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사제 법제화 본격 가동…복무 10년 의무화에 의료계 반발
지역의료 인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의사제 도입이 법제화되면서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복무형과 계약형 두 축으로 설계된 이번 제도는 의대 입학 단계부터 졸업 후 경력 경로까지 국가가 직접 개입해 의료자원 배치를 조정하려는 시도로, 향후 보건의료 시스템 전반의 구조 변화를 예고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의료계는 의사 수 확대보다는 정주 여건과 보상체계,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며 제2의 의정 갈등 가능성을 경고한다.
3일 의료계와 정부에 따르면 국회는 전날 본회의를 열고 지역의사제 도입과 운영 근거를 담은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지역 간 의료 인력 편중을 완화하고 필수의료, 공공의료 기반을 보강하기 위해 지역의사 양성과 지원에 관한 전반적 틀을 정했다. 법 제정으로 정부는 학부 단계 의사 인력부터 수급 계획을 세우고, 일정 지역에 장기 복무를 의무화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확보했다.

지역의사제의 핵심은 복무형 지역의사와 계약형 지역의사 두 유형이다. 복무형은 의과대학 신입생 중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전형으로 뽑아 등록금 등 학비를 지원하는 대신, 졸업 후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도록 규정한다. 의과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졸업 후 3년 이내에 의사 면허를 취득하지 못하는 경우, 또는 정해진 기간 동안 의무 복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지원받은 학비 전액 또는 상당 부분을 반환해야 한다. 의무 복무 기간이 통상 전문의 수련을 포함한 최소 10년 이상 장기 경력 설계를 전제로 하는 만큼, 개인의 진로 선택권과 국가의 인력정책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복무형 지역의사 선발 규모와 적용 시점은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 논의를 거쳐 확정된다. 정부는 늦어도 2028학년도부터 지역의사전형 선발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현 고등학교 2학년 이하 학생들부터 제도 영향권에 들어감을 의미하며, 의대 입시 전략과 지역 대학들의 교육과정 설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 전망이다.
계약형 지역의사는 이미 면허를 취득한 전문의를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의료기관과 계약을 맺고 특정 지역에서 5년에서 10년가량 근무하는 조건으로 각종 지원과 인센티브를 받는다. 정부는 올해 7월부터 계약형 지역의사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며 현재 81명이 참여 중이다.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근무 지역과 근무 형태, 보상 수준, 가족 동반 여부 등 세부 조건이 의료진 선택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법률 제정을 계기로 하위법령을 속도감 있게 마련해 제도의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세부 시행령과 시행규칙에는 지역의사 선발 비율, 의무 복무 지역과 기간, 학비 지원 범위, 위반 시 환수 기준, 계약형 인센티브 구조 등이 구체적으로 담길 전망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역의사제 법제화가 지역 필수의료와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규정하며, 지역의사가 해당 지역 의료의 핵심 인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의료계는 제도의 취지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실행 방식과 해법의 방향에는 강하게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개별 전문가들은 지방 의료 붕괴의 근본 원인을 의사 수 부족보다는 인력 배치 구조, 열악한 근무 환경, 낮은 보상 수준에서 찾고 있다. 실제로 지방 중소병원과 군 단위 병원들은 필수진료과 야간당직, 응급의료 부담이 크지만 인력과 장비, 수가 보상은 상대적으로 낮아 젊은 의사들의 기피 현상이 심화된 상태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서는 의료전달체계 정비와 지역 정주 여건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차의료기관, 중소병원, 상급종합병원이 역할을 분담하는 의료전달체계 개편 없이 특정 인력을 강제 배치하는 방식은 지속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문과별 지역 인력 수요 추계와 지역 병의원 운영 현실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를 밀어붙이면, 예상치 못한 공백과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는 특히 수요 예측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의무 복무형 인력 공급을 확대할 경우 특정 전문과 쏠림과 필수과 기피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지역정책수가 등 지역 근무에 대한 별도 보상체계와 재정 투입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방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에서 주거, 교육,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장기 복무를 강제받는 의료진의 이탈과 소송 등 부작용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인사는 전체 의대 정원을 늘리지 않는 범위에서 특정 인력을 지역에 배치하려는 제도의 취지 자체는 이해한다면서도, 지방 의료 붕괴는 배치와 구조의 문제인 만큼 지역의사제가 근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지역의사제가 향후 의대 정원 증원, 복무 의무 확대 논의와 결합될 경우 2020년 의정 갈등에 버금가는 대규모 반발이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역의사제는 단기적으로는 인력 구멍이 큰 지역 공공병원과 필수의료 공백을 완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데이터 기반 의료인력 수급 추계, 지역별 맞춤형 보건의료계획, 디지털 헬스 인프라 구축과 같은 구조 개편과 연동돼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원격의료, 응급의료 네트워크, 공공의료 정보시스템 같은 디지털 기반 인프라가 갖춰질 경우, 지역의사 인력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진료의 질을 높일 수 있어 정책 패키지 설계가 중요해 보인다.
정부는 법 제정 이후 의료계와의 추가 협의와 보완입법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가 정주 여건, 수가 개편, 공공의료 인프라 투자 등 선결 과제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향후 하위법령 제정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산업계와 의료 현장은 이번 제도가 실질적인 지역의료 강화로 이어질지, 혹은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