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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 숫자 여섯 개를 기다린다”…로또는 이제 일주일을 견디는 작은 의식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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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토요일 밤이면 TV 앞이나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숫자 여섯 개를 기다리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단번에 인생 역전’을 노리는 꿈같은 일이었다면, 지금은 한 주를 버텨낸 나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이자 루틴이 됐다. 사소한 선택 같지만, 그 안에는 불안한 현실을 견디는 우리의 방식이 담겨 있다.

 

12월 13일 진행된 제1202회 로또 6/45 추첨에서 나온 번호는 5, 12, 21, 33, 37, 40번이다. 보너스 번호는 7번으로 결정됐다. 이 여섯 자리 숫자를 모두 맞힌 1등 당첨자는 14명. 각자 19억 2,041만 원의 당첨금을 얻게 됐다. 토요일 저녁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을지 모를 누군가는, 추첨이 끝난 뒤 전혀 다른 월요일 아침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제1202회 로또당첨번호 (출처:동행복권)
제1202회 로또당첨번호 (출처:동행복권)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이번 회차 로또 복권 총판매금액은 1,169억 5,423만 7,000원으로 집계됐다. 한 주에 1,000억 원이 넘는 돈이 ‘희망 섞인 소비’로 모인 것이다. 1등 당첨금으로 배정된 금액은 전체 판매금의 23.0%다. 여기에 14명의 1등이 나왔고, 각 19억 원대의 당첨금이 책정됐다.

 

다만 ‘세금’의 현실도 함께 따라왔다. 3억 원을 넘는 당첨금에는 33%가 과세된다. 1등 당첨자가 내야 하는 세금은 6억 3,373만 원 수준이며, 세금이 빠진 실수령액은 12억 8,667만 원으로 계산된다. 화면에 비친 숫자와 실제 통장에 찍히는 숫자 사이에는 이런 간격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회차 2등은 109명이었다. 1등 번호 다섯 개와 보너스 번호를 맞힌 사람들로, 각 4,110만 원의 당첨금을 받는다. 3억 원 이하 구간에는 세율 22%가 적용돼 904만 원 정도를 세금으로 내고, 손에 쥐는 금액은 3,206만 원 수준이다. 5개 번호를 맞힌 3등은 3,764명으로 각 119만 원을 받게 됐고, 4개 번호를 맞힌 4등은 180,212명이 5만 원을, 3개 번호를 맞힌 5등은 2,723,770명이 5,000원을 챙겼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 작은 용돈부터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금액까지 각자의 기대를 나눠 가진다.

 

당첨자의 지역 분포를 살펴보면 생활의 얼굴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떠오른다. 1등 14명 가운데 자동번호 선택 당첨자는 8명, 수동번호 선택 당첨자는 6명이다. 서울에서만 4명이 1등에 올랐고, 경기는 3명, 인천과 경남은 각각 2명, 충북·전남·경북에서 각 1명씩 나왔다. 소득·물가, 경쟁이 집중된 대도시와, 조금 더 느린 호흡으로 살아가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행운이 흩뿌려진 셈이다.

 

판매점 간판을 따라가 보면 풍경은 더 일상적이다. 자동 당첨자는 서울 강남구의 월드로또복권 판매점, 송파구 성지로또, 중랑구 태릉시장복권방 등에서 나왔다. 경기 성남·수원·시흥, 충북 제천, 경북 구미의 동네 로또 가판대와 편의점에서도 1등 번호가 찍혔다. 수동 번호를 고른 사람들은 서울 관악구의 ‘사당’, 인천 계양구의 ‘로또까페’와 ‘좋은터’, 전남 해남의 ‘땅끝 로또’, 경남 김해의 편의점 매장에서 인생 번호를 골랐다. 누군가는 주머니 속 종이 한 장을, 또 다른 누군가는 휴대전화 사진으로 그 순간을 남기며 조심스럽게 설렘을 표현했을 것이다.

