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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단백질 설계로 드노보 항체를…갤럭스 베링거와 첫 검증 착수

임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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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단백질 설계 기술이 글로벌 제약사의 신약 개발 전략에 본격 투입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AI 신약 개발 기업 갤럭스가 글로벌 톱티어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과 손잡고 인공지능 기반 단백질 설계 플랫폼의 실전 성능을 검증하기로 하면서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이 초기 후보물질 발굴 방식 자체를 뒤바꾸는 AI 단백질 설계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갤럭스는 18일 베링거인겔하임과 AI 단백질 설계 기술을 활용한 공동 연구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국내 AI 단백질 설계 기업이 글로벌 대형 제약사와 정식 공동 연구 계약을 맺고 기술 검증에 나선 것은 처음으로 알려졌다. 양사는 계약에 따라 갤럭스의 단백질 설계 플랫폼 갤럭스디자인을 활용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을 초기 설계 단계부터 구현할 수 있는지 단계적으로 평가한다.  

갤럭스디자인의 핵심은 원하는 구조와 기능을 동시에 만족하는 단백질 서열을 인공지능으로 예측하고 생성하는 기술이다. 기존에는 무작위 변이와 대량 스크리닝을 반복하며 유효 후보를 찾아야 했지만, 갤럭스디자인은 계산 단계에서부터 표적과의 결합력, 안정성, 특이성을 고려해 단백질 서열을 제안한다. 회사 측은 단백질 접힘과 상호작용을 동시에 반영하는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기존 설계 방식보다 목표 기능 달성 확률을 크게 높였다고 설명한다.  

 

이번 공동 연구에서 검증하는 영역은 드노보 단백질 설계, 특히 드노보 항체 설계다. 드노보는 완전히 새로운 서열을 설계한다는 의미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항체 서열을 변형하는 수준을 넘어 AI가 요구 기능을 반영해 전혀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지표로 여겨진다. 갤럭스와 베링거인겔하임은 기존 방식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웠던 단백질을 실제로 설계하고, 표적에 대한 결합력과 기능 발현 정도를 실험으로 확인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갤럭스는 올해 다양한 치료 표적을 대상으로 드노보 항체 설계 결과를 연이어 발표하며 기술 저변을 넓혀왔다. 특히 상용 항체 치료제에서 관찰되는 수준인 pM 피코몰 단위의 강한 결합력을 보이는 신규 항체 서열을 설계하고, 이를 외부 실험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회사는 동일 표적에 대해 기존 대비 더 높은 결합력을 확보하거나, 동등한 결합력을 유지하면서도 서열 다변화를 통해 개발 리스크를 분산하는 등 신약 설계 단계에서 선택지를 넓히는 데 성과가 있었다고 강조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이 AI 단백질 설계를 신약 개발의 전면에 배치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AI는 주로 후보물질 순위를 정렬하거나 독성, 약동학 특성을 예측하는 보조 도구로 활용돼 왔다. 반면 갤럭스와 베링거인겔하임이 추진하는 연구는 아예 첫 단백질 설계 단계부터 AI가 주도권을 쥐는 구조에 가까운 만큼, 성공 시 초기 후보 발굴 기간과 비용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AI 단백질 설계와 드노보 항체 생성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추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을 상용화한 기업과 신약 개발 회사 간 파트너십이 빠르게 늘고 있고, 일부 업체는 AI 설계 후보물질을 이미 임상 단계로 진입시키고 있다. 다만 다수의 기술이 아직 특정 표적이나 제한된 모달리티에 머물러 있어, 실제 상용 항체 치료제와 견줄 수 있는 수준의 성능과 재현성을 확보한 플랫폼은 많지 않다는 평가도 공존한다. 이런 가운데 갤럭스가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글로벌 기준에서 기술 성능을 입증할 경우, 국내 AI 단백질 설계 기술의 위상도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규제 측면에서는 AI로 설계된 단백질과 항체도 기존 생물학적 제제와 동일한 안전성·유효성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각국 규제 당국은 현재까지 AI 활용 여부를 이유로 추가적인 임상 요건을 부과하지는 않지만, 설계 과정의 설명 가능성과 데이터 관리 체계에 대한 요구 수준이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향후 IND 단계에서 AI 설계 근거와 검증 데이터를 함께 제출하는 방식이 사실상 표준이 될 가능성도 거론한다.  

 

갤럭스와 베링거인겔하임은 이번 검증 연구를 출발점으로 협력 범위를 확장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특정 표적에 대한 파일럿 검증 이후, 항체 외 다른 단백질 치료제나 다중 표적을 겨냥한 복합 설계 등으로 응용 범위를 넓히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실제로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곧바로 임상 후보 수준의 품질을 갖춘 설계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글로벌 제약사의 파이프라인 구성 전략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석차옥 갤럭스 대표는 원하는 기능을 갖춘 단백질을 AI로 처음부터 설계하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이번 협력을 통해 정밀 설계 역량을 명확하게 입증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어 베링거인겔하임의 신약 개발 전문성과 갤럭스의 설계 기술이 결합하면 새로운 치료제 개발 가능성이 한층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업계는 갤럭스와 베링거인겔하임의 공동 연구 결과가 실제 파이프라인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이 과정이 AI 단백질 설계 기술의 글로벌 표준을 어떻게 재편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기술과 규제, 협업 모델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차세대 신약 개발 패러다임 전환의 관건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임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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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스#베링거인겔하임#갤럭스디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