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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떤 커피 드세요”…내가 고른 한 잔이 들키는 성격의 결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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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카페에서 메뉴판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예전엔 카페인이 얼마나 센지, 가격이 얼마인지가 먼저였지만, 지금은 ‘나에게 어울리는 한 잔’이 더 중요해졌다. 사소한 선택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성격과 리듬을 찾는다.

 

호주의 커피 도시로 불리는 멜버른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로한 쿠크는 손님들의 주문을 수없이 받다가 한 가지 공통점을 느꼈다. 어떤 사람은 늘 라떼만 시키고, 누군가는 계절이 바뀌어도 아이스 라떼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 손님은 오늘도 그 메뉴겠지” 하고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 많아졌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커피가 어떤 성격을 드러내는지 유머러스한 분석을 내놓았다.

출처=픽사베이 ※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출처=픽사베이 ※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먼저 가장 대중적인 선택인 라떼를 고르는 사람들에 대해 그는 안정과 편안함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타입이라고 말했다. 부드러운 우유 거품처럼 자극적인 변화보다는 익숙한 온도를 좋아하고, 예상치 못한 변동을 부담스러워하는 성향이 보인다고 해석했다. 비슷한 우유 베이스 커피지만, 플랫화이트를 선택하는 이들에겐 “품격 있고 과하지 않은 선택”이라는 표현을 붙였다. 과시적으로 특별해 보이려 하기보다는, 묵묵히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카푸치노를 즐기는 손님에 대해서는 농담이 더해졌다. 거품과 코코아 파우더가 올라간 클래식한 메뉴를 찾는 이들을 두고 “늘 ‘예전엔 말이야…’로 시작하는 옛날 사람 스타일”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오래된 방식과 익숙한 맛을 사랑하면서도, 새로운 유행 앞에서는 한 발 물러나 관찰하는 타입이라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읽힌다.

 

진한 맛을 선택하는 에스프레소 마니아는 조금 다르게 그려졌다. 쿠크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들이 ‘엑스프레소’라고 잘못 발음하는 사람을 속으로 평가하는 타입이라고 덧붙였다. 작은 잔에 응축된 맛처럼, 디테일을 예민하게 보는 사람, 표현은 잘 안 해도 속으로는 기준이 분명한 성격을 떠올리게 한다.

 

설탕도 우유도 넣지 않은 블랙 커피를 택하는 사람들은 커피를 그야말로 ‘연료’처럼 여기는 실용주의자로 묘사됐다. 하루를 버티기 위한 에너지 공급 장치로 커피를 바라보고, 장식적인 요소보다 효율과 깔끔함을 중시하는 태도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반대로 피콜로를 찾는 사람들은 작은 잔 하나로 카페의 공기를 장악하는 이미지로 설명됐다. 그는 피콜로 마니아를 “자전거용 반바지를 입고 주말 아침 카페 분위기를 장악하는 타입”이라고 표현했다. 운동복 차림으로 로컬 카페를 점령하는 풍경 속에서, 적극적이고 눈에 띄는 라이프스타일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계절과 무관하게 인기를 얻는 아이스 라떼 애호가들은 디지털 감수성이 짙게 묘사됐다. 쿠크는 이들을 틱톡을 끝없이 스크롤하는 SNS 헤비 유저라고 정의했다. 손에 늘 차가운 플라스틱 컵이 들려 있는 모습처럼,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며 빠르게 정보를 소비하는 일상이 떠오른다. 반면 녹색빛의 마차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겐 “나는 남들과 달라”를 말없이 드러내는 트렌디함이 읽힌다고 분석했다. 건강, 힙함, 취향을 한 번에 챙기려는 욕구가 한 잔 위에 겹쳐진 셈이다.

 

카페인에서 한 발 물러난 디카페인 커피의 이미지는 의외로 단단했다. 쿠크는 디카페인을 마시는 사람들에 대해 정서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편이라고 말했다. 굳이 각성 효과를 쫓지 않아도 되는 여유, 잠을 포기하면서까지 무언가를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자기 조절감이 느껴진다는 의미다. 반대로 달콤한 모카를 고르는 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으로 설명됐다. 남들이 어른의 입맛을 이야기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달콤함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해석이 자연스럽다.

 

바닐라, 카라멜, 헤이즐넛처럼 향을 더한 커피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요약됐다. 그는 이런 메뉴를 찾는 손님들을 두고 “American”이라고 농담했다. 진한 시럽 향과 푸짐한 토핑이 올라간 컵을 떠올리면, 달콤함과 과감한 조합을 즐기는 성향이 함께 그려진다. 취향 앞에서 계산보다는 만족감을 추구하는 태도라는 의미도 함께 담겨 있다.

 

이런 해석은 철저한 통계나 연구에서 나온 결론이라기보다, 바리스타가 매일 눈앞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향한 가벼운 농담에 가깝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왠지 나 같아서 웃겼다”, “친구들하고 메뉴별로 돌려 읽어 봤다”는 반응을 보이며 공감했다. 댓글과 반응 속에는 “라떼파인 나는 정말 변화를 싫어한다”, “에스프레소 마시는데, 발음 틀리는 거 신경 쓰이는 거 인정한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유쾌한 성격 놀음을 일상에서 자기를 들여다보는 가벼운 놀이로 본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자주 고르는 메뉴에는 루틴과 감정 상태, 자신을 다루는 방식이 스며 있기 마련”이라고 설명해 왔다. 아침에 고른 커피 한 잔이 결국 ‘오늘 나는 어떻게 나를 깨우고, 어떻게 나를 달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이 되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친구와 나란히 서서 메뉴를 고르다 보면, 서로 다른 선택이 관계의 풍경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 준다. 누군가는 “난 오늘은 디카페인으로 쉬어 갈래”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난 여전히 아이스 라떼가 좋다”고 표현한다. 누가 더 성숙하거나 멋진 게 아니라, 각자가 자기 페이스를 확인하는 시간에 가깝다. 그래서 이런 농담 섞인 ‘커피 MBTI’가 인기를 얻는 이유도, 결국은 서로의 다름을 웃으며 받아들이는 여유에 닿아 있다.

 

평소 무심코 반복해 온 주문을 떠올려 보면, 거기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숨어 있다. 내가 편안함을 더 중시하는지, 새로움을 일부러 찾아 나서는지, 오늘은 속도를 늦추고 싶은지에 대한 작은 힌트가 담겨 있는 셈이다. 작은 종이컵이나 머그잔 위에 올려진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런 사소한 루틴 속에서 조금씩 모양을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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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한쿠크#멜버른바리스타#커피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