 청산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ETF 시장이 제도권 진입의 관문 역할을 하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승자독식’ 구조를 고착화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의 상장 기준 완화가 예고된 가운데, 암호화폐 ETF 시장은 ‘공급 과잉’ 국면 진입을 앞두고 있다. 시장 분석에 따르면 SEC 규제 환경 변화에 힘입어 2026년에는 100개가 넘는 새로운 암호화폐 상장지수상품(ETP)이 미국 시장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외에도 솔라나·리플 등 주요 알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한 ETF뿐 아니라, 디파이(DeFi)·인공지능(AI) 연계 테마 ETF, 레이어2(Layer 2) 인프라 관련 상품까지 다양한 구조가 쏟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러나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이 같은 과잉 공급이 오히려 대규모 청산과 구조조정을 촉발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유럽연합(EU)과 영국, 싱가포르(Singapore) 등 글로벌 금융 허브들도 암호화폐 ETP 상장을 확대하는 추세라, 미국 시장 내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에서 확고한 트랙 레코드를 갖춘 소수 대형 운용사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지만, 중소형 운용사는 생존을 위해 합병, 사업 철수, 틈새 전략 모색 등 구조 재편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미국 암호화폐 ETF는 이미 벤치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매체들은 미국 현물 ETF 시장을 “디지털 자산의 제도권 편입을 가속화하는 실험장”으로 규정해왔다. 이번 블랙록 독주와 이더리움 ETF 약진 흐름은, 각국 규제 당국과 운용사들이 자국 내 암호화폐 상품 설계와 규제 수준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참고할 주요 사례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ETF를 통해 유입되는 기관 자금이 암호화폐 현물 시장의 변동성, 유동성, 가격 발견 메커니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가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향후 2~3년이 미국 암호화폐 ETF 시장의 ‘옥석 가리기’ 시기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외 알트코인 ETF가 실제 기관 수요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며, 이를 통해 시장이 단일 자산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다변화된 디지털 자산 포트폴리오 체제로 진화할지 주목된다. 동시에 블랙록 독주 체제가 계속 강화될지, 혹은 경쟁사들의 수수료 인하와 마케팅 전략, 차별화된 상품 설계로 견제가 이뤄질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국제사회와 글로벌 투자자들은 미국 암호화폐 ETF 시장의 확산과 재편 과정이 향후 금융 질서와 디지털 자산 규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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