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유지보다 ‘증시 이탈’ 선택”…일본 증시, 상장폐지 역대 최대 규모로 구조 재편 가속
현지시각 기준 16일, 일본(Japan)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올해 상장을 폐지한 기업이 124곳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2년 연속 역대 최대를 경신한 수치로, 상장 유지 요건이 강화된 환경에서 기업들이 증시 밖으로 빠져나가는 흐름이 일본 증시 전반의 구조 재편을 촉발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도쿄증권거래소 상장폐지 기업 수는 전년보다 30곳 늘어난 124곳으로 나타났다. 현지 언론은 도쿄증권거래소와 투자자들이 기업 가치 제고를 강하게 요구하는 가운데, 경영진이 경영 자율성을 확대하기 위해 상장 유지보다 상장폐지를 택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유통 대기업 이온(Aeon)과 통신사 NTT는 각각 자회사 이온몰과 NTT데이터그룹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이들 자회사의 상장을 폐지했다. 모회사 중심으로 경영 자원을 집중하고 의사결정을 일원화하려는 전략이 증시 이탈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창업자 가문이나 투자 펀드 등에 인수되며 비상장회사로 전환한 기업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상장폐지를 선택한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주식 유동성이 낮거나 시가총액이 작은 종목이라고 설명했다. 신문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올해 상장폐지된 기업들의 작년 말 기준 평균 시가총액은 1천90억 엔, 한화 약 1조 원 수준에 머문다. 일본(일본엔)의 풍부한 유동성과 사모펀드의 공격적 인수 움직임, 그리고 저평가·저유동 종목에 대한 시장의 구조적 압박이 맞물리면서 소형주 중심의 상장폐지가 가속되는 양상이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22년부터 상장 유지 기준을 상향 조정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가총액과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에 대해 구조개선 계획 제출을 요구하는 등 기준을 강화해 왔고, 이 조치가 상장폐지 확대의 중요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일본 당국과 거래소는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자본효율성 제고를 내세워 ‘잠자는 종목’ 정리를 유도해 왔고, 그 여파가 통계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일본 증시 외형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올해 도쿄증권거래소 신규 상장 기업 수는 60곳으로, 전년보다 21곳 감소했다. 신규 상장이 둔화되는 동시에 상장폐지가 증가하면서 전체 상장사 수는 작년보다 약 60곳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상장사 수 축소는 단기적으로 일본 증시의 선택지를 좁히고 거래 대상을 줄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저유동·저수익 기업을 정리해 시장 효율성을 높이려는 정비 과정으로도 해석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일본 증시는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조 개혁의 시험대에 올라 있다. 상장 기준 강화와 주주가치 제고 요구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려는 시도로 평가되지만, 그 과정에서 상장폐지가 빠르게 늘고 신규 상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시장 활력 저하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일본 증시가 기업 구조조정과 상장 요건 재정비를 통해 한 단계 재편을 시도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며, 향후 상장·상장폐지 흐름이 아시아 금융 허브 경쟁 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 금융당국과 도쿄증권거래소가 기업가치 제고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상장 유지 기준 강화가 추가적인 상장폐지 증가로 이어질지, 혹은 기업들의 체질 개선과 신규 상장 활성화로 귀결될지에 국제 금융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