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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옆 또 다른 여행지도”…겨울 경기, 활기와 고요를 골라 즐기는 시간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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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말마다 서울 밖으로 짧게 숨을 돌리러 떠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먼 여행을 결심해야만 비로소 쉰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한 시간 남짓 이동해도 충분히 다른 계절과 감정을 만나는 일이 됐다. 사소한 겨울 나들이 계획 속에, 달라진 쉼의 기준이 담겨 있다.

 

경기도는 그런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서울을 휘감듯 둘러싼 지리적 이점 덕분에, 무심코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이내 풍경이 달라진다. 놀이기구의 환호성이 이어지는 테마파크가 있는가 하면, 눈이 내려야 비로소 완성되는 전통마을도 있다. 추운 날씨가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해 넓은 실내 복합몰과 고요한 수목원도 기다린다. 활기와 고요, 체험과 휴식이 나란히 놓인 지도 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쓴다.

출처=한국관광공사 화담숲
출처=한국관광공사 화담숲

과천의 서울랜드는 그런 선택지 중 가장 에너지가 높은 공간이다. 계절이 바뀌어도 이곳의 공기는 늘 분주하다. 회전하는 놀이기구와 공중을 가르는 비명, 이어지는 음악과 퍼레이드가 겨울 공기를 데운다. 특히 해가 짧아지는 계절이면 밤이 곧 무대가 된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공원 구석구석을 채우고, 아이들이 손에 쥔 작은 야광봉까지 합쳐져 또 하나의 빛의 강을 만든다. 가족 단위 방문객은 코트 깃을 여미면서도 사진을 찍느라 걸음을 쉽게 재촉하지 못하고, 연인은 장갑 낀 손을 맞잡은 채 천천히 빛의 길을 따라 걷는다. 넓은 주차장 덕분에 차로 찾아와도 동선이 수월해, “준비는 가볍고 추억은 묵직한 곳”으로 기억된다.

 

조금 더 차분한 겨울을 원한다면 용인 한국민속촌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풍경은 속도를 늦춘다. 잘 정돈된 초가와 기와집이 눈을 이고 서 있고, 마당 한켠에는 장독대가 줄지어 앉아 있다. 흰 눈이 처마 끝에 살짝 걸터앉은 모습은 마치 오래된 수묵화를 눈앞에 펼쳐놓은 듯하다. 한복을 대여해 입은 사람들은 문지방을 살피며 조심조심 걷는데, 그 순간만큼은 스마트폰도, 빠듯한 일정도 잠시 뒤로 밀린다. 사람들은 옛 장터 공연을 지켜보며 선조들의 생활상을 떠올리고, 기와지붕으로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다가 “겨울이 이렇게 고요했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전통문화 체험은 누군가에게는 학습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고 지냈던 시간의 속도를 되찾는 일이 된다.

 

춥고 긴 겨울날, 몸은 따뜻한 실내를 원하고 마음은 색다른 자극을 찾을 때가 있다. 이럴 때 하남의 스타필드 하남은 좋은 타협점이 된다. 넓게 펼쳐진 실내 복합 공간 안에는 각종 브랜드 매장이 끝없이 이어지고, 곳곳에 자리한 레저 시설이 쇼핑의 단조로움을 덜어준다. 수영장과 찜질을 결합한 공간에서 피로를 풀거나, 실내 스포츠 시설에서 땀을 흘리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은 한 건물 안에서 쇼핑과 놀이, 식사를 모두 해결하며 “날씨 걱정 없는 하루”를 선택한다. 겨울철이면 “추위를 피하는 나들이”가 새로운 기준이 되고, 그런 흐름 속에서 스타필드 하남 같은 공간은 일상과 여행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문다.

 

한편 광주의 화담숲은 전혀 다른 결의 겨울을 선물한다. 도심을 빠져나와 도착한 수목원 입구에 서면, 가장 먼저 귀가 조용해진다. 나무와 흙, 눈이 만들어내는 소리 없는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속도를 낮출 수밖에 없다. 잘 다듬어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발밑에서 눈이 사각거리고, 가지마다 맺힌 눈꽃이 길잡이처럼 이어진다. 누군가는 서로 말수를 줄이고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또 누군가는 카메라 대신 눈으로 풍경을 오래 담으려 천천히 멈춰 선다. 맑은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는 순간, “휴식이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는 일”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자연이 내어준 고요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낮아지고, 숨은 편안해진다.

 

이런 변화는 사람들의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놀이기구를 타고 환호성을 지르다가도, 다음 주에는 눈 덮인 전통마을을 걸으며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한 주는 복합 쇼핑몰에서 쾌적한 실내 나들이를 즐기고, 또 다른 주에는 숲길에서 묵직한 정적과 마주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겨울 경기 한 바퀴 코스”를 공유하는 글이 수시로 올라오고, “아이와 함께 서울랜드와 한국민속촌을 동시에 다녀왔다”거나 “화담숲으로 혼자 다녀온 뒤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후기가 이어진다. 사람들은 이제 한 가지 방식의 여행보다 그날의 기분과 에너지를 기준으로 목적지를 고른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생활권 여행”의 확산으로 읽는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오래 머물지 않아도 일상의 리듬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도심과 가까운 경기 지역이 자연스럽게 주말의 무대가 되고 있다. 누군가에게 서울랜드의 화려한 빛은 지친 마음을 깨우는 알람이고, 한국민속촌의 고요한 눈길은 익숙한 시간의 결을 달리 느끼게 하는 창이 된다. 스타필드 하남의 넓은 실내는 날씨 걱정 없이 몸을 쉬게 하는 방이 되고, 화담숲의 겨울 숲길은 아무 말 없는 위로를 건네는 통로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지도를 펼쳐 겨울의 경기도를 고른다. 놀이기구의 속도를 택할지, 눈 쌓인 처마의 느린 시간을 택할지, 따뜻한 실내의 안락함을 택할지, 고요한 숲길의 숨을 택할지 저마다 다른 답을 가진다. 크고 특별한 여행이 아니어도 된다. 집을 나와 몇 시간을 걷고, 다른 공기를 마시고, 다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삶의 균형추는 조금씩 자리를 옮긴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천천히 바뀌고 있다.

최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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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랜드#한국민속촌#화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