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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마다 숫자를 센다”…로또 한 줄에 거는 소확행의 설렘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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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토요일 밤이면 TV 앞에서 번호를 되뇌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운에 모든 걸 맡기는 일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소소한 의식이 됐다. 숫자를 고르는 몇 분의 시간에 각자의 소망과 피로가 겹쳐진다.

 

12월 13일 추첨한 제1202회차 로또 복권 당첨번호는 5, 12, 21, 33, 37, 40번이다. 여기에 보너스 번호 7번이 더해지면서 또 한 번의 토요일 밤이 환호와 아쉬움으로 나뉘었다. SNS에는 “한 번호 차이였다”고 아쉬움을 표현하는 글과 “다음 주를 기약한다”는 다짐이 같은 만큼 올라온다.

제1202회 로또당첨번호
제1202회 로또당첨번호

당첨을 기다리는 일은 어쩌면 현실을 잠시 미루는 놀이에 가깝다. 동행복권 홈페이지에서 지난 로또 당첨번호를 되짚어 보고, 당첨 복권 판매점을 검색해 보는 과정 자체를 ‘루틴’으로 즐기는 사람도 많다. 매주 비슷한 시간,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작은 리셋 버튼을 누르는 셈이다.

 

이런 흐름은 로또를 둘러싼 생활 패턴에서도 드러난다. 로또 판매 시간은 평일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 그러다 보니 퇴근길 편의점에서 무심코 한 장을 사는 직장인, 점심시간에 번호를 고르는 자영업자의 풍경이 일상이 됐다. 토요일만 되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추첨일인 토요일에는 오후 8시에 판매가 마감되고, 일요일 오전 6시까지 판매가 중단된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 시계를 보며 서둘러 판매점을 찾는 발걸음도 여전히 이어진다.

 

추첨 시간도 이미 생활의 한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35분, ‘생방송 행복드림 로또 6/45’를 통해 공개되는 숫자들은 한 주 동안 쌓였던 기대와 농담, 그리고 약간의 체념을 한데 묶어 놓는다. 화면 속 공이 튀어나올 때마다 거실, 편의점, 술자리 곳곳에서 “나왔다” “틀렸다”는 반응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혼자 살든, 가족과 함께 살든, 이 순간만큼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셈이다.

 

당첨이 현실이 되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시작된다. 당첨금 지급기한은 지급 개시일로부터 1년 이내다. 이 마감 기한을 넘기면 모든 기대가 사라지는 만큼, 날짜를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도 중요해졌다. 당첨금 지급 마지막 날이 휴일이면 다음 영업일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이들에게 그나마 숨 쉴 틈을 준다.

 

전문가들은 이런 주간 복권 문화가 단지 큰돈에 대한 욕망보다 “살아가는 감각을 리셋하려는 욕구”에 가깝다고 해석한다. 힘든 일주일을 보낸 사람들이 잠깐의 상상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작은 기대라도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고 느낀다.

 

커뮤니티 반응도 흥미롭다. “당첨 안 돼도, 번호 고를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고백부터 “친구들과 단톡방에 번호를 공유하는 재미로 산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서로의 숫자를 자랑하고, 지난 회차 번호를 분석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한 주를 묻고, 안부를 나눈다. 로또가 단지 종이 한 장을 넘어, 관계를 이어 주는 매개가 되는 순간이다.

 

로또 한 장에 담긴 기대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빚을 갚는 상상을 하고, 누군가는 퇴사를 떠올리며, 또 다른 누군가는 부모님 집을 바꾸어 드리는 꿈을 꾼다. 현실 감각은 분명하지만, 그 짧은 상상 덕분에 버텨지는 시간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토요일 밤의 번호 확인은 행운을 찾는 시간이자, 내 삶을 다시 그려 보는 조용한 사색의 시간에 가깝다.

 

숫자는 매주 바뀌지만, 그 숫자를 바라보는 마음의 온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에겐 허무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유일한 기대일 수 있는 이 의식은 이미 하나의 생활 문화가 됐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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