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9조6천억대 배터리 계약 해지 통보받은 LG에너지솔루션…포드, 전기차 감산 여파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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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수요 둔화와 정책 환경 변화 여파로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 포드가 맺었던 초대형 전기차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이 해지되며 글로벌 배터리 산업 전반에 긴장감이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보조금 축소와 완성차 업체의 전략 수정이 맞물리며 배터리 기업들의 중장기 수주 구조에도 재편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의 협력 구도가 어떤 방향으로 재정비될지 주목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12월 17일 공시를 통해 포드와 체결한 전기차 배터리 셀과 모듈 장기 공급계약이 거래 상대방의 해지 통보로 종료됐다고 밝혔다. 양사가 지난해 10월 체결한 두 건의 장기 계약 가운데 이번에 해지된 계약은 2027년부터 2032년까지 6년간 총 75GWh 규모 배터리를 공급하는 내용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해지된 계약 금액이 약 9조6천30억 원으로, 최근 매출액 대비 28.5%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 9조6천억대 포드 배터리 공급계약 해지…전기차 수요 정체 여파
‘LG에너지솔루션’ 9조6천억대 포드 배터리 공급계약 해지…전기차 수요 정체 여파

애초 계약에 따라 공급될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에서 전량 생산해 유럽 시장으로 납품할 예정이었다. 업계에서는 해당 물량이 포드의 차세대 전기 상용차 모델 E-트랜짓에 탑재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상용차 전동화 확대의 상징적 사례로 주목받아 왔다. 계약 해지로 폴란드 공장의 중장기 가동 계획과 유럽향 공급 포트폴리오에도 조정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계약 종료 배경에 대해 최근의 정책 환경과 전기차 수요 전망 변화로 포드가 일부 전기차 모델 생산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이를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다만 회사 측은 대규모 계약이 무산됐음에도 “고객사와 중장기적 협력 관계는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하며 포드와의 다른 프로젝트와 신규 협력 기회 발굴에 힘을 싣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포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기차 구매자에게 적용되던 세액 공제 혜택을 폐지한 이후 전기차 부문의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졌다고 판단해 사업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 차량과 내연기관 차량에 역량을 집중하고, 전기차 부문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규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재편하고 있다. 특히 F-150 라이트닝으로 대표되던 대형 전기 픽업트럭 생산을 중단하고, 트럭과 밴, 저가형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 사업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견인하던 세제 혜택이 축소되면서 미국 시장을 겨냥해 공격적으로 투자해 온 완성차와 배터리 업계는 수익성 재점검에 나서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포드의 전략 변경에 따라 향후 대형 전기 픽업과 상용 전기차 중심의 배터리 수요가 줄고, 대신 하이브리드 및 상대적으로 저용량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가 늘어나는 구조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배터리 업체들의 제품 믹스와 투자 계획도 유연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는 이번 해지 건과 별도로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34GWh를 공급하는 또 다른 장기 계약을 체결해 둔 상태다. 남은 계약은 유지되는 만큼 단기적으로 협력 관계가 완전히 약화됐다고 보긴 어렵지만, 대규모 증설을 전제로 한 배터리 공급 계약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시장의 경계감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라인업 조정 속도가 빨라질수록 배터리 업계의 수주 리스크 관리와 계약 구조 다변화가 핵심 과제로 떠오를 수 있다고 본다.

 

향후 LG에너지솔루션의 대응과 포드의 추가 전략 수정, 그리고 미국 전기차 지원정책 재편 방향에 따라 배터리 공급 계약 구조는 다시 한 번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와 투자자들은 주요 완성차 업체의 전동화 로드맵과 각국의 친환경차 관련 제도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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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너지솔루션#포드#e-트랜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