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성장성 기대에 제동”…뉴욕증시, 기술주 조정에 나스닥 급락 우려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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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각 기준 12일, 미국(USA)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인공지능(AI) 산업 성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부각되며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일제히 약세로 출발했다. 브로드컴과 오라클 등 주요 기술기업의 보수적인 실적 전망이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면서, 그간 상승장을 이끌었던 AI 관련주의 조정 가능성에 글로벌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번 흐름은 미국 증시 내 업종 회전 가속과 기술주 중심 랠리의 피로감 확대라는 맥락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지시각 기준 12일 장 초반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9.99포인트(0.04%) 하락한 4만8천684.02를 기록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50.52포인트(0.73%) 내린 6천850.48에, 기술주 비중이 높은 나스닥 종합지수는 283.78포인트(1.20%) 떨어진 2만3천310.08에서 거래됐다. 3대 지수 모두 하락세를 보였지만 특히 나스닥이 두 자릿수 포인트 낙폭을 기록하며, AI 성장 기대를 둘러싼 불안이 기술주 전반에 강하게 반영되는 모습이다.

뉴욕증시, AI 성장성 우려에 기술주 약세…나스닥 1.20% 하락
뉴욕증시, AI 성장성 우려에 기술주 약세…나스닥 1.20% 하락

시장은 대표적인 AI 수혜주로 평가받아 온 브로드컴의 실적 전망과 경영진 발언에 주목했다. 브로드컴은 전날 발표한 매출 전망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AI 산업 전반의 성장 속도에 대한 의문을 키웠다. 호크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2025회계연도 4분기 실적 발표 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1분기 비 AI 매출 전망치는 전년 동기와 큰 차이가 없다”고 언급해 전통 사업 부문의 정체를 시사했다. 그는 이어 “빠르게 성장하는 AI 관련 매출의 총마진이 비 AI 매출보다 더 낮다”고 설명하며, 고성장을 구가해 온 AI 사업의 수익성 한계를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호크 탄 CEO는 향후 6분기에 걸쳐 출하될 AI 제품 수주 잔고가 최소 730억달러에 이른다고 밝혔지만, 이 규모는 시장이 기대해 온 폭발적 성장 스토리를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브로드컴이 글로벌 수요 변동과 업황 불확실성을 이유로 2026회계연도 AI 매출 전망치 제시를 미루겠다고 밝힌 점도 성장 가시성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하는 요인이 됐다. 앞서 오라클 역시 AI·클라우드 사업 성장 전망을 다소 보수적으로 제시한 바 있어, 양사의 기조가 맞물리며 AI 산업 전반을 둘러싼 낙관론에 균열을 가져온 셈이다.

 

이 같은 우려는 개별 종목 주가에 즉각 반영됐다. 브로드컴 주가는 장중 8%를 웃도는 급락세를 보였고, 오라클도 3% 가까이 떨어졌다. 데이터 분석 및 AI 플랫폼 업체인 팔란티어 역시 2% 이상 하락하며 AI·클라우드 관련주 약세 흐름에 동참했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AI를 축으로 형성돼 온 고평가 기술주의 밸류에이션 조정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카일리 로다 캐피탈닷컴 선임 금융시장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이 기술주에서 성장에 민감한 부문으로 방향을 돌리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는 금리 인하 국면에서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고 상대적으로 밸류에이션이 낮은 업종을 찾아가는 시도”라며 성장 모멘텀 중심 투자에서 경기민감·방어적 섹터로 자금이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시각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전환 기대감과도 맞물려 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커질수록, 이자 비용 부담이 큰 기업이나 경기 변화에 민감한 업종에 대한 투자 매력이 부각된다는 설명이다.

 

업종별 수급에서도 회전 흐름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기술, 통신, 에너지 업종이 일제히 약세를 기록한 반면, 금융, 소비재, 부동산 등은 강세를 보이며 방어적이거나 경기민감 성격의 섹터로 매기가 이동했다. 그동안 AI와 반도체, 클라우드 등 고성장 기술 업종에 집중됐던 자금이, 금리와 경기 사이클 변화에 보다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업종으로 분산되는 양상이다. 이는 미국(USA) 증시 내에서 AI 수혜주 쏠림 현상이 완화되는 동시에, 중장기 성장성과 단기 수익성을 둘러싼 시장의 시각이 보다 보수적으로 조정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개별 종목별로는 실적과 뉴스에 따라 엇갈린 흐름이 나타났다. 의류 소매업체 룰루레몬 애슬레티카는 캘빈 맥도널드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년간 이어진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10% 가까운 급등세를 연출했다. 시장에서는 경영진 교체가 체질 개선과 실적 반등 기대를 자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마초 관련주 틸레이브랜즈 주가는 24% 이상 치솟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행 분류체계상 대마초를 가장 규제가 강한 1급 물질에서 3급 물질로 재분류하는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관련 산업 규제 완화 기대가 강하게 반영됐다. 고급 가구업체 RH도 실적 발표에서 동종 업계 경쟁사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평가되며 11% 상승했다.

 

유럽 주요 증시는 미국과는 다른 혼조 양상을 보였다. 유로존 대표 지수인 유로스톡스50 지수는 전장보다 0.11% 내린 5천747.44에 거래되고 있다. 프랑스(France) CAC40 지수와 독일(Germany) DAX 지수는 각각 0.51%, 0.16% 상승하며 강세를 나타냈고, 영국(United Kingdom) FTSE100 지수는 0.18% 하락해 약세를 보였다. 미국발 AI 성장 우려가 글로벌 투자심리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유럽(Europe)에서는 업종 구성과 거시 변수 차이에 따라 지수별로 상반된 흐름이 전개되는 모습이다.

 

원자재 시장에서는 국제 유가가 약보합권을 나타냈다. 같은 시각 근월물인 2026년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보다 0.38% 내린 배럴당 57.38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경기 둔화 우려와 공급 변수 사이 힘겨루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에너지 가격은 뚜렷한 방향성 없이 제한적 범위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흐름이다.

 

AI 성장성에 대한 기대가 조정받는 가운데 기술주 중심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금융·소비재·부동산 등으로의 업종 회전이 가속되는 모습이 관찰된다. 뉴욕증시의 이번 조정이 단기 숨 고르기에 그칠지, 고평가 기술주에 대한 구조적 재평가로 이어질지는 향후 주요 기업 실적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정책 기조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사회와 글로벌 투자자들은 AI 관련 투자의 속도 조절이 세계 증시 전반의 리스크 재배분으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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