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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4년간 전관 30명 영입”…국회 청문회서 대관 로비 전면 쟁점화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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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싼 논란이 전관 출신 대관 인력과 로비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국회 청문회와 현안 질의를 계기로 쿠팡뿐 아니라 대기업·금융기관·대형 법무법인의 전관 채용 관행 전반에 대한 정치권 공방이 거세지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위원장실이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와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 자료를 분석해 2024년 1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취합한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과 검찰·경찰, 공정거래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인사 등 25명이 쿠팡 취업 가능 판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주로 고위 임원급으로 영입돼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대관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최근 현안 질의와 청문회 과정에서 쿠팡이 이 같은 대관 조직을 활용해 김범석 Inc 이사회 의장의 국회 출석을 막았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다. 야권 일각에서는 쿠팡 대관 조직을 두고 사실상 로비 조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박대준 전 쿠팡 대표의 지난 9월 오찬 자리에서 김 원내대표의 전 보좌관 인사 청탁이 오갔다는 취지의 녹취록 보도를 둘러싸고 여야가 충돌했다. 일부 언론이 해당 녹취 내용을 소개한 이후, 청문회에서 관련 공방이 집중됐다.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은 청문회 질의에서 이 보도를 거론하며 “어떤 로비가 있었는지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는 상황으로 김병기 원내대표의 전 보좌관을 출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전·현직 보좌관과 전관 인사들을 상대로 한 청문 절차 확대를 요구하며 공세 수위를 높이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김병기 원내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을 통해 정면 반박에 나섰다. 그는 “쿠팡의 인사조치와 저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국회의원으로서, 여당 원내대표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며 앞으로도 필요하면 누구든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오찬 자리가 민원 청취와 현안 점검 차원이었다고 강조하며 로비 개입 의혹을 부인했다.

 

쿠팡 측도 전관 채용 규모와 성격을 놓고 방어에 나섰다. 쿠팡의 한 고위 관계자는 “쿠팡의 고용 증가율 대비 전관 채용 인원은 다른 기업과 비교해 적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기업분석기관 CXO연구소 분석을 보면 지난해 쿠팡의 채용 인원은 2022년 대비 90퍼센트, 4만7천330명 늘어나 고용 증가 인원과 증가율이 모두 가장 높았다”고 강조했다. 급격한 사업 확장 과정에서 대관 및 규제 대응 인력이 일부 필요했다는 취지다.

 

다만 인사혁신처 공직윤리시스템과 공직자윤리위원회 자료를 종합하면, 쿠팡의 전관 영입은 최근 4년간 꾸준히 확대된 것으로 나타난다. 쿠팡은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 쿠팡페이 등 자회사까지 포함해 2025년 들어서만 10명의 전직 정부 인사를 채용했다. 2021년부터 2025년 11월까지 4년간 쿠팡에 취업한 정부 전직 인사는 총 30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채용된 10명은 이 기간 전체 전관 채용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전직 관료와 보좌관 영입은 쿠팡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사혁신처 공직윤리시스템에 올해 11월까지 공시된 퇴직공직자 취업 심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 한화, LIG넥스원, 현대차, CJ, 한국항공우주산업 등 주요 대기업과 김앤장 법률사무소, 법무법인 율촌 등 대형 로펌은 각 부처 출신 고위 공무원과 국회 보좌관들을 잇달아 채용했다. 취업 심사 승인 건수 기준으로 쿠팡은 올해 정부 전직 인사 채용 규모에서 다섯 번째 수준으로 파악됐다.

 

대형 로펌의 전관 영입은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 4년간 법무법인 YK에 재취업한 퇴직 공직자는 경찰청 등 각 부처를 합쳐 110여명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고문이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형사·행정·규제 사건 등 각종 법률 문제에 대응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 광장, 율촌 등 주요 법무법인들도 같은 기간 많게는 80여명, 적게는 30여명의 퇴직 공직자를 영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화, 현대차, SK, 롯데, 카카오, CJ 등 대기업 그룹 역시 공정거래, 산업·에너지, 노동, 금융 규제에 맞춰 전직 관료와 보좌진을 전무·상무·연구원·고문·사외이사 등으로 채용하는 흐름을 보였다.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 보험, 증권사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검찰·경찰 출신 인사를 영입해 금융·수사 리스크 관리에 투입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전관 채용이 합법적 취업 심사를 거친다 해도, 실제로는 규제 완화나 수사·조사 무마, 입법 로비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 플랫폼 규제, 노동 안전 등에서 대형 기업과 정부·국회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전관 인력이 ‘보이지 않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기업과 로펌 측에서는 복잡한 규제 환경과 잦은 제도 변화에 대응하려면 공직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취업 심사 제도와 ‘전관예우 금지’ 규제가 점차 강화된 만큼, 전관 영입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실제 로비 행위와 이해충돌 여부를 따져야 한다는 반론도 뒤따른다.

 

국회는 쿠팡 청문회를 계기로 개인정보 보호법, 이해충돌방지법, 전관 취업 제한 제도 전반에 대한 추가 논의에 착수할 가능성이 크다. 여야는 전관 로비 의혹을 놓고 강경한 공방을 이어가는 한편, 상임위원회별로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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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김병기#전관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