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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대 현금배당 결정"…셀트리온, 2조원대로 주주환원 가속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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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의약품 기업 셀트리온이 대규모 글로벌 설비 투자와 동시에 역대 최대 수준의 현금배당을 예고하며 주주환원 기조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 상장사 가운데서도 드문 규모의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병행해 자본시장 내 저평가 인식을 해소하고, 향후 미국 생산기지 확충을 통한 성장 스토리를 주주 수익과 직접 연결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을 셀트리온그룹 밸류업 프로그램의 실행력을 가늠하는 분수령이자, 바이오 산업 전반의 주주환원 경쟁을 자극할 계기로 보고 있다.

 

셀트리온그룹은 11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셀트리온과 셀트리온제약의 2024년도 배당 계획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배당은 내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최종 의결을 거쳐 확정되며, 배당 기준일은 오는 31일이다. 셀트리온은 보통주 1주당 750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으며, 총 배당 규모는 약 1640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배당 산정 대상 주식수는 발행주식총수 약 2억3096만주에서 자기주식 약 1235만주를 제외한 약 2억1861만주다.

이번 결정은 미국 생산시설 인수를 포함한 대규모 설비 투자가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현금배당을 줄이기보다 확대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셀트리온은 미국 뉴저지 브랜치버그에 위치한 일라이 릴리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인수를 추진 중이며, 이를 위해 미국 법인 셀트리온USA에 약 7824억원 규모의 자본을 투입하기로 했다. 회사 측은 성장투자와 주주환원을 병행할 수 있을 만큼 재무 여력이 강화됐다고 설명한다.

 

배당 효율을 높이기 위한 구조 설계도 병행됐다. 셀트리온은 지난 3월 자본준비금 약 6200억원을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해 감액배당에 활용할 수 있는 비과세 배당 재원을 마련했다. 이 재원을 실제 배당에 투입할 경우, 주주는 통상 상장주식 배당에 부과되는 15.4퍼센트의 배당소득세를 부담하지 않아도 돼 실질 수령액이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세제 측면에서의 배당 효율을 끌어올려, 배당금 총액뿐 아니라 세후 수익률까지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올해 5월 단행된 무상증자 효과도 이번 배당과 연결된다. 셀트리온은 보통주 1주당 신주 0.04주를 지급하는 무상증자를 실시해 약 4퍼센트 규모의 주식배당 효과를 부여했다. 당시 배정된 신주 역시 이번 현금배당 대상 주식수에 포함되면서, 무상증자 이후 계속 보유한 주주 입장에서는 주식 수 증가와 주당 750원 배당이 결합되며 체감 수익률이 더 커진다. 배당 정책과 자본정책을 연동해 장기 보유 주주에게 유리한 구조를 설계한 셈이다.

 

셀트리온의 주주환원 전략은 배당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는 연초부터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병행하며 시장에서의 저평가 해소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셀트리온이 직접 매입한 자기주식 규모는 8442억원에 이르며, 그룹 차원에서 매입한 셀트리온 주식은 총 1조9000억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셀트리온이 소각한 자사주는 9000억원 규모로, 유통 주식수 축소를 통한 주당 가치 제고를 노린 조치다. 금번 배당과 자사주 소각, 연간 자사주 매입 규모를 합산하면 셀트리온이 올해 주주친화 정책에 투입한 재원은 2조원에 근접한다.

 

셀트리온은 연초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에서 2027년까지 3개년 평균 주주환원율 40퍼센트를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올해 배당과 자사주 정책을 종합하면, 실제 주주환원율은 목표치를 크게 웃돌 것으로 관측된다. 주주환원율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을 포함한 주주환원 금액을 순이익으로 나눈 지표로, 제조 기반 바이오기업에서 평균 20퍼센트를 넘기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셀트리온은 중장기적으로 비과세 배당과 현금배당을 병행하면서 변동성이 큰 바이오 업종 특유의 투자 리스크를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자회사 셀트리온제약도 같은 날 배당 계획을 공시했다. 셀트리온제약은 보통주 1주당 200원의 현금배당과 0.02주의 주식배당을 동시에 결정했다. 배당 대상 주식수는 발행주식총수에서 자기주식을 제외한 약 4342만주다. 셀트리온제약은 올해 3분기까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현금과 주식 병행 배당을 통해 공장 증설과 같은 성장투자와 주주환원을 균형 있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바이오 의약품 생산능력 확대에 필요한 자본지출과, 상장사로서 요구되는 주주친화 정책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셀트리온은 이사회 결의를 통해 미국 브랜치버그 소재 일라이 릴리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인수 재원 마련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셀트리온의 100퍼센트 종속회사인 셀트리온USA는 이번 인수의 주체로, 생산시설 취득과 공장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활용할 계획이다. 셀트리온은 셀트리온USA에 총 7824억원 규모의 자본을 두 차례에 걸쳐 투입한다. 1차는 약 6555억원 규모로 오는 18일 진행되고, 2차는 약 1269억원 규모로 내년 중 집행될 예정이다.

 

브랜치버그 생산시설은 글로벌 빅파마 일라이 릴리가 사용해온 바이오의약품 생산라인으로, 인수 완료 즉시 원료의약품 위탁생산에 투입될 계획이다. 셀트리온은 연내 인수를 마무리하고, 계약에 따라 일라이 릴리의 원료의약품을 위탁생산 방식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고정된 장기 공급계약 구조를 확보할 경우, 미국 내 생산기반 확대와 함께 안정적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CMO 비즈니스가 기존 바이오시밀러와 신약 개발 사업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바이오 산업에서는 고금리·고원가 환경 속에서 대규모 현금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병행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셀트리온의 행보가 눈에 띈다. 그동안 바이오기업 상당수가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자금을 집중하며 배당을 최소화해 왔고, 이로 인해 장기 투자 유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셀트리온그룹 관계자는 올해 배당과 자본정책에 대해 대규모 증설 투자를 앞둔 상황에서도 회사의 지속 성장에 대한 자신감과, 주주와의 동반 성장을 중시하는 경영 의지를 반영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셀트리온의 전략은 미국 생산시설 인수와 국내외 생산능력 확장, 파이프라인 확대를 통해 실적을 끌어올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고배당·고수익률 구조를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 업계에서는 셀트리온의 공격적인 주주환원 정책이 다른 상장 바이오기업의 배당·자사주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실제 실적 개선과 배당 지속 가능성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는 셀트리온의 이번 행보가 저평가된 바이오 섹터 전반의 리레이팅 촉매가 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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