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변해야" 계엄 사과 공방에 중진까지 가세…국민의힘 내 중도 확장 압박 고조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국민의힘 내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강성 지지층에 기대온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체제에 대해, 중도층 외연 확장을 위한 변화 요구가 초·재선에 이어 중진까지 가세하며 거세지는 모양새다.
내년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상황에서 장 대표가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분명한 사과를 피하고, 계엄 정당성을 옹호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과 보조를 맞춘 메시지를 내놓은 대목이 도마에 올랐다. 당 안팎에서는 이 노선이 유지되면 내년 지방선거 패배가 불가피하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원조 친윤으로 분류되는 3선 중진 윤한홍 의원은 5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주최 혼용무도 이재명 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에서 장 대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윤 의원은 장 대표가 지켜보는 가운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그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수위를 한층 높여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비판하는 꼴이니 우리가 아무리 이재명 정부를 비판해도 국민 마음에 다가가지 못한다. 백약이 무효"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를 국회의원을 만들어준 그 지지 세력, 한편으로는 당 대표를 만들어준 그런 분들에 대한 섭섭함은 지방선거 이겨서 보답하면 된다. 몇 달간 배신자 소리 들어도 된다"고 말하며 강성 지지층 눈치 보기를 경계했다.
조은희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윤 의원 발언 전문을 공유하며 "그 인식과 우리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깊이 공감한다"고 적었다. 계엄 문제와 관련한 사과 요구가 일부 비판 세력을 넘어 당내 다수 의견에 가깝다는 뉘앙스를 드러낸 셈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과 탄핵 정국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5선 권영세 의원도 계엄 사태에 대한 분명한 유감을 재차 밝혔다. 그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사후적으로 이번 계엄이 헌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음을 알게 된 만큼 국민께 깊은 우려를 안겨드린 것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에 무슨 모순이 있느냐"고 했다.
권 의원의 글은 지난 2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계엄 해제 표결 불참과 관련해 "국회에 있었더라도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한 내용이 재조명된 데 대한 반박 차원으로 해석된다. 그는 이미 3일에도 "계엄 선포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깊이 반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구시장을 지낸 재선 권영진 의원 역시 장 대표 노선 변화 필요성을 직설적으로 제기했다. 권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장 대표 행보를 묻는 질문에 "자기 정치를 위해서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장 대표는 중도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며 "군중과 멀어지면 지지기반이 붕괴한다는 것은 착각인데, 그런 부분에 장 대표가 포로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던 소장파 김용태 의원도 라디오에서 장 대표의 12·3 비상계엄 1년 관련 메시지를 문제 삼았다. 장 대표가 명확한 사과를 하지 않은 데 대해 그는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에 개딸이 있다고 해서 국민의힘에 윤어게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하며, 강성 팬덤 정치와의 결별을 주문했다.
김 의원은 이어 "당 지도부가 강성 지지층이나 극우 유튜버들과만 소통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당내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상식에 맞는 판단을 하기 위해서라도 당내 많은 의원과 소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계엄 사태를 계기로 장 대표 지도부와 일반 의원들 사이 소통 단절 우려까지 제기된 셈이다.
장 대표에 대한 변화 요구는 당 지지율 정체 상황과 맞물려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20퍼센트대 중반 박스권에 머무는 가운데, 중도층 확장 없이는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위기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권영진 의원은 "우리가 변해서 제대로 된 야당의 길을 가면 무당층은 국민의힘에 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대로 간다면 2018년 보수정당 지방선거 참패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러진 201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14곳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주며 참패한 바 있다.
장 대표가 당내 사과 요구를 계속 거부해온 점을 고려하면 향후 행보를 둘러싼 고심은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장 대표는 12·3 계엄 1주년을 앞뒀던 1일에도 "과거에서 벗어나자고 외치는 것 자체가 과거에 머무는 것"이라며 사과 요구를 일축했다. 그러나 중진까지 나선 비판 공세 속에서 이 같은 태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국민의힘은 오는 8일 이재명 정부와 각을 세우는 국민고발회 형식의 의원총회를 열 계획이다. 당 지도부는 정부·여당 견제 메시지에 무게를 두겠다는 입장이지만, 회의 과정에서 장 대표 리더십과 노선을 둘러싼 추가 비판이 분출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장 대표는 당분간 의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면서 대내외 전략을 재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들 사이에는 즉각적인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등 극단 처방보다는, 장 대표에게 일정 기간 변화의 시간을 줘야 한다는 기류도 공존한다.
다만 장 대표 측 주변에선 윤한홍 의원이 이재명 정부 6개월을 비판하는 공식 회의장에서 장 대표를 직접 겨냥한 점을 두고 "아쉽다"는 반응도 감지됐다. 계엄 사태를 둘러싼 책임 인식과 전략 노선을 둘러싸고 국민의힘 내부 논쟁이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국회는 계엄 사태 후속 논의와 지방선거 준비를 병행하며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