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허위조작정보 손배 최대 5배”…민주당 주도 과방위 통과, 국민의힘 퇴장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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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조작정보를 둘러싼 통제와 표현의 자유를 두고 여야가 또다시 정면 충돌했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방송 공정성 심의 축소를 담은 법안들이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정치권의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10일 국회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고, 허위·조작 정보 유포 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이른바 허위조작정보근절법을 의결했다. 표결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주도로 진행됐고, 국민의힘은 강행 처리에 반발해 표결 직전 회의장을 떠났다.

개정안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불법 또는 허위조작정보를 정보통신망에 유포해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 법원이 인정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법원 판결에서 불법·허위조작정보로 인정된 내용을 반복 유통한 경우,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최대 10억 원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언론단체들이 정치인과 공직자, 대기업 임원과 대주주 등 권력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관련 조항은 최종안에 담기지 않았다. 권력자의 소송 남용 우려가 남았다는 해석이 동시에 제기된다.

 

다만 여론 비판을 겨냥한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기 위한 특칙은 포함됐다. 법안은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법원이 조기에 각하할 수 있도록 했고, 피소된 사람이 법원에 중간판결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손해배상을 청구한 당사자가 공직 후보자, 공공기관장, 대기업 임원 등일 경우, 법원이 각하 결정을 내리면 그 사실을 공표하도록 명령해야 한다는 규정을 뒀다.

 

명예훼손 관련 형사 규정도 손질됐다. 개정안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허위사실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았다.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으면 형사절차가 진행되기 어렵게 해, 형사처벌의 문턱을 높인 셈이다.

 

국민의힘은 표현의 자유를 정면으로 제약하는 입법이라고 반발했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전체회의 의사진행발언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겠다는 독재적 입법”이라며 “본회의까지 상정된다면 필리버스터로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그는 허위·조작 정보의 판단 기준과 권력자 소송 남용 가능성을 거듭 문제 삼으며 재논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악의적 허위조작정보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맞섰다. 더불어민주당 한민수 의원은 “허위 조작 정보를 막아야 한다는 간절함에서 이뤄진 개정”이라며 “악의적·반복적인 허위조작정보 유포를 막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허위정보 피해가 개인과 선거, 공공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조국혁신당의 입장 변화도 법안 처리에 영향을 미쳤다. 민주당은 8일 과방위 법안소위에서 허위조작정보근절법 처리를 시도했지만, 당시 조국혁신당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그러나 조국혁신당은 이날 표결에선 찬성으로 돌아섰고, 민주당과 함께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였다. 제3당의 선택이 입법 향방을 좌우하는 정국 구도가 과방위에서도 재현된 셈이다.

 

과방위 전체회의에서는 방송 공정성 심의 축소를 골자로 한 방송법 및 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도 처리됐다. 개정안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가 방송의 공정성 유지 여부를 심의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행 방송법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에 공정성 유지 심의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개정안 제안 설명에서 “공정성 여부는 추상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고, 공정성 심의에 따른 제재가 방송사 재허가와 재승인 심사에 반영돼 방송의 독립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공정성 심의 기능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개정안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찬성으로 의결됐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이중 논쟁도 커지고 있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으로 온라인 표현에 대한 민사·행정 제재가 강화되는 동시에, 방송 공정성 심의는 축소되는 구조기 때문이다. 여당은 온라인 허위정보의 피해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야당은 권력 비판을 겨냥한 입막음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언론계에서는 허위정보 규제와 방송 심의 완화가 각각 어떤 방향으로 작동할지에 대한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편 과방위는 이날 회의에서 소형모듈원자로 개발 촉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도 여야 합의로 의결했다. 법안은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위한 정부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았다. 허위정보 규제와 방송법 개정에선 극명한 대립을 보였던 여야가 원전 관련 산업 지원 법안은 무리 없이 처리하며, 이해관계에 따라 협치와 대립이 교차하는 국회 풍경을 다시 보여줬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과 방송법 개정안은 향후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로 넘어가게 된다. 국민의힘이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만큼, 정보통신 규제와 방송 공정성 심의를 둘러싼 공방은 정국의 또 다른 뇌관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국회는 다음 회기에서 해당 법안들을 둘러싼 막판 쟁점 조정과 표결 절차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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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조작정보근절법#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