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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사회경제적 손실 1445억…중년 여성 타격, 생산성 경고음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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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이 한국 사회의 숨은 비용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치료비를 넘어 노동시장과 가계경제 전반에서 연간 1445억원 규모의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경제활동과 가족 돌봄의 핵심축인 40대 후반부터 50대 여성에서 부담이 집중되면서, 질환 관리가 보건의료를 넘어 국가 생산성 관리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와 학계는 이번 결과를 유방암 조기 진단과 치료 접근성, 장기 생존자 관리 전략을 재설계해야 할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한국노바티스는 글로벌 경제연구소 WifOR와 공동 수행한 한국 유방암 환자의 건강 및 사회경제적 부담 분석 결과를 19일 공개했다.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유방암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연간 약 1445억원으로 추산됐다. 직접 의료비가 약 825억원, 생산성 손실 등 간접비용이 약 616억원을 차지했다. 연구진은 질환 자체의 치료비뿐 아니라 고용 감소, 업무 공백, 가족 돌봄 구조 변화까지 경제적 영향을 정량화한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을 합친 손실 시간은 2021년 한 해 310만 시간에 달했다. 유급 노동 손실은 약 131만 시간, 가사·돌봄 등 무급 노동 손실은 약 179만6000시간으로 집계됐다. 무급 노동 손실만 놓고 보면 평균 여성 21명이 평생 수행하는 무급 노동과 맞먹는 규모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유급 노동 손실액은 약 2589억원, 무급 노동 손실액은 약 3576억원 수준으로 평가됐다. 직접 의료비 규모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질환이 노동시장과 가계 내부 기능에 미치는 파급력을 드러낸다.

 

발병 양상은 연령과 병기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WifOR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국내에서 새롭게 유방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1만5929명, 사망자는 2812명이었다. 발병은 45세에서 49세 구간에서 2495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망은 55세에서 59세 구간에서 390명으로 집중됐다. 진단 후 생존 환자를 포함한 유병 환자 수는 60세에서 64세 구간에서 2만6339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기 발견 프로그램과 진단 기술 발달로 유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장기 생존자의 사회경제적 관리가 중요해지는 구조다.

 

조기 발견 비율은 높지만, 병기별 생존율 격차는 여전히 크다. 전체 환자의 59.2퍼센트가 0기 또는 1기에서 진단됐으며, 이들 조기 단계 환자의 5년 생존율은 98.8퍼센트에 달했다. 반면 이미 원격 전이가 발생한 환자의 5년 생존율은 42.6퍼센트로 크게 떨어졌다. 연령별로는 45세 미만 환자 5년 생존율이 94.1퍼센트, 60세 이상 환자는 91.2퍼센트로, 나이가 많을수록 치료 성과가 둔화되는 양상이 관찰됐다. 조기 진단과 적기 치료가 생존뿐 아니라 장기 생산성 유지에 직접 연결되는 셈이다.

 

사회경제적 손실 규모는 국내 보건의료 지출 구조에서 유방암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하게 한다. 연구진은 유방암으로 인한 연간 손실 약 1445억원이 국내 연간 의약품 지출의 약 0.5퍼센트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통상 의약품 비용은 질환 부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실제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총비용은 명시된 수치를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노동 손실액만 보면 수천억원대 규모에 달해 건강보험 재정과는 별도의 경제정책 변수로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연령별 손실 구조에서는 50세에서 59세 여성층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연령대 여성은 기업 내 중간 관리자로 활동하며 동시에 가정의 재정과 돌봄을 책임지는 비율이 높다. WifOR 분석에 따르면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 손실이 모두 이 구간에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 명의 유방암 환자 발생이 기업 현장의 숙련 인력 공백과 가계 내 돌봄 구조 붕괴를 동시에 불러오면서, 단일 질환의 영향이 세대 전체의 생활 안정성과 성장 잠재력에까지 연결되는 구조다.

 

글로벌 차원에서 여성 암 질환의 경제적 부담을 추적하는 연구가 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사례는 발병 연령이 상대적으로 젊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는 평가다. 서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유방암 평균 발병 연령이 60대 초중반에 집중돼 은퇴 이후 부담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한국은 40대 후반과 50대 초반처럼 경제활동 정점 구간에서 환자가 집중돼 국가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이 더 직접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맞물려 고용 유지 지원, 암 생존자 재직 프로그램, 유연 근무제 설계 등 노동정책과 연계한 암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보건경제학 관점에서는 유방암 치료 기술 발전과 건강보험 급여 정책이 중장기 생산성에 미치는 효과를 평가하는 시도가 뒤따를 전망이다. 최신 표적 치료제나 호르몬 치료, 방사선 치료 최적화가 장기 생존과 재발 억제에 기여할 경우, 추가 약제비를 상쇄하는 생산성 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유방암 생존자의 직장 복귀 지원, 재활 프로그램, 정신건강 관리 역시 간접비를 줄이는 정책 수단으로 거론된다. 디지털 헬스케어를 활용한 자가 모니터링, 원격 상담 플랫폼 등이 치료 공백을 줄이고 재입원률을 낮출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질환별 부문 분석을 국가 단위 보건의료 전략 설계의 기초 데이터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WifOR 보건경제학 부서 팀장 마이케 슈미트 박사는 이번 분석을 통해 유방암이 환자의 치료비를 넘어 노동시장과 가계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은 경제활동과 가정의 중심에 있는 40대와 50대 여성에서 발병률이 높아 생산성 손실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바티스 유병재 대표이사는 이번 연구가 유방암 치료와 관리가 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국가적 생산성과 가족의 안정성, 사회 구조 전반과 직결된 과제임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산업계와 의료계에서는 향후 유방암을 포함한 주요 암 질환에 대해 진단부터 치료, 재활, 직장 복귀까지 전 주기를 포괄하는 경제성 평가와 정책 설계가 본격화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분석 결과를 토대로 유방암 관련 기술과 서비스가 실제 시장과 제도 환경 속에 어떻게 안착할지 지켜보는 분위기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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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바티스#wifor#유방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