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도 데이터로 검증한다” 식약처, 불닭 리콜 한달만에 뒤집다
매운맛 라면의 캡사이신 함량을 둘러싼 규제 공방이 글로벌 식품 교역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덴마크가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시리즈에 대해 급성 중독 위험을 이유로 리콜을 발동하자, 한국 정부는 과학 데이터와 외교 채널을 결합한 ‘규제외교’로 한 달 만에 철회를 이끌어냈다. 디지털 분석과 정량 평가에 기반한 이번 대응은 향후 K푸드 수출 과정에서 반복될 수 있는 해외 규제에 대한 표준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매운맛 라면 분쟁이 향후 식품 안전 기준을 둘러싼 데이터 경쟁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
2024년 6월 덴마크 수의식품청은 불닭볶음면 2X 스파이시, 3X 스파이시, 불닭볶음탕면 등 일부 제품의 캡사이신 함량이 과도하다며 리콜을 발표했다. 북미와 유럽에서 ‘매운맛 챌린지’의 상징이 된 대표 수출품에 대해 유럽 규제당국이 직접 회수 명령을 내린 첫 사례였다. 삼양식품은 즉각 현지 규정을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단일 기업이 국가 식품 안전 규제당국과 맞서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발표 하루 만에 정부 차원의 전담 대응 체계를 가동했다. 국내 식품 사고처럼 국내 기준만 따질 수 없는 사안인 만큼, 국제 규제 동향과 과학적 데이터, 외교적 소통을 한 묶음으로 설계한 새로운 방식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유럽 내 다른 국가로 리콜 조치가 번질 경우 K푸드 전체 수출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식약처는 처장을 대응단장으로, 식품안전정책국장을 반장으로 하는 긴급 대응단을 꾸렸다. 식품안전정책과, 식품기준과, 글로벌수출전략담당관, 위해정보과,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식품위해평가부 등이 모두 참여해 수평적 협업 구조를 형성했다. 단일 부서가 각각 대응하던 과거와 달리, 정보 수집부터 분석, 외교 채널 협의, 국내 조치까지를 하나의 패키지로 작동시키는 구조였다.
대응단은 전략기획팀, 과학분석팀, 국제협력정보팀 등 세 개 팀으로 나눠 기능별 전담 체계를 구축했다. 전략기획팀은 어떤 논리로 덴마크 측과 협상할지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내 기준과 국제 기준이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을 미리 점검했다. 또한 각 팀이 생산한 데이터를 조합해 메시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핵심은 과학분석팀이었다. 식품기준과를 중심으로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식품위해평가과, 오염물질과, 신종유해물질과 등이 합류해 유럽 내 캡사이신 규제 현황과 위해성 평가 문헌을 정밀 검토했다. 동시에 불닭볶음면 제품을 조리 전과 조리 후로 나눠 실제 캡사이신 함량을 정량 분석하는 시험 계획을 수립했다. 실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이 과정은, 제품 광고에 적힌 스코빌 지수를 토대로 간접 추정에 의존한 덴마크 측 평가 방식과 정면으로 대비됐다.
국제협력정보팀은 규제 정보와 여론 동향을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유럽 식품 사료 신속경보시스템 RASFF에 등록된 관련 자료와 유럽 각국 언론 보도를 모아 리스크 확산 가능성을 분석했고, 외교부 및 주덴마크 대사관과 연계해 덴마크 수의식품청, 덴마크 국립식품연구소와의 소통 채널을 열었다. 단순 질의 수준을 넘어서 과학 평가 근거와 기준값 설정 방식에 대한 실무 협의를 진행한 점이 특징이다.
정부는 민간과의 협업도 강화했다. 삼양식품과는 별도 연락망을 구축해 제품 구성, 홍보 문구, 수출 국가별 판매 실적 등 세부 데이터를 공유받았고, 소비자 실제 섭취 패턴에 대한 정보도 수집했다. 캡사이신 함량 분석에서는 외부 공인 검사기관을 참여시켜 정부 시험 결과와 교차 검증을 실시했다. 동일 시료를 서로 다른 기관이 반복 측정함으로써 국제 협상 과정에서 데이터 신뢰도를 높이려는 의도였다.
덴마크 수의식품청은 리콜 발동 이후 덴마크 국립식품연구소에 평가를 의뢰해 세 차례에 걸쳐 과학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들은 제품 홍보물에 적힌 스코빌 지수를 기준으로 특정 연령대가 한 번에 섭취할 수 있다고 가정한 양을 설정하고, 이를 토대로 급성 노출 위험을 산출하는 방식에 의존했다. 평가가 거듭될수록 기준과 분석 방식이 일부 수정된 것은 덴마크 내부에서도 과학적 설계에 보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 정부의 대응 논리는 이 대목을 정조준했다. 우선 조리 전 분말과 조리 후 국물 포함 섭취 상태에서의 캡사이신 농도를 따로 측정해 실제 한 끼 식사 당 노출량을 제시했다. 여기에 타국에서 유통 중인 유사 매운맛 제품과의 비교 자료를 붙여, 불닭볶음면이 글로벌 시장에서 유독 높은 수준의 위험 제품으로 분류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스코빌 지수라는 마케팅 지표가 안전성 평가의 직접 지표로 쓰이기 어렵다는 점도 구체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국제 비교 관점에서 보면, 유럽 다수 국가와 미국, 아시아 주요국은 매운맛 라면에 대해 별도 캡사이신 상한 기준을 두지 않고 있다. 알레르기 유발 성분과 미생물, 중금속 등에 비해 과학적 합의 수준이 낮다는 이유도 작용한다. 덴마크의 선택적 리콜이 다른 국가의 규제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점은, 이번 사안을 글로벌 규제 당국 간 소통의 시험대로 만든 요소였다. 식약처가 기본 안전성 데이터와 더불어 국제 기준 정합성 문제를 동시에 제기한 배경이다.
이번 사례는 바이오 통계와 독성학 데이터, 국제 커뮤니케이션을 결합한 ‘규제외교 플랫폼’의 초기 버전으로도 평가된다. 식품 분야에서는 EU의 식품안전청, 미국의 FDA 등과 데이터 포맷, 위해성 평가 모델을 맞추는 작업이 필수다. 한국 정부가 라면 한 종류를 둘러싼 논쟁에 캡사이신 용량 반응 곡선, 연령대별 체중당 섭취량 시뮬레이션 등 정량 모델을 동원한 것은, 향후 알레르기 유발 물질이나 신규 첨가물 분쟁에도 그대로 활용될 수 있는 경험이다.
다만 긴급 대응단이 사후적으로 구성된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인기 제품이 해외에서 바이럴을 타며 확산되는 속도에 비해, 국가 간 규제 기준을 사전 조율하는 속도는 더디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정 성분을 둘러싼 기준이 국가마다 상이한 만큼,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해 선제적인 위험소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식약처가 발간한 매운맛 라면 해외 수출규제 대응 백서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향후 유사 사례 발생 시 바로 가동할 수 있는 대응 매뉴얼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문가들은 매운맛 라면 분쟁을 계기로, 식품 산업 역시 데이터 기반 협상 역량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캡사이신을 둘러싼 이번 사례처럼, 과학적 근거와 규제 철학, 각국의 소비자 보호 기준이 충돌하는 상황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적 대응과 외교 협의가 실제 시장 안착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