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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호황에 수출 7097억달러…IT 주도 무역 흑자 확대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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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수퍼사이클이 우리나라 연간 수출 구조를 다시 바꾸고 있다. 2025년 한국 수출은 사상 최초로 7000억달러를 넘기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고, 그 중심에는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를 포함한 반도체 산업이 자리한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전통 효자 품목인 자동차가 압박을 받는 가운데, IT 중심 품목이 무역 흑자를 떠받치는 구조가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실적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AI 수요 확대가 맞물린 구조적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산업통상부가 1일 발표한 2025년 연간 및 12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수출은 전년 대비 3.8퍼센트 증가한 7097억달러를 기록했다. 원화 기준으로는 약 1025조2600억원 규모다. 일평균 수출도 26억4000만달러로 4.6퍼센트 늘며 역대 최대치를 새로 썼다. 같은 기간 수입은 6317억달러로 0.02퍼센트 감소해 사실상 보합에 그쳤고, 무역수지는 780억달러 흑자로 전년보다 262억달러 개선됐다. 2017년 952억달러 흑자 이후 가장 큰 폭의 개선이다.

수출 호조를 이끈 핵심은 반도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은 22.2퍼센트 늘어난 1734억달러로 집계돼, 전체 수출의 4분의 1가량을 단일 품목이 책임지는 구조가 더 공고해졌다.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 연속 월 기준 역대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면서 글로벌 반도체 수요 회복과 고대역폭메모리,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제품 수요가 동시에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메모리 가격 회복과 시스템 반도체 수탁생산 수요 확대가 맞물리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수출 축이 메모리 중심에서 데이터센터, AI, 자동차용 등 복합 수요로 다변화되는 흐름도 읽힌다.

 

자동차 수출은 미국의 관세 부과라는 악재 속에서도 연간 기준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자동차 수출은 1.7퍼센트 증가한 720억달러를 기록했다.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으로의 직접 수출은 감소했지만, 하이브리드 차량과 중고차 수출이 다른 지역에서 호조를 보이며 전체 감소를 상쇄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중심의 친환경차 수출 비중이 커진 가운데,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과 전장 반도체 탑재가 늘면서 자동차 산업 자체가 IT 집약적 수출 품목으로 변모하는 구조적 변화도 진행 중이다.

 

품목별로 보면 15대 주력 수출 품목 가운데 6개 품목 수출이 증가했다. 반도체와 자동차 외에도 일부 고부가 IT 제품과 기계류가 선방한 반면, 석유화학과 일부 전통 제조 품목은 부진했다. 석유화학, 무선통신기기, 일반기계 등이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공급 과잉 여파를 크게 받으며 중국향 수출 감소의 원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역별 수출 흐름을 보면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 리스크가 한국 수출 지도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은 1.7퍼센트 감소한 1308억달러로 집계됐다. 중국향 반도체 수출은 호조를 보였지만, 석유화학과 무선통신기기, 일반기계 수출 부진이 전체 감소를 이끌었다. 중국이 내수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바꾸고 반도체와 통신장비 내재화를 가속하면서, 한국의 중간재 중심 수출 모델이 점차 압박을 받는 모습이다.

 

미국향 수출도 3.8퍼센트 감소한 1229억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의 관세 부과와 통상 규제 강화로 자동차, 일반기계, 자동차부품 등 전통 제조 품목이 일제히 줄어든 영향이 컸다. 다만 반도체 수출은 증가세를 나타내며 전체 감소 폭을 어느 정도 완화했다. 미국이 반도체 생산시설 유치를 가속하는 한편, 단기적으로는 한국산 고급 메모리와 맞춤형 시스템 반도체 수요를 유지하는 양면적 전략을 취하고 있어 한국 IT 수출의 선택지가 복잡해지는 상황이다.

 

월별로 보면 지난해 12월에도 수출 성장세가 이어졌다. 12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3.4퍼센트 늘어난 696억달러, 수입은 4.6퍼센트 증가한 574억달러였다. 12월 무역수지는 122억달러 흑자로 11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수출은 2025년 6월 이후 7개월 연속 해당 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우며 상승 흐름을 고착화하는 모습이다. 반도체는 12월에만 43.2퍼센트 증가한 208억달러를 기록해 단일 월 기준으로도 압도적 성장세를 보였고, 자동차는 해외 현지 생산 확대와 전년도 호실적에 따른 기저효과, 일부 기업의 설비정비 영향이 겹쳐 1.5퍼센트 감소한 59억5000만달러에 머물렀다.

 

반도체 중심 수출 확대는 한국 경제에 기회와 리스크를 동시에 안긴다. AI 서버,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고성능 컴퓨팅 등 고부가 IT 수요를 선점할 경우 중장기 성장 동력 확보가 가능하지만, 특정 품목과 특정 수요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경기 변동과 기술 규제, 수출 통제에 따른 충격도 커질 수 있어서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의 반도체 통상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첨단 공정 투자와 공급망 다변화를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향후 수출 구조 안정성의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책 측면에서 정부는 수출 호조가 소수 대기업과 일부 IT 품목에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하고, 중견·중소 협력사와 전통 제조업으로 파급되도록 유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비롯한 주력 제조업이 고부가 IT와 친환경 전환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소재·부품·장비 국산화와 공급망 리스크 분산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이 겹쳐 있는 상황에서, 정책 지원이 특정 품목 단기 호황에 치우칠 경우 글로벌 수요 변화에 취약한 구조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수출 7000억달러 돌파를 언급하며 기업과 노동자의 노고를 강조하면서도, 수출 활기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반도체 호황이 일시적 사이클에 그칠지, AI와 디지털 인프라 투자 확대에 힘입어 구조적 성장으로 이어질지에 따라 한국 IT·제조 산업의 향후 10년이 갈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수출 통계를 넘어 첨단 기술 투자, 공급망 전략, 통상 정책이 맞물려 움직일 때만이 7000억달러 시대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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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수출#자동차수출#산업통상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