 

장기간 통계를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이야깃거리 삼아 꺼내는 ‘행운 번호’의 얼굴도 보인다. 1202회까지 가장 많이 추첨된 번호는 12번과 34번으로 각각 204회(2.42%) 등장했다. 이어 27번과 33번이 203회(2.41%), 13번이 201회(2.39%), 7번이 199회(2.37%)로 뒤를 잇는다. 이 밖에도 17번, 3번, 43번, 1번, 37번, 6번, 20번, 38번, 4번, 24번, 26번, 40번 등 다양한 숫자들이 비슷한 비율로 반복 등장했다. 확률적으로는 모든 숫자가 공평하지만, 사람들은 무심코 이 같은 통계에 의미를 부여하며 “이번엔 12번을 넣어볼까”라며 자신만의 공식을 만들어 간다.

 

누적 통계는 로또가 우리 일상에 얼마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지 보여준다. 제1회부터 제1202회까지 로또 총 판매금액은 84조 9,621억 5,445만 원. 이 가운데 당첨금으로 돌아간 금액은 42조 4,810억 7,722만 원이다. 그동안 1등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10,030명, 2등은 60,653명, 3등은 2,290,709명에 달한다. 평균 1등 당첨금은 20억 1,754만 원, 가장 큰 1등 당첨금은 407억 2,295만 원이었다. 가장 적었던 1등 당첨금도 4억 593만 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위험을 감수한 놀이 소비’라고 설명한다. 거액의 당첨 확률은 극히 낮지만, 주변에 당첨 소식이 들려오는 순간 사람들은 확률보다 감정을 더 믿게 된다. 박모 경제심리학자는 “로또 구매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상상하는 시간에 있다”고 표현했다. 복권을 사는 그 몇 분 동안만큼은, 삶의 무게보다 기대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커뮤니티 반응도 흥미롭다. 추첨이 끝난 토요일 밤, 각종 게시판과 SNS에는 ‘2등만 됐어도 좋겠다’, ‘5천 원이라도 돌려받았다’는 글이 이어진다. 어떤 이는 매주 고정 번호를 지키며 일기를 쓰듯 결과를 기록하고, 또 다른 이는 기념일 날짜나 가족 생일로 조합해 ‘우리 집 번호’를 만든다. 누군가는 “당첨 안 돼도 그 몇 시간 설레는 맛에 산다”고 고백한다. 로또를 둘러싼 감정은 당첨과 낙첨으로만 나뉘지 않는다.

 

당첨 이후의 선택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복권 당첨금은 지급 개시일로부터 1년 안에 수령해야 한다. 마지막 날이 휴일이라면 다음 영업일까지 받을 수 있다. 무심코 지갑 속에 넣어둔 용지가 어느 날 인생을 바꿀 열쇠가 될 수도 있고, 유효기간이 지난 뒤 뒤늦게 발견되는 아쉬운 종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많은 판매점 주변에는 추첨 다음 날 아침, 번호를 꼼꼼히 확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반복된다.

 

토요일의 리듬도 로또와 함께 바뀌었다. 판매는 평일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지만, 추첨일 토요일에는 오후 8시에 마감돼 일요일 오전 6시까지 멈춘다. 추첨 방송은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35분에 전파를 탄다. 한 주의 끝, 저녁 식사를 마친 직후 혹은 TV 앞에 가족이 모이는 시간대와 맞물린다. 누군가는 채널을 돌리다 잠시 멈춰 숫자를 확인하고, 또 누군가는 “오늘도 안 됐네”라며 담담하게 다음 주를 기약한다.

 

동행복권 홈페이지에서는 지난 회차 당첨번호와 당첨 판매점 조회도 가능하다. 사람들은 이 페이지를 보며 ‘당첨이 잘 나오는 동네’ ‘자주 거론되는 명당’에 관심을 보인다. 특정 지역이나 점포가 반복 언급될수록 “이번엔 그쪽으로 가볼까” 하는 심리가 따라붙는다. 가는 길에 일부러 우회해 그 판매점을 찾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작은 여행이 되기도 한다.

 

로또는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숫자 여섯 개를 약속하지만, 더 자주 바꾸는 것은 우리의 일주일 감정선이다. 토요일 밤 잠시 설레고, 일요일엔 담담히 리셋하고, 월요일엔 다시 일상을 시작한다. 당첨 여부와 상관없이, 반복되는 이 패턴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불안과 희망을 조율한다.

 

거대한 잭팟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작은 기대를 품어 보는 일 자체가 위로가 되는 시대다. 종이 한 장, 숫자 여섯 개에 기대 보는 마음은 어쩌면 모두가 공유하는 소박한 바람일지 모른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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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동행복권#제120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