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에 길 열렸다”…5·18 성폭력 피해자 보상법, 국회 통과
역사적 국가폭력의 상처를 둘러싼 오랜 공백과 국회의 입장이 맞붙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를 보상 대상에 포함하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제도 밖에 머물렀던 피해 회복 논의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국회는 2일 본회의를 열고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5·18 보상법 개정안을 원안 가결했다. 국회는 4일 이를 공식 확인했다. 개정안은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성폭력을 입은 피해자를 법률상 보상 대상에 명시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담았다.

현행 5·18 보상법은 보상금 지급 대상을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그리고 신체적 상이자로 한정해 왔다. 그 결과 당시 강제연행·구금 과정 등에서 발생한 성폭력 피해는 법적 인정 범위에서 빠져 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히 인권단체와 피해자 증언자 모임은 진상 규명과 별개로 피해 회복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추미애 의원은 발의 취지에서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성폭력도 국가폭력의 한 형태인 만큼, 사망·부상 피해와 마찬가지로 법률상 보상과 지원 체계 안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5·18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 측은 국회 통과 소식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정부의 후속 조치를 주문했다. 열매 관계자는 "45년 만에 피해 보상의 길이 열린 만큼 이번 개정안이 피해자들의 치유와 삶의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신속하게 지원을 추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법률적 문턱은 넘었지만, 실제 심사 기준 마련과 신청 절차 설계, 2차 피해 방지 장치 등 세부 제도의 설계가 과제로 남았다는 인식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성폭력 피해를 국가가 공식 인정하고 보상 대상으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법적·역사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입법은 사망·부상 피해 중심으로 제도화돼 왔으나, 지금은 성폭력 피해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범위가 확장된 셈이다. 이는 과거사 문제에서 성인지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국제 인권 규범과도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다만 실제 보상 심사 과정에서 피해 입증 방식, 당시 상황을 기억해야 하는 피해자의 정신적 부담, 고령화된 피해자의 건강 상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심한 행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공개·비밀보장 원칙을 강화한 심사 절차, 트라우마 치료와 연계된 의료·심리 지원, 장기적인 생활 안정을 위한 맞춤형 지원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부는 개정법 취지를 반영해 하위 법령과 세부 지침을 정비하고, 보상 신청·심사 체계를 마련하는 후속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관련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집행 상황을 점검하면서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 문제를 향후 국정과제로 계속 다룰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