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출근길 30분 넘게 멈춘 1호선”…전장연 시위와 9억 소송 공방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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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서울 지하철 1·5호선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선전전이 진행되면서 열차 운행이 최대 30분 넘게 지연돼 시민 불편이 빚어졌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둘러싼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교통공사는 형사고소와 9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까지 진행하며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사건은 4일 오전 8시 10분께 서울 용산구 남영역에서 발생했다. 코레일과 전장연에 따르면 휠체어 이용 장애인 약 14명이 1호선 열차에 집단 탑승을 시도하면서 열차 출발이 지연됐다. 해당 열차는 약 30분 뒤인 오전 8시 43분께 남영역을 떠났고, 이 과정에서 뒤따르던 열차 17편이 10분에서 46분가량 늦게 운행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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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은 추가 집단 탑승 시위에 대비해 일부 역에서는 열차를 정차하지 않는 ‘무정차 통과’ 조치를 시행했다. 또 광운대역 등에서는 열차를 정차시킨 뒤 일반 승객을 먼저 하차시키는 방식으로 혼잡을 완화하고, 운행 지연에 따른 불편을 줄이려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같은 날 오전 7시 50분 전후 5호선 광화문역에서도 전장연이 ‘제67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행동을 벌였다. 이 영향으로 하행 열차 1편이 약 4~5분간 승강장에 정차해 승객 이동이 지연됐고, 해당 열차는 오전 7시 54분께 다시 운행을 재개했다.

 

전장연은 그동안 장애인 이동권 확대와 권리 예산 보장을 요구하며 출근 시간대 지하철 시위를 이어왔다. 지하철 역사에서 대화와 홍보를 진행하는 선전전과 함께,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승강장 특정 구간에 모여 동시에 탑승하거나 문 사이를 막아 열차 출발을 늦추는 방식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는 이러한 방식이 단순한 시위를 넘어 열차운행 방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공사는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행동에 대해 “혼잡한 출근길 승강장에서 휠체어를 특정 출입문 주변에 집중 배치하거나 출입문 사이에 정지시키는 등 고의로 열차를 지연시키는 불법행위”라고 규정했다.

 

서울교통공사는 2021년부터 이어진 지하철 시위와 관련해 형사고소 6건, 민사 손해배상 소송 4건을 제기한 상태다. 이 가운데 형사 사건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4건과 법원 재판을 앞둔 2건으로 나뉘어 있으며, 민사소송 4건도 현재 법원 심리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2021년에 제기된 형사·민사 사건 대부분은 아직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았다.

 

공사는 재판 지연이 시민 불편 장기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2024년 혜화역 엘리베이터 고의 파손 사건에 대한 민사 손해배상 1건을 제외하고는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며 “시민 불편을 줄이기 위해 검찰과 법원의 신속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교통공사가 특정 장애인 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약 9억 900만 원이다. 여기에는 시위로 인한 열차운임 반환액, 시위 대응에 투입된 인건비, 열차 운행 불가로 발생한 공사의 직접 손실 등이 포함됐다. 공사는 “여기에 시위로 인해 시민이 입은 사회적 손실까지 금액으로 환산하면 피해 규모는 수천억 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지하철 이용 중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도 크게 늘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 11월까지 최근 3년간 특정 장애인 단체 관련 민원은 6,598건에 달한다. 특히 전장연이 열차운행 방해 시위를 재개한 2025년 11월 한 달 동안 접수된 민원만 1,644건으로 집계됐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의 요구가 장애인 일자리 확보, 관련 예산안 통과 등으로 대부분 정부와 국회, 지방자치단체가 관할하는 정책 사안인 만큼, 공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사 측은 “지하철 내 시위가 여론의 주목을 받는 ‘가성비 좋은 시위’라는 이유로 이어지고 있다”며 “지하철 이용 시민을 볼모로 삼는 불법 시위는 완전히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장연 측은 그간 여러 차례 기자회견과 성명을 통해 “장애인의 이동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라며, 지하철 시위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해 왔다. 특히 예산과 제도 마련이 지연되는 현실에서, 출근길 지하철 시위가 아니면 문제 제기가 어렵다고 토로해 왔다.

 

한편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이 시위 명분으로 내세워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사업의 상당 부분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공사에 따르면 교통약자를 위한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 사업은 5호선 까치산역과 7호선 고속터미널역을 마지막으로 2025년 말까지 ‘1역사 1동선’ 기준을 모두 충족할 예정이다. 공사는 “지하철 내에서 시위를 계속할 명분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영희 서울교통공사 기획본부장(사장 직무대행)은 “장애인 인권과 이동권 확대도 중요한 가치이지만, 일상으로 바쁜 시민을 불법적 수단으로 한 시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며 “지난 5년간 이어 온 명분 없는 불법 시위는 더 이상 용인돼서는 안 되며, 지하철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을 원하는 시민들의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권을 둘러싼 근본적 대책과, 대중교통 이용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할 제도 개선 논의가 병행되지 않는 한, 전장연 시위와 공사 간 책임 공방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과 사법당국은 진행 중인 수사와 재판을 통해 지하철 시위의 위법성 여부와 손해 규모를 가를 계획이다.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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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서울교통공사#지하철1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