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요구에 금리 인하 나설 수도”…해싯 부상에 월가, 연준 독립성 훼손 우려
현지시각 기준 3일, 미국(USA) 뉴욕 금융시장에서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금리 인하 요구와 맞물려 연준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최근 월가 주요 은행, 대형 자산운용사 경영진 및 미국 채권시장 핵심 투자자들과 개별 면담을 진행하며 차기 연준 의장 후보군에 대한 의견을 비공식적으로 수렴했다. 이 과정에서 해싯 위원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자 채권 투자자 상당수가 정치적 압력에 따른 공격적인 금리 인하 가능성을 우려하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의견 청취는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연준 의장 후보들에 대한 2차 면접을 진행하기 이전인 지난달에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베선트 장관은 내년 5월 임기가 끝나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후임 인선을 총괄하고 있으며, 최근 몇 주 사이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당초 11명 수준이던 후보군을 압축해 오는 과정에서 해싯 위원장이 유력 대안으로 부상한 상황이라고 FT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해싯 위원장의 위상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2일 백악관에서 열린 델 테크놀로지 최고경영자(CEO) 부부의 기부 발표 행사에서 참석자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해싯 위원장을 가리켜 “아마 잠재적 연준 의장도 여기 있다”고 말해, 사실상 차기 의장 후보로서 존재감을 공식 시사했다. 이 같은 발언은 시장에 해싯 지명 가능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FT는 해싯 위원장을 둘러싼 월가의 시각에는 단순한 인사 교체를 넘어 연준 수장 교체 전반에 대한 불안이 녹아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공개석상에서 파월 의장을 강하게 비판하며 기준금리 인하를 집요하게 요구해 온 만큼, 후임 의장이 정치적 압력 속에서도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을지가 금융시장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는 설명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월가 은행가와 채권 투자자들은 특히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목표치인 2%를 웃도는 상황에서도 해싯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맞춰 무차별적인 금리 인하를 주장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국면에서의 성급한 완화 정책은 국채 금리 급등과 통화 가치 불안 등 시장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한 채권시장 참여자는 FT에 “누구도 ‘트러스 파동’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며 2022년 리즈 트러스 당시 영국(UK) 총리 내각의 대규모 감세안 발표로 촉발된 영국 채권시장의 급격한 혼란을 상기시켰다. 당시 감세와 대규모 차입 계획이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면서 국채 금리가 폭등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해 글로벌 시장에 충격을 준 바 있다. 월가는 정치 주도의 과격한 정책 전환이 미국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해싯 위원장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광범위한 수입 관세 부과와 기준금리 인하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 기조를 적극 지지해 온 대표적 친트럼프 성향 경제학자로 평가된다. 이런 이력 때문에 그가 연준 수장이 될 경우 백악관의 경기 부양 요구에 우호적으로 호응할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연준 수석 자문역을 지냈던 로버트 테틀로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해싯 위원장에 대해 “똑똑하고 말을 잘하며 자신감 있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가하며 개인적 역량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에는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장과의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해싯 위원장이 기본적인 자질을 갖췄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연준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뉴센추리 어드바이저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클로디아 삼은 해싯 위원장이 연준 의장직을 수행할 능력 자체는 충분하다고 보면서도, 실제로 어떤 역할을 자처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해싯 위원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드라이브에 보조를 맞추는 정치적 동조자로 남을지, 아니면 정치로부터 독립된 전문 경제학자로서 연준의 전통을 지키려 할지가 향후 행보를 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자산운용사 난인티원의 존 스토퍼드는 시장의 불신을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내가 보기에는 시장이 그(해싯 위원장)를 연준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트럼프의 꼭두각시로 보고 있다”고 말하며, 해싯 위원장이 지명될 경우 연준의 독립성과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각을 전했다. 중앙은행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경우 통화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져 국채와 달러 자산 전반에 프리미엄이 요구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통화정책의 방향이 글로벌 유동성과 자본 흐름을 좌우하는 만큼, 차기 연준 의장 인선이 각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 주도의 조기 완화로 기조가 전환될 경우, 신흥국 통화 가치 변동성과 자본 유출입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향후 인선 과정에서 해싯 위원장이 실제로 지명될지, 또 지명 시 의회 인준 절차에서 연준 독립성을 둘러싼 검증 공방이 얼마나 거세질지에 따라 시장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차기 연준 수장의 선택이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의 신뢰 구조와 정책 방향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주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