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개성공단 물류단지 9년 만에 재가동 길”…군 조건부 동의로 남북 경협 인프라 재추진
남북 경협 인프라를 둘러싼 논쟁 지형에 다시 균열이 생겼다. 군부대 동의 문제로 멈춰 섰던 개성공단 배후 물류단지 조성사업이 9년 만에 재추진되면서, 남북 경제협력 재가동 논의에도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개성공단복합물류단지 주식회사에 따르면,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일원 21만2천663제곱미터 부지에서 추진 중인 개성공단 배후 복합물류단지 조성사업이 최근 군부대 군사시설 보호 심의에서 조건부 동의를 받았다. 사업지는 임진강 인근으로 북한 지역과 마주하고 있어 군부대 동의가 필수 요건이었다.

개성공단복합물류단지 측은 17일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복합 물류단지 사업을 추진한 지 9년 만에 군부대 동의를 얻어 사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3개월간 군부대와 추가 논의를 하고,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한 뒤 파주시와 경기도를 통해 환경영향 평가 등을 거치면 늦어도 2027년 말 착공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주 개성공단 복합물류단지는 개성공단에서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조성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생산용 원자재와 부자재, 완제품을 보관하는 물류시설과 함께, 개성공단 생산 제품과 북한의 공산품·특산품을 전시·홍보하는 판매장을 갖추는 계획이다. 개성공단 재가동 시 물류 병목을 줄이고, 남북 교역 재개에 대비한 거점 역할을 하도록 설계돼 있다.
사업 추진 배경에는 개성공단 중단과 폐쇄로 인한 기업 피해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13년 4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이어 2016년 2월 전면 폐쇄가 이뤄지며 입주기업과 협력업체들은 천문학적 손실을 떠안았다. 이에 따라 개성공단 재가동 시 물류·유통 인프라를 미리 확보해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에서 복합물류단지 조성이 추진돼 왔다.
그러나 경색된 남북 관계와 코로나19 확산, 그리고 군사적 긴장 요인 속에서 군부대 동의를 얻지 못하면서 사업은 수년간 진전을 보지 못했다. 군사시설 보호구역에 인접한 특성상 보안과 감시 체계, 시설 높이와 배치 등을 둘러싼 협의가 반복됐다는 설명이다.
사업 주체인 조합과 경기도, 파주시는 지난 2019년 8월 개성공단 복합물류단지 조성 협약서를 체결하며 행정적 뒷받침에 합의한 바 있다. 협약에 따라 경기도와 파주시는 물류단지 지정, 실시계획 승인 등 각종 인허가 절차를 신속히 처리하고, 입주 기업 편의 제공을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군부대 조건부 동의로 다시 절차가 움직이게 되면서, 이 협약에 따른 행정 지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정치권과 남북관계 라인에서는 사업 재추진을 두고 엇갈린 시선이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한쪽에서는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기초 인프라로서 상징성을 부여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남북 긴장 국면에서 대북 경협 인프라 확대가 시기상조라는 문제 제기가 뒤따를 수 있어서다.
이재명 대통령이 2019년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협약식에 참석해 남북 경제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발언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당시 “점점 나빠지는 우리 경제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남북 간 교류와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개성공단이 재개될 수 있도록 남북 간 경제협력을 재개하고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남북 경협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중앙정부 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해석으로 연결돼 왔다.
다만 군부대 동의가 조건부라는 점에서, 실제 착공까지는 여러 변수가 남아 있다. 군과의 추가 협의 결과에 따라 설계 변경이나 시설 규모 조정이 필요할 수 있고, 환경영향 평가 과정에서도 보완 요구가 제기될 수 있다.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중앙정부 차원의 정책 기조가 바뀔 가능성도 걸림돌로 거론된다.
파주시는 물류단지가 조성될 경우 개성공단 재가동 시 신속한 물류 처리가 가능해지고, 접경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접경지 특성상 안보 우려, 교통·환경 부담을 우려하는 지역 여론이 맞부딪칠 여지도 있다. 향후 파주시와 경기도의 공청회, 설명회 과정에서 주민 의견 수렴과 보완 대책 마련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치권에서는 향후 남북 관계 개선 국면이 조성될 경우, 개성공단 복합물류단지가 개성공단 재가동, 교통·물류 인프라 연계, 접경지역 개발 등과 맞물려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 차원에서 접경지역 지원 특별법이나 남북 경협 관련 예산 심의 과정에서 관련 논쟁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군부대가 조건부 동의를 내주면서 멈춰 있던 파주 개성공단 복합물류단지 조성사업은 다시 궤도에 올랐다. 파주시와 경기도, 정부와 군, 그리고 여야 정치권이 안보와 경협 사이 균형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사업 속도와 방향이 달라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