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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도 살아남는 식중독균”…김밥 급식, 학교 안전관리 비상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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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저온 환경에서도 생존하는 식중독균이 학교 급식 현장을 위협하고 있다. 온도가 낮아지면 식중독 위험이 줄어든다는 인식과 달리, 일부 균은 고온을 견디는 포자를 형성해 계절과 상관없이 식중독을 유발한다. 최근 학교에서 제공한 김밥을 먹은 학생들이 잇따라 복통과 설사를 호소한 사례는, 겨울철에도 조리와 보관 전 과정에서 과학적 안전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업계와 보건당국은 이번 사례를 학교급식 식중독 관리체계 점검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 학교는 아침 급식용 김밥을 5개 업체에 7종류로 나눠 주문하며 분산 조달을 시도했지만, 전체 섭취자 513명 가운데 21명에서 식중독 증상이 확인됐다. 발병률은 4.1퍼센트로 집계됐다. 보건당국 조사 결과 일부 업체가 전달 전에 김밥을 미리 만들어 놓은 정황이 포착되면서, 조리 후 보관 과정에서 세균이 증식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역학조사에서는 환자 7명과 대조군 3명, 조리 종사자 4명에게서 바실러스세레우스가 검출됐다. 김밥 재료와 조리 도구, 학교 내 보존식에서도 동일한 균이 검출되면서 감염원으로 김밥이 지목됐다. 다만 김밥 보존식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섭취 내역을 정밀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식약처는 김밥 보존을 위해 급식실로 일부가 전달됐지만, 1줄만 보존식으로 남기고 나머지 6줄은 종사자가 섭취해 원인 규명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문제의 바실러스세레우스는 대표적인 포자형성 세균이다. 포자는 씨앗 형태의 두꺼운 껍질 구조로, 세균이 열과 건조, 영양 결핍 등 극한 환경을 견디도록 돕는다. 바실러스세레우스 포자는 135도에서도 약 4시간 생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상적인 가열 조리만으로는 완전한 제거가 어렵다. 고온 조리 후 식품이 실온에 방치될 경우, 살아남은 포자가 다시 발아해 세균이 증식하고 독소를 생성할 수 있다.

 

바실러스세레우스가 만드는 독소는 유형에 따라 인체에 다른 영향을 준다. 장내에서 생성되는 설사형 독소는 열과 산, 알칼리, 단백질 가수분해 효소에 비교적 민감해 체내에서 분해되기 쉽다. 반면 구토형 독소는 126도에서 90분 이상 가열해도 견딜 정도로 열에 강하고, 산과 알칼리, 소화 효소에도 높은 저항성을 보인다. 구토형 독소가 형성된 식품은 재가열로도 독소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 세균 증식을 차단하는 것이 핵심 관리 포인트로 꼽힌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바실러스세레우스는 특히 곡류나 전분질 식품에서 문제가 된다. 밥, 볶음밥, 볶음요리, 김밥 등 상온에 두는 시간이 길어지기 쉬운 메뉴에서 자주 검출된다. 조리 직후에는 안전하더라도, 실온에 오래 방치되면 포자가 깨어나 세균이 급격히 늘고, 독소 농도가 짧은 시간 안에 위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학생과 같은 민감군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균량이나 독소에도 구토, 설사, 복통이 빠르게 나타난다.

 

식약처는 학교급식과 외식업소를 대상으로 바실러스세레우스 식중독 예방 수칙 준수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곡류와 채소류는 충분히 세척한 뒤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조리된 음식은 장시간 실온에 두지 말고, 즉시 섭취하지 않을 경우 5도 이하에서 냉장 보관해야 한다. 특히 김밥처럼 저온 보존이 쉽지 않거나, 상온에 노출되기 쉬운 식품은 조리 후 곧바로 제공하는 것이 원칙으로 제시된다.

 

김밥의 경우 밥과 여러 속재료가 함께 말려 있어 세균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수분과 영양이 풍부한 데다 공기와 접촉하는 단면이 넓어, 미생물이 빠르게 자라기 쉽다. 전문가들은 김밥 속재료가 상하기 쉬운 만큼 조리 후 2시간 이내 섭취를 권고하고, 남은 김밥을 재사용하거나 장시간 보관하는 관행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학교와 단체급식소에서는 조리 시간과 제공 시간을 표준화해, 상온 노출 시간을 엄격히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례는 보존식 관리의 허점도 드러냈다. 보존식은 식중독 사고 발생 시 원인 규명과 2차 피해 방지에 중요한 과학적 근거가 된다. 보건당국은 일정량의 보존식을 규정된 온도와 기간 동안 보관하도록 지침을 제시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인력과 공간 부족, 인식 부재로 인해 규정 준수율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존식 확보가 미흡하면 역학조사 과정에서 정확한 감염원을 특정하기 어렵고, 개선 대책 설계에도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

 

글로벌 식품안전 기구는 바실러스세레우스를 포함한 포자형 세균 관리에 대해, 조리 단계보다 유통과 보관 단계의 관리비중을 높이는 추세다. 조리 후 급속 냉각, 저온 보관, 재가열 시 내부까지 충분한 온도 도달 여부 확인 등 공정 관리 기준을 세분화하고, 작업자 교육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정비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학교급식과 단체급식 현장에 적용 가능한 세부 가이드라인과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식품미생물 분야 전문가는 포자형 세균이 관여하는 식중독은 조리 온도보다 시간 관리가 중요하다며, 조리 후 2시간 이내 섭취, 필요 시 5도 이하 보관, 재가열 시 중심 온도 관리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와 급식업체가 디지털 온도 기록계나 자동 알림 시스템 같은 기초적인 위생관리 도구부터 도입한다면, 계절과 관계없이 반복되는 김밥 식중독 사고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계와 교육계는 이번 사례가 현장 관리와 제도 개선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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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러스세레우스#식품의약품안전처#학교급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