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직시해야"…우원식, 日대사에 조세이탄광·사도광산 전향적 조치 촉구
역사 인식과 인도주의를 둘러싼 과거사 현안이 다시 한 번 한일 관계의 시험대에 올랐다. 국회 수장과 주한 일본 대사가 직접 마주 앉으면서, 조세이탄광 유해 발굴과 사도광산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과제가 한층 부각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 집무실에서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일본대사를 접견하고, 조세이탄광 유해 발굴과 사도광산 문제 등 과거사 현안에서 일본 정부의 전향적 태도를 거듭 요구했다. 우 의장은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라도 양국이 아픈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 간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동반자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구체적 사례로 조세이탄광 유해 발굴과 사도광산 문제를 제시했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이었던 곳으로,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유산 시기를 근대 이전으로 한정해 희생의 역사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조세이탄광은 일본 야마구치현에 있던 해저 탄광으로, 1942년 수몰 사고로 183명이 사망했고, 이 가운데 조선인 희생자는 136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조세이탄광과 관련해 유골 매몰 위치가 분명하지 않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며, 현지 시민단체가 추진하는 잠수 조사와 유해 발굴 작업에 대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우 의장은 이런 일본 정부 태도를 거론하며 "한일 간 인도적 관점으로 함께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사안에서 일본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면 우리 국민도 그 진정성을 받아들이고 한일관계의 미래 지향성에 더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감한 과거사 사안일수록 인도주의와 역사적 책임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또 우 의장은 "조세이탄광 유해 발굴의 경우 우선 발견된 유골 DNA 감정에 대한 협력을 시작해야 한다"며 "일본 측이 해저 유골 수습을 위한 안정성 확보 등 정부 차원의 지원에 대해 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해주셨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유골 신원 확인을 위한 과학적 조사 협력과 해저 수습 환경 조성을 일본 정부의 최소한의 책무로 제시한 셈이다.
우 의장은 나아가 지난달 열린 한일·일한 의원연맹 합동총회를 상기시키며, 양국 국회가 DNA 정보 공유를 위해 적극 나서기로 한 합의를 언급했다. 그는 "양국 의회 교류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가까운 시일 내 제가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며 "한일의원총회 의장을 포함해 의회 지도자를 만나 한일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 기탄없이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회 차원의 외교 채널을 통해 정부의 인도주의적 결단을 견인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미즈시마 대사는 한일 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호응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을 둘러싼 전략적 상황을 봤을 때 양국은 다양한 국제 과제에서 서로 협력해야 할 중요한 파트너"라며 "양국 미래를 생각할 때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핵 문제와 공급망 재편, 동북아 안보 구도 등 복합적 환경을 고려할 때, 양국 공조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미즈시마 대사는 또 "우 의장께서 정치, 안보, 북한, 경제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는 것은 양국 국민에게 대단히 플러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사 현안을 포함하되, 정치와 안보, 경제 전반으로 협력 의제를 넓혀가야 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는 최근 한일 정상회담 등을 언급하면서 "양국 간 이렇게 긴밀한 의사소통이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미래지향적이고 안정적인 일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서로 의견을 일치한 것이며, 다양한 분야에서 의사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상외교를 고리로 외교·의회·실무 차원의 다층적 소통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미즈시마 대사는 의원 외교의 역할도 부각했다. 그는 "특히 의원 간 교류는 양국 관계가 좋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의원들의 지원이 있었다. 최근 일한 관계도 그런 연장선상"이라며 "의장님이 일본을 방문하고 참의원·중의원 의장님을 만나 뵙자고 한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며, 도쿄에도 잘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정권과 관계없이 지속돼 온 의회 네트워크가 향후 과거사 현안 해결의 또 다른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국회와 일본 대사관 간 이번 접견으로 조세이탄광 유해 발굴과 사도광산 문제는 한일 관계의 미래 구상과 직결된 의제로 다시 부상했다. 국회는 한일·일한 의원연맹 채널을 통해 유골 DNA 정보 공유와 유해 수습 협력 방안을 구체화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을 촉구하는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외교 당국도 향후 정상·장관급 협의에서 인도적 과거사 문제를 병행 논의하며, 한일 협력의 신뢰 기반을 다져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