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AI 버블론 어리석다"…소프트뱅크 20조달러 승부수
인공지능 투자를 둘러싼 거품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이 AI 버블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초대형 성장 전망을 내놨다. 손 회장은 AI가 향후 10년 동안 전 세계 국내총생산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20조 달러 규모의 부가가치를 새로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AI 인프라에 10조 달러를 투입해도 반년이면 회수할 수 있는 시장이라며, 현재 논쟁의 초점인 거품 우려보다는 성장 속도와 진입 타이밍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서는 그의 발언을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본격화되는 분기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손 회장은 1일 도쿄에서 열린 국제금융회의 퓨처 인베스트먼트 이니셔티브 아시아 포럼 기조연설에서 이 같은 전망을 내놨다. 그는 AI가 창출할 20조 달러 규모의 부가가치가 세계 경제 구조를 다시 짜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10년간 10조 달러 투자 후 반년 만에 회수가 가능한 시장이라는 비유를 들며 수익성 측면에서도 거품이 아니라 생산성 혁신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디에 버블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AI 버블론에 선을 그었다.

손 회장은 특히 피지컬 AI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피지컬 AI는 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영역에 머물던 인공지능이 로봇, 센서, 자율주행, 제조 설비 등 물리적 세계의 기계와 결합해 생산과 물류, 서비스 현장을 직접 제어하는 단계로 풀이된다. 그는 피지컬 AI가 이끄는 성장 속도가 이미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단순 소프트웨어 서비스 확대를 넘어 전 산업의 자동화와 재편이 동시에 일어나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소프트뱅크가 보유하던 엔비디아 지분을 전량 매각한 결정은 시장에서 AI 고점론의 근거로 해석돼왔다. AI 가속기 수요가 단기간 정점을 찍었다는 시각과 함께 소프트뱅크가 차익 실현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손 회장은 이번 발언에서 이런 시각을 부정하며, 오픈AI와 차세대 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 차원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를 존경하며 자금 여력이 무한했다면 단 한 주도 팔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해 GPU 공급망 자체에 대한 장기 성장 기대는 유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소프트뱅크가 겨냥하는 AI 인프라의 핵심 축 중 하나는 오픈AI 투자 확대다.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가 오픈AI에 225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투자 완료 시점에는 누적 투자액이 347억 달러, 지분율이 약 11퍼센트 수준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는 범용 대규모 언어모델과 다중모달 모델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손 회장은 이 회사가 AGI로 불리는 범용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플랫폼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초대형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스타게이트 역시 손 회장이 내세운 AI 성장 전략의 또 다른 축이다. 스타게이트는 대규모 GPU 클러스터를 기반으로 차세대 AI 학습과 추론 서비스에 특화된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훈련 단계에서 막대한 연산량을 요구하는 AGI 수준 모델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기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와는 차원이 다른 전력, 냉각, 네트워크 설계가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스타게이트가 완성될 경우 특정 국가나 기업에 편중된 AI 연산 인프라 구조를 일부 완화하면서 동시에 소프트뱅크의 플랫폼 영향력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Arm의 서버용 반도체 개발 구상도 주목된다. Arm은 스마트폰과 임베디드 기기 중심의 저전력 CPU 아키텍처로 성장해 왔지만,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와 AI 워크로드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하는 중이다. 소프트뱅크는 Arm 기반 서버 칩을 활용해 AI 데이터센터에서 전력 효율과 비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GPU와 CPU, 고대역 메모리를 묶는 시스템 수준 설계와 맞춤형 칩 전략이 병행될 경우, 엔비디아와 AMD 중심의 AI 컴퓨팅 생태계에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손 회장은 기술 비전과 함께 일본의 정책과 산업 대응 속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AGI 도래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기술 발전 자체는 되돌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너무 느리다며 글로벌 AI 주도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규제 환경과 산업 구조, 인재 유입 속도 모두에서 디지털 전환이 더딘 일본이 지금과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경우 AI 성장 과실을 상당 부분 해외에 내줄 수 있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과 중국, 유럽을 중심으로 AI 인프라와 규제 틀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돼 있다. 미국은 민간 주도의 대규모 GPU 클러스터와 클라우드 플랫폼을 기반으로, 중국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AI 반도체 자립과 데이터 집적을 병행하고 있다. 유럽은 AI를 고위험 기술로 분류하는 규제체계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산업 데이터 공유 플랫폼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균형점을 모색하고 있다. 손 회장의 발언은 이런 흐름에서 일본과 아시아 자본이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로도 읽힌다.
업계에서는 소프트뱅크의 이번 행보가 AI 거품 논쟁과 별개로 인프라 장악전에 초점을 맞춘 장기 전략이라는 해석에 무게를 두고 있다. AI 모델과 응용 서비스는 빠르게 바뀔 수 있지만,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네트워크 같은 기반 시설은 일단 구축되면 수년에서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글로벌 투자업계 관계자는 AI 투자가 과열됐다는 지적이 있지만, 인프라를 선점한 사업자는 이후 시장 조정 국면에서도 지배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연설을 마무리하며 일본이여 깨어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해 일본 정부와 산업계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AGI와 피지컬 AI가 결합하는 시점이 산업 지형을 통째로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지금의 투자와 제도 설계 선택이 향후 10년 AI 패권을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소프트뱅크의 초대형 베팅이 실제 수익성과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AI 버블 논쟁이 향후 투자 흐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