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재산 빅데이터로 R&D 재편…정부, 조사분석 가이드 첫 도입
지식재산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개발 전략 수립이 국가 R&D 현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식재산처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처음으로 지식재산권 조사분석 전 과정을 체계화한 가이드라인과 품질관리 매뉴얼을 함께 내놓으면서다.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특허 등 지식재산 데이터를 R&D 기획과 수행, 사업화까지 전 주기에 걸쳐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연구 현장에선 그동안 법령상 의무와 권고가 확대됐지만 구체적 절차가 모호해 발생하던 혼선을 줄이고, 동일한 기준에 따라 조사분석 품질을 관리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지식재산처는 2일 과기정통부, 국가지식재산위원회와 공동으로 지식재산권 전략적 조사분석 가이드라인과 지식재산권 전략적 조사분석 품질관리 매뉴얼을 처음 발간했다고 밝혔다. 최근 주요 R&D 관련 법령에서 지식재산 조사분석 활용이 의무 또는 권고 사항으로 포함되면서 특허 정보 수집과 분석 수요가 빠르게 늘었지만, 실제 연구기관과 연구자들이 어떤 시점에 무엇을 어떻게 조사하고 결과를 연구전략에 반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무 지침은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번 발간물은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한 첫 공식 기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새로 제시된 가이드라인은 R&D 현장에서 특허를 비롯한 지식재산 빅데이터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단계별로 정리한 일종의 실전 안내서다. 연구자와 연구기관이 지식재산 조사분석 결과를 단순 참고자료가 아닌 연구 방향 설정과 우선순위 조정, 중복 연구 방지, 경쟁 기술 파악 등 의사결정의 핵심 근거로 활용하도록 설계됐다. 예를 들어 기획 단계에서는 선행 특허와 논문을 기반으로 기술 공백 영역과 경쟁국의 출원 동향을 분석하고, 수행 단계에서는 중간 결과를 바탕으로 권리화 전략과 회피 설계를 점검하는 방식이다.
가이드라인은 지식재산 조사분석의 기본 개념을 정리한 뒤, R&D 전 주기에서 언제 어떤 유형의 조사가 필요한지 시점별로 구체화했다. 연구 과제를 기획할 때는 국내외 특허 동향과 주요 출원인, 핵심 기술 클러스터를 파악하고, 과제 수행 과정에서는 중간 성과의 특허성, 침해 가능성, 라이선스 필요 여부를 검토하는 절차를 포함했다. 성과 확산과 사업화 단계에서는 표준 특허, 분쟁 사례, 해외 진출 시 필요한 권리 포트폴리오 구성 방향 등을 분석해야 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이를 통해 연구개발 전 과정에서 지식재산 정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품질관리 매뉴얼은 지식재산 조사분석 결과물의 신뢰성과 활용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별도의 기준을 제시한다. 동일한 과제 유형이라도 기관별로 분석 범위와 방법이 제각각이었던 관행을 줄이고,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확보해 정책 판단과 연구 투자 결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매뉴얼에는 R&D 기획, 과제 선정, 수행, 성과 확산 등 각 단계 또는 목적별로 어떤 방향의 조사분석이 필요하며, 어떤 분석 항목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지 세부 항목이 담겼다. 데이터 출처의 신뢰성 검증, 검색 전략 수립, 분류 체계 일관성 유지, 재현 가능한 분석 절차 등도 품질관리 요소로 제시됐다.
정부는 이번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을 국가전략기술 중심의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지식재산 기반 인프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인공지능, 바이오 헬스, 이차전지 같은 전략 분야에서 특허 포트폴리오의 질과 범위가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R&D 기획 단계부터 권리화 전략을 내재화하는 것이 필수라는 판단이다. 기존에는 과제 종료 후 성과 정리 과정에서 뒤늦게 특허 출원을 검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앞으로는 연구 설계 단계에서부터 표적 시장과 경쟁 지형에 맞춘 권리화 로드맵을 세우는 방향으로 전환을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조선학 과기정통부 과학기술정책국장은 기술패권 경쟁 환경에서 지식재산을 곧 국가자산으로 규정하며 국가전략기술 영역에서 지식재산 품질관리와 확보가 매우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전략기술육성법과 관계법령을 기반으로 신설된 이번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부처 간 협업과 현장 소통을 강화하고, 연구개발 생태계 전반의 지식재산 관리 역량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지식재산을 법제와 R&D 지원정책, 투자 심사 기준을 관통하는 핵심 축으로 삼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연구자 관점에서의 기대도 반영됐다. 김정균 지식재산처 지식재산정책국장은 연구자들이 R&D 전 과정에서 지식재산 조사분석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표준화된 지침이 연구개발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우수 지식재산 창출의 토대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특허 동향을 조기에 파악하면 불필요한 중복 연구를 줄이고, 동시에 차별화된 연구 방향을 찾을 수 있어 제한된 예산과 인력을 전략 분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지식재산 조사분석을 미래 패권기술 선점을 위한 나침반에 비유하며 R&D와 산업 전략의 연계를 강조했다. 김현수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 직무대리는 관계 부처와 협력해 국가 R&D 전 주기에 걸친 지식재산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우수한 연구개발 결과물이 고부가가치 신사업으로 이어지는 혁신경제 체제로 도약할 수 있도록 다각도의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국가 R&D 투자가 특허 포트폴리오와 사업화 성과로 얼마나 연결되는지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평가체계도 재편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가이드라인과 품질관리 매뉴얼은 관련 부처와 연구관리전문기관, 주요 대학과 공공연구기관, 기업 등에 책자 형태로 우선 배포된다. 동시에 지식재산처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등 관련 기관의 온라인 채널에서도 열람이 가능해 현장 연구자들이 손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실제 적용 과정에서 분야별 특성을 반영한 보완 요구가 나올 수 있는 만큼, 향후 개정과 세부 해설서,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된 후속 조치 여부도 관전 포인트로 꼽는다.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지식재산 기반의 전략적 의사결정은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제시한 이번 가이드라인이 연구 현장에 안착해 R&D와 특허 전략이 동시에 설계되는 구조로 정착할 수 있을지, 또 이를 통해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산업계와 정책 당국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