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쿠팡 개인정보 유출"…여론, 책임자 사법처리 요구 확산

문수빈 기자
입력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겪고 있는 쿠팡을 둘러싸고 제재 수위를 둘러싼 여론이 갈수록 거세지는 양상이다. 단순 과태료나 영업정지 수준을 넘어선 형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정부와 국회를 향해 분출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축적된 방대한 이용자 데이터가 핵심 인프라가 된 상황에서, 보안 사고와 기업 지배구조 이슈가 결합한 이번 사태는 국내 디지털 플랫폼 규제 패러다임을 재편할 분기점으로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여론의 강도가 향후 데이터보호법 적용과 플랫폼 책임 범위를 둘러싼 정책 논의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12월 26일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 512명을 대상으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적절한 처벌 수위를 묻는 자동응답조사 방식을 진행했다. 결과를 29일 공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32.0퍼센트가 쿠팡 사태에 대해 책임자 사법처리가 가장 적절하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서 영업정지를 선택한 응답 비율은 29.4퍼센트로, 형사 처벌 요구보다 다소 낮았다. 과태료 부과를 제시한 응답은 14.3퍼센트, 신규 사업 제한은 6.1퍼센트에 머물렀다. 데이터보호 위반에 대해 행정제재보다 형사적 책임을 우선 요구하는 정서가 뚜렷하게 드러난 셈이다.

이번 조사는 임의 전화걸기 방식으로 표본을 구성했으며, 자동응답조사 방식으로 수행됐다. 응답률은 4.4퍼센트, 표본오차는 95퍼센트 신뢰수준에서 플러스마이너스 4.3퍼센트 포인트다. 플랫폼 규제 정책을 설계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빅테크 사업자에 대한 처벌 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사회적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거대 전자상거래 사업자의 경우 단일 사고가 온라인 결제, 물류, 핀테크, 광고 등 복수의 디지털 생태계로 연쇄 전파될 수 있어, 응답자들이 강력한 사법 대응을 요구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쿠팡을 둘러싼 형사 사건 전반에 대한 재점검 요구도 거세다. 최근 제기된 퇴직금 관련 수사 외압 의혹과 맞물리면서, 응답자의 67.3퍼센트는 쿠팡의 형사 사건과 노동 사건 전반에 대한 전수조사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반대 의견은 22.6퍼센트에 그쳐, 기업 단위의 종합 감사와 수사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정보보안 이슈가 단순한 IT 사고를 넘어 인사·노동 문제와 결합하면서, 플랫폼 지배구조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쿠팡의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여론은 비판적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의 행보 중 국민적 공분을 키운 요인으로 미국 법인 구조를 앞세워 한국 소비자 권리와 국내법 적용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23.3퍼센트로 가장 많이 꼽았다. 실질적인 지배주주임에도 한국 법인 대표를 전면에 내세워 책임을 피하는 듯 보였다는 응답도 22.5퍼센트에 달했다. 이 같은 인식은 글로벌 본사를 두고 한국에 운영 법인을 둔 플랫폼 기업들의 책임 소재를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정책 논의와 직결된다.

 

그 외에도 사고 수습보다 미국 정치권 로비에 집중하는 것처럼 비친 행보가 18.6퍼센트, 증거 인멸 지시 및 과로사 은폐 의혹이 13.5퍼센트, 국회 청문회 불출석 통보가 6.5퍼센트 순으로 지적됐다. 국내에서 대규모 이용자 데이터를 처리하며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업자가, 법률과 정치 환경이 전혀 다른 해외 본사 구조를 앞세워 책임 범위를 조정하려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여론이 향후 플랫폼 기업의 상장 구조, 국적, 실제 지배력에 따른 규제 기준 설정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

 

김범석 의장이 미국 국적을 이유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다수의 응답자가 공감했다. 전체 응답자의 69.1퍼센트는 이러한 문제 제기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국회 출석 요구를 무시한 외국인 경영자의 국내 입국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에 대해서도 63.2퍼센트가 찬성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글로벌 ICT 기업이 여러 국가를 오가며 사업을 운영하는 현실에서, 경영진의 국적과 법적 책임 수준을 조정하는 입법 논의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플랫폼 이용 행태 변화도 적지 않게 감지됐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쿠팡 사태가 서비스 이용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은 68.5퍼센트에 달했다. 이 가운데 탈퇴를 고민하고 있다는 응답이 26.1퍼센트, 이용 횟수를 줄일 예정이라는 응답이 18.5퍼센트, 이미 탈퇴했다고 밝힌 응답이 16.1퍼센트로 집계됐다. 이른바 탈팡으로 묶이는 응답이 60퍼센트에 이른 셈이다. 디지털 플랫폼 산업에서 신뢰 상실이 곧바로 트래픽 감소와 매출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기존과 동일하게 서비스를 이용하겠다는 응답도 19.2퍼센트 존재했다. 가격, 배송 속도, 상품 선택권 등 편의성이 여전히 높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처럼 상당수 이용자가 강한 비판 여론 속에서도 플랫폼에 머무는 현상은, 데이터 보호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대체재 부족과 서비스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향후 쿠팡이 보안 시스템 강화와 투명성 제고에 나설 경우 이탈 흐름 일부가 되돌아올 가능성도 관측하고 있다.

 

국내외에서는 이미 개인정보 보호 규제와 플랫폼 책임 범위를 둘러싼 기준 강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일반 개인정보보호법과 더불어 디지털서비스법, 디지털시장법을 통해 초대형 플랫폼에 강화된 책임을 요구하는 추세다. 미국도 각 주 단위로 소비자 프라이버시 법률을 정비하고 있으며, 빅테크의 데이터 활용과 지배 구조를 견제하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호법을 중심으로 과징금 상향, 집단소송 제도 도입,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쿠팡 사태가 입법 논의에 직접적인 촉매 역할을 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IT 업계와 법조계에서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단순한 특정 기업 비판을 넘어, 대형 플랫폼 사업자 전반에 대한 규범 재설정을 요구하는 신호로 보인다고 분석한다. 특히 데이터는 디지털 경제의 핵심 자산이자 의료, 금융, 유통 등 다양한 IT·바이오 융합 산업의 토대라는 점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기업 책임 구조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재정립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향후 정부와 국회가 쿠팡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책임, 경영진 국적 문제, 보안 투자 의무 등을 어디까지 제도화할지에 따라 국내 디지털 생태계의 신뢰도와 경쟁력도 갈릴 전망이다.

 

산업계는 쿠팡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강경한 여론이 실제 법과 제도 변화로 이어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 혁신과 이용자 보호 사이의 균형이 어떻게 설정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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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김범석#리얼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