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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영업비밀 분쟁 확대”…넥슨, 항소심 일부 승소에도 과제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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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개발 과정에서의 소스 코드와 개발 파일이 산업 내 핵심 자산으로 굳어지는 가운데, 대형 게임사의 비공개 프로젝트 자료 유출을 둘러싼 영업 비밀 소송이 항소심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법원은 유출된 개발 파일까지 영업 비밀로 폭넓게 인정해 게임 개발 데이터의 보호 범위를 넓히면서도, 실제 손해액 산정에서는 보다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해 배상 규모를 낮췄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두고 게임 개발 인력 이동과 프로젝트 재사용 관행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서울고등법원 민사5-2부는 4일 넥슨코리아가 아이언메이스를 상대로 제기한 항소심에서 아이언메이스가 넥슨의 비공개 프로젝트 P3와 관련한 영업 비밀을 침해했다고 판단하고, 손해배상액을 약 57억원으로 산정했다. 1심에서 인정된 85억원보다 28억원 줄었지만, 재판부는 영업 비밀로 보호되는 정보의 범위와 보호 기간은 오히려 확대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반면 다크 앤 다커가 P3와 저작권법상 실질적으로 유사한 표현을 공유하는지는 다시 한 번 부정돼, 저작권 침해 주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판결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영업 비밀의 구체적 범위와 기간에 대한 해석이다. 재판부는 2021년 4월 6일부터 6월 23일까지 아이언메이스 측이 개인 서버로 유출한 개발 제작 프로그램, 데이터 소스, 프로그램 소스 코드, 빌드 파일 등을 모두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단순 기획 문서나 아이디어 수준이 아니라 실제 개발에 사용 가능한 실행 파일과 코드, 관련 자료 일체를 보호 대상 자산으로 본 셈이다. 동시에 해당 자료가 경쟁 게임 개발에 미친 영향에 대해 P3 영업 비밀이 다크 앤 다커 개발에 기여한 비율을 15퍼센트로 산정해 손해액을 계산했다.

 

영업 비밀 보호 기간도 쟁점이었다. 법원은 넥슨을 떠난 P3 개발팀 핵심 인력이 퇴직한 2021년 7월 또는 8월부터 지난해 1월 31일까지를 약 2년 6개월의 보호 기간으로 산정했다. 특정 프로젝트의 기획 방향이나 장르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 시장에서 일반화될 수 있지만, 실제 구현에 사용된 소스 코드와 빌드 파일 등은 그 기간 동안 경쟁 프로젝트에 직접적인 경제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 해석에 가깝다. 이는 게임 산업에서 영업 비밀로서의 수명이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재판부는 영업 비밀 침해가 인정된 상황에서도 손해배상액 자체는 줄였다. 1심이 부정경쟁방지법상 손해액 추정 규정에 크게 의존해 추정치를 산정한 것과 달리, 항소심은 아이언메이스가 다크 앤 다커로 거둔 이익을 근거로, 그중 일정 부분을 넥슨의 손해로 직접 환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객관적 재무 자료와 매출, 이익 기여도를 근거로 산정한 만큼, 향후 소프트웨어·콘텐츠 분야 영업 비밀 소송에서 손해액을 책정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반면 저작권 침해 여부에 대해서는 1심 판단이 그대로 유지됐다. 법원은 P3와 다크 앤 다커가 모두 던전 탐험과 전리품 수집을 중심으로 한 장르적 공통점을 가진 것은 맞지만, 게임의 구체적 화면 구성, 캐릭터·맵 디자인, 세부 규칙 등 표현 형식이 실질적으로 유사한 수준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게임 개발에서 장르와 시스템 수준의 유사성은 허용되는 경쟁 범위로 보되, 실제 그래픽과 코드 레벨의 베끼기가 있어야 저작권 침해로 인정하는 기존 국제 판례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이번 판결을 둘러싼 업계의 관심은 결국 영업 비밀과 저작권 사이의 경계 설정에 모이고 있다. 영업 비밀은 비공개로 관리된 기술·경영 정보가 경쟁사에 이전되며 경제적 손실을 야기했는지가 핵심인 반면, 저작권은 창작 표현 그 자체의 유사성을 따진다. 법원이 P3 관련 자료의 유출과 사용을 광범위하게 영업 비밀 침해로 인정하면서도, 게임이라는 완성물의 외형과 구조를 둘러싼 저작권 침해는 부정한 것은 개발자 이직과 장르 경쟁은 허용하되, 내부 개발 파일을 그대로 들고 나와 신작 개발에 활용하는 행위는 명확히 차단하겠다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게임 업계 경쟁 구도를 놓고 보면 이번 판결은 대형 퍼블리셔와 인디·스타트업 개발사 사이의 긴장 관계를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형사는 고비용 프로젝트를 통해 축적한 엔진 커스터마이징 노하우, 빌드 자동화 스크립트, 밸런싱 데이터 등을 자산으로 보는 반면, 독립 개발사들은 이직 인력이 과거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행위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다크 앤 다커처럼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흥행에 성공한 타이틀에 영업 비밀 분쟁이 얽힐 경우, 퍼블리싱 계약과 투자 심사 과정에서 법적 리스크 검토가 강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세계적으로도 소프트웨어·게임 분야 영업 비밀 공방은 확대되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형 게임사들이 엔진 소스와 툴체인, 서버 운영 기술 등을 둘러싸고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으며,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도 모바일 게임 클론과 코드 유출을 둘러싼 분쟁이 빈번하다. 한국에서 진행된 이번 항소심 판결은 구체적인 파일 유형과 기여도, 보호 기간을 수치화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분쟁에서도 참고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규제와 제도 측면에서 보면, 게임 산업 역시 전통 제조업 못지않게 기술·데이터 보호 이슈가 전면에 떠오르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과 저작권법만으로는 클라우드 기반 협업 툴과 원격 저장소가 일상화된 개발 환경을 세밀하게 다루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사 내부의 정보 관리 수준에 따라 영업 비밀성 인정 여부가 갈릴 수 있는 만큼, 개발사들은 개발 서버 접근 통제, 로그 기록, 암호화 저장 등 보안 체계를 강화하고, 프로젝트 참여자와의 비밀 유지 약정을 더 촘촘하게 정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넥슨은 항소심 선고 직후 입장문을 통해 P3 정보뿐 아니라 P3 파일까지 영업 비밀 침해로 인정한 점에 의미를 두면서도, 손해배상액 축소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이언메이스 측은 P3와 다크 앤 다커가 기반과 방향성이 다른 별개의 프로젝트라고 주장해왔으며, 최종 상고 여부와 향후 대응 전략에 따라 소송전은 대법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계는 이번 판결이 실제로 게임 개발 현장의 인력 이동과 기술 공유 문화를 어떻게 재편할지, 또 법원이 어디까지를 보호할 만한 영업 비밀로 선을 그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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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아이언메이스#다크앤다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