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방 직접 분해 치료제…KIST, MASLD 공략 새 전략 제시
간세포 안에 쌓인 지방을 직접 찾아 분해하는 신개념 간질환 치료제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비만과 대사증후군 확산으로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생활습관 교정과 간접적인 대사 조절에 의존하던 기존 치료와 달리 간세포 내부의 지방 방울을 표적 삼는 전략이다. 업계와 학계에서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에서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으로 정의가 바뀐 뒤 본격화된 치료제 경쟁의 흐름을 바꿀 시도로 보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은 이현범 박진영 생체분자인식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연구진이 한양대 이준석 전대원 교수진과 함께 간세포 내 축적 지방을 직접 분해 제거하는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30일 밝혔다. 연구진은 지방간이 유도된 동물 모델에서 치료 효능을 검증했으며,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매터리얼즈에 10월 4일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은 정상 수준인 약 5퍼센트를 넘어 중성지방이 간세포에 과도하게 쌓이는 상태에서 출발한다. 음식으로 들어온 지방을 간이 처리하지 못하면 지방 방울 형태로 간세포 안에 축적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염증과 섬유화가 진행돼 간경변과 간암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지금까지는 식이 조절과 운동, 인슐린 저항성 개선제나 지질 대사 조절 약물을 통해 지방 축적 속도를 늦추거나 간 기능을 보조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이미 쌓인 지방을 표적으로 삼는 치료제는 거의 없었다.
연구진은 지방을 잘 인식하는 분자와 지방 분해 효소를 하나의 치료제 형태로 결합하는 설계를 도입했다. 지방 인식 분자는 간세포 안에서 지방 방울을 선택적으로 찾아 결합하는 역할을 하고, 여기에 연결된 분해 효소가 중성지방을 분해해 제거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간세포 내로 침투한 치료제는 지방 방울이 더 커지지 못하게 막으면서 동시에 기존에 축적된 지방을 잘게 쪼개 제거하도록 작동한다. 기존 대사 조절 약물이 간 외부에서 신호 전달 경로를 조절하는 간접 효과에 머물렀다면, 세포 내부 지방 방울을 직접 겨냥한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동물 실험에서 지방간이 유도된 실험쥐에 해당 치료제를 투여한 결과, 간 조직 내 지방량이 육안으로 구분될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 염색 분석에서는 지방 방울 크기와 수가 감소했고, 염증 세포 침윤도 완화됐다. 혈액을 통해 측정하는 간 손상 지표도 크게 개선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대표 간효소 수치는 최대 84퍼센트까지 낮아져 손상 수준이 현저히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간지방 감소를 넘어 염증과 조직 손상 단계에서 개선 효과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초기 지방간뿐 아니라 진행된 대사이상 지방간질환까지 치료 범위를 넓힐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사질환 시장에서는 지방간 치료가 신약 개발의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체중 감량과 혈당 조절 효과로 주목받는 비만 치료제 계열 약물도 지방간 개선 효과가 보고되고 있지만, 전신 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작용한다는 한계가 있다. 간세포 내 지방을 직접 제거하는 약물이 상용화되면, 체중 변화와 무관하게 간질환 자체를 공략하는 정밀 치료 옵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약물 복용 순응도가 떨어지거나 생활습관 교정이 어려운 환자군에서도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산업계가 주목하는 대목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이미 대사이상 지방간질환을 겨냥한 후보 물질을 다수 임상 단계에 올려놓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지방 합성 억제제, 담즙산 수용체 조절제, 염증 및 섬유화 억제제 등이 경쟁 중이지만, 세포 내부 지방 방울을 표적하는 직간접적 시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국내 연구진이 고안한 지방 인식 분자와 분해 효소 결합 전략이 임상 개발로 이어질 경우, 차별화된 작용 기전을 앞세워 글로벌 파이프라인과의 경쟁에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다만 실제 환자 치료제로 이어지려면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효소 기반 또는 복합 분자인 만큼 인체 내 안정성과 면역 반응, 장기 독성 등을 세밀하게 검증해야 한다. 간세포만 선택적으로 표적해 다른 조직의 지방 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도 관건이다. 규제 측면에서는 새로운 작용 기전을 가진 대사질환 치료제인 만큼, 비임상 독성 시험과 초기 임상에서 광범위한 안전성 자료를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연구진은 향후 간 이외 장기에서의 안전성 평가와 대량 생산 공정 확립, 약효 지속 기간 최적화 등을 추가로 진행할 계획이다. 학계에서는 지방간이 간질환을 넘어 심혈관 질환과 당뇨 등 대사질환 전반의 출발점으로 인식되는 만큼, 세포 수준에서 지방을 직접 다루는 이번 전략이 상용화될 경우 관련 치료 패러다임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는 해당 기술이 실제 임상 개발 단계로 안착할 수 있을지 향후 후속 연구와 기술 이전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