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3사 결합 번들…디즈니플러스, 이용자 급증으로 판도 흔든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 경쟁 구도가 가격 중심 번들 전략과 오리지널 콘텐츠의 결합으로 다시 재편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주요 OTT 가운데 이용자 규모가 가장 작았던 디즈니플러스가 티빙, 웨이브와의 결합 이용권 출시와 자체 드라마 조각도시 효과를 동시에 누리며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통신사 결합상품 이후 OTT끼리의 번들이 본격화되면서, 플랫폼 단독 가입 경쟁에서 콘텐츠와 가격을 동시에 앞세우는 구독 구조 전환의 신호로 보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월간활성이용자수 기준 전월 대비 증가폭이 가장 컸던 플랫폼은 디즈니플러스로 12.1퍼센트 늘었다. 절대 규모로는 여전히 넷플릭스가 1444만명으로 1위를 유지했고, 이어 쿠팡플레이 819만명, 티빙 779만명, 웨이브 408만명, 디즈니플러스 296만명 순이다. 디즈니플러스는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증가율과 사용시간 성장세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여줬다.

디즈니플러스 성장 배경에는 가격 구조를 바꾸는 번들 상품이 자리한다. 티빙은 지난달 18일 디즈니플러스, 웨이브와 함께 3사 결합 이용권 3팩을 선보였다. 한 번 구독하면 3개 OTT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구조로, 각사 스탠다드 이용권을 개별로 가입하는 것보다 최대 37퍼센트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독자가 체감하는 비용을 낮추면서도 각 플랫폼은 추가 고객 유입과 이탈 방지 효과를 동시에 노리게 된 셈이다.
특히 이번 번들은 기존 국내 OTT가 통신사 요금제에 얹혀 판매되는 방식과 달리, 경쟁 OTT끼리 직접 손잡았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 티빙은 앞서 디즈니플러스 재팬 내 티빙 브랜드관을 론칭한 인연을 국내 제휴로 확장했다. 각사는 구체적 매출·가입자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번들 출시 이후 디즈니플러스 신규 설치 건수가 52퍼센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단기 수요 환기 효과는 입증된 상황이다.
콘텐츠 측면에서는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조각도시가 성장세에 힘을 보탰다. 조각도시는 국내 타깃 시리즈 중 입소문을 타면서 신규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번들로 진입한 이용자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역할을 했다. 지난달 총 사용시간 기준으로도 넷플릭스 1억2085만분이 전월 대비 6.3퍼센트 감소한 가운데, 디즈니플러스는 8007만분으로 21.5퍼센트나 늘며 뚜렷한 대비를 보였다. 티빙 4750만분은 8.9퍼센트, 웨이브 3241만분은 6.4퍼센트, 쿠팡플레이 1646만분은 18.4퍼센트 줄어 전반적인 시청 시간 둔화 국면과도 차별화됐다.
다른 주요 OTT의 흐름은 콘텐츠 라인업과 스포츠 중계 일정에 따라 갈렸다. 쿠팡플레이는 예능 저스트메이크업, 자매다방과 드라마 UDT 우리 동네 특공대 등 오리지널 콘텐츠를 한꺼번에 내놓고 F1 그랑프리, 국제축구 A매치 등 스포츠 중계를 더해 사상 처음 월간활성이용자수 800만명을 돌파했다. 반면 대형 신작 공개가 없었던 넷플릭스는 이용자가 4퍼센트 줄며 성장세가 주춤했다. 다만 이달 16일 흑백요리사 시즌2 공개를 앞두고 있어, 오리지널 시리즈가 다시 가입자 회복을 이끌 변수로 거론된다.
티빙은 한국프로야구 시즌 종료 여파로 전월 대비 이용자 증가폭이 1.9퍼센트에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KBO 시즌 종료 직후 9.8퍼센트 감소했던 것과 비교하면 하락폭이 크게 줄어든 셈이다. 업계에서는 디즈니플러스, 웨이브와의 3팩 번들이 스포츠 비수기 시기에 이탈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웨이브는 전월 대비 3.9퍼센트 감소했다. 이미 티빙과 별도의 번들을 판매해 온 데다 티빙과의 합병을 앞두고 있어, 신규 3사 번들이 가져오는 추가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평가다.
국내 OTT 시장은 이제 개별 플랫폼이 단독으로 구독자를 끌어들이기보다, 어떤 조합으로 어떤 가격대 번들을 구성하느냐가 핵심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에서는 대형 미디어 그룹이 자사 계열 서비스를 묶는 형태가 일반적이지만, 국내에서는 서로 다른 사업자가 묶이는 교차 번들이 본격화되면서 가격 탄력성이 높은 이용자를 빠르게 흡수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청년층과 다수 콘텐츠를 동시에 소비하는 헤비 유저일수록 번들에 반응하는 경향도 뚜렷하다.
하지만 번들 전략이 장기적으로 수익성과 브랜드 충성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개별 플랫폼의 단가 인하와 유사한 효과가 발생하면서 평균 수익 단가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고, 번들 해지 시 다수 플랫폼이 동시에 이탈하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또 특정 대형 사업자 중심 번들이 시장을 잠식할 경우, 중소형 OTT나 특화 플랫폼의 입지는 더 좁아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OTT 경쟁이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만으로는 차별화를 만들기 어려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본다. 통신사 결합상품, 카드사 할인에서 이제 플랫폼 간 번들까지 결합 판매가 다층화되면서, 가입자 확보 전략이 사실상 가격·채널·콘텐츠를 모두 조합하는 포트폴리오 경쟁으로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산업계는 디즈니플러스를 비롯한 주요 OTT가 번들 기반 성장세를 실질적인 수익과 장기 이용자로 연결할 수 있을지, 또 이 과정에서 추가적인 제휴와 인수합병이 뒤따를지를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