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로저비비에 클러치백 수수 의혹"…김건희특검, 김기현 배우자 내달 5일 피의자 소환

정하준 기자
입력

여권 핵심을 둘러싼 각종 특검 수사가 정면 충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로저비비에 명품 클러치백 수수 의혹을 파고드는 김건희특검이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의 배우자 소환을 예고한 데 이어, 수사무마 청탁 의혹과 해병대 구명로비, 주가조작 의혹까지 한꺼번에 정조준하면서 정치권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민중기 특별검사가 이끄는 김건희특별검사팀은 11월 28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정례 브리핑을 열고 김기현 의원의 배우자 이모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다음 달 5일 오전 10시에 소환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씨는 2023년 3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서 김 의원이 당선된 뒤 김건희 여사에게 시가 약 260만원 상당의 프랑스 명품 브랜드 로저비비에 클러치백을 전달한 혐의로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이다.  

특검팀은 김 여사가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와 공모해 통일교 신도 약 2천400명을 국민의힘에 집단 입당시키고, 이를 통해 김기현 의원을 당대표로 지원했다는 의혹에 주목하고 있다. 특검팀은 그 대가로 통일교 측에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약속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내용은 11월 7일 정당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된 김 여사의 공소장에 적시됐다.  

 

김기현 의원은 배우자가 김 여사에게 로저비비에 클러치백을 선물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사회적 예의 차원의 선물이었을 뿐 부정한 청탁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특검팀은 이 씨에 대한 소환 조사를 통해 선물 전달 경위와 당시 정치적 맥락을 집중적으로 캐물을 계획이다. 특검 관계자는 이 씨 조사 결과를 토대로 김기현 의원 본인에 대한 조사 필요성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민중기 특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최근 새로 제기된 김건희 여사의 수사무마 청탁 의혹도 특검 수사 대상에 포함될 여지가 크다고 언급했다. 그는 "필요한 자료를 신속히 확보하겠다"고 밝히며 내란 관련 의혹을 수사 중인 조은석 내란특검팀과의 공조를 시사했다.  

 

문제의 의혹은 김 여사가 2024년 5월 박성재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자신의 수사 상황을 문의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배우자인 김혜경 씨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를 겨냥한 수사가 왜 진전되지 않는지 따지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이 메시지가 사실이라면, 김 여사가 자신의 명품백 수수 의혹 수사를 무마해 달라는 취지로 청탁했을 가능성이 제기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박성재 전 장관은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지휘라인을 교체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 인사 배경에 김 여사의 문자 청탁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조은석 내란특검팀은 이런 정황을 토대로 박 전 장관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김건희특검팀은 김 여사의 이른바 수사무마 청탁 정황이 김건희특별검사법 제2조 1항 12호, 14호, 15호에 각각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검법 12호는 김 여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위나 대통령실 자원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는 의혹 사건을, 14호는 공무원이 수사를 고의로 지연·은폐하거나 증거를 인멸했다는 의혹 사건을, 15호는 윤 전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이 수사나 조사를 방해했다는 의혹 사건을 지칭한다.  

 

특검팀은 이 조항들에 근거해 내란특검팀이 확보한 김 여사의 메시지와 관련 자료 전반을 받아 분석한다는 계획이다. 김건희특검은 조만간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조은석 특검팀으로부터 문제의 메시지를 비롯한 디지털 포렌식 자료 일체를 넘겨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따라 특검 수사가 검찰 고위직과 대통령실까지 뻗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다.  

 

민중기 특검보는 또 이명현 해병대특검팀이 이날로 활동을 종료하면서 규명하지 못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 의혹도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혹은 2023년 7월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이후 임 전 사단장이 지휘 책임으로 수사 대상이 되자 여러 채널을 통해 윗선에 압력을 행사해 자신을 혐의자에서 제외해 달라고 청탁했다는 내용이다.  

 

김 여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같은 해 8월 9일 카카오톡 대화방 멤버였던 김규현 변호사에게 "내가 VIP에게 얘기하겠다"며 임 전 사단장의 사퇴를 만류하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전 대표를 고리로 김 여사에게까지 구명 청탁이 전달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명현 해병특검팀은 이 전 대표가 실제로 김 여사에게 로비를 시도했는지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사를 매듭지었다.  

 

김건희특검은 특검법상 수사 대상에 이 구명로비 의혹이 포함돼 있는 만큼 수사 기한인 12월 28일까지 이종호 전 대표에 대한 조사와 관련 계좌·통신 기록 분석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특검 관계자는 "해병특검이 풀지 못한 의문점을 남은 기간 최대한 규명하겠다"고 전했다. 여권 핵심 인사를 둘러싼 군 관련 로비 의혹이 다시 부각되면서 국방·안보 분야까지 여론 파장이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편 김건희특검은 자본시장 관련 의혹 수사도 병행하고 있다. 특검팀은 이날 오전 웰바이오텍 주가조작 사건과 연루된 코스닥 상장사 DHX컴퍼니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주가조작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양남희 웰바이오텍 회장을 도운 관련자 3명의 주거지 등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특검팀은 최근 구속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1차 작전 주포 이모 씨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김 여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재판에 증거로 제출할 방침이다. 이 씨는 1차 작전 당시 김 여사 계좌를 관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과거 이 씨를 불기소 처분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특검은 이 씨가 차명 계좌를 동원해 주가조작에 관여한 정황을 새로 확보했다며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 씨와 김 여사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최근 재판 과정에서 공개되면서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를 둘러싼 법정 공방도 거세지고 있다. 이 씨는 지난 10월 17일 압수수색 현장에서 도주했다가 34일 만인 11월 20일 충청북도 충주시 국도변 휴게소 인근에서 검거됐다. 11월 22일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특검 수사는 한층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정치권에서는 김건희특검 수사가 명품 선물 수수 의혹에서 시작해 검찰 인사 개입 논란, 군 로비 의혹, 주가조작 재수사까지 전방위로 확대되는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민의힘은 "야권 주도의 정치 공세"라며 방어에 주력하고 있고, 야당은 "대통령 권력 사유화 의혹의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건희특검은 남은 수사 기간 동안 주요 피의자 소환과 추가 압수수색을 이어가며 수사 성과를 정리할 방침이다. 국회는 특검 수사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향후 정기국회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관련 쟁점을 상임위와 청문회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가능성이 크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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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김기현#민중기특별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