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 사이 무너진 경계”…SNS 그루밍, 디지털 성범죄 경보
소셜미디어 기반 그루밍이 청소년을 노리는 새로운 디지털 성범죄 수단으로 확산하면서 교육 현장과 플랫폼 산업 전반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권력 불균형에, 인스타그램과 스냅챗 등 메시지 중심의 폐쇄형 서비스가 결합하면서 범죄가 장기간 은폐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에서 발생한 30대 여교사와 15세 남학생 제자 사건은 디지털 성범죄 대응 체계와 청소년 보호 정책의 공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주 뉴캐슬에서 근무하던 교사 칼리 레이 37세는 지난해 10월, 자신이 맡은 15세 남학생과 시내 여러 장소에서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체포됐다. 수사 과정에서 레이는 스냅챗,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앱을 사용해 반복적으로 성적 메시지를 보내며 학생을 길들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이 공개한 메시지에는 학교 개학 전 마지막 만남을 제안하며 성적 행위를 암시하는 표현과, 관계를 정리하려는 학생에게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감정적으로 붙잡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번 사건의 핵심에는 소셜미디어 기반 그루밍이 있다. 그루밍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신뢰를 쌓으며 상대를 조종해 성적 착취로 이어지게 만드는 과정을 뜻한다. 스냅챗처럼 메시지가 자동 삭제되거나 흔적이 남기 어려운 플랫폼은 가해자가 증거를 최소화하면서 피해자를 장기간 통제하기 용이해진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폐쇄형·일시성 메시징 기술이 청소년 대상 성범죄에서 반복적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레이는 보석으로 풀려난 뒤에도 피해 학생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경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거짓 진술을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단순한 교사와 학생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넘어, 사법 방해와 2차 가해로 이어진 전형적인 디지털 성범죄 패턴에 가깝다. 신뢰 관계를 무기로 한 장기간의 통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메시지, 범행이 드러난 이후에도 진술 번복을 강요하는 행위가 연속적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건은 아동 성착취물 소지 혐의까지 포함되면서 디지털 흔적 관리의 문제도 드러냈다. 아동 성착취물은 소셜미디어, 메신저, 클라우드 저장소를 거치며 빠르게 복제·유통된다. 호주 연방법과 주요 국가 법체계는 이를 강력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탐지·차단은 각국 수사기관과 플랫폼 기업의 기술 협력이 필수적이다. 암호화 메시징과 자동 삭제 기능이 일반화된 환경에서는 인공지능 분석, 해시값 필터링 등 기술적 차단 수단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교실에서 시작돼 온라인으로 확장된 이 사건은 교육 현장의 디지털 안전망 취약성을 부각시켰다. 피해 학생은 가해자가 자신의 학교 교사라는 점에서, 연령과 권력 구조 모두에서 절대적 약자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사건은 SNS 개인 대화 공간에서 진행돼, 학교와 가정의 감시망을 모두 벗어났다. 결국 사건이 불거진 뒤에야 학교는 레이를 해고했고, 법원은 16세 미만 미성년자와 단둘이 접촉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청소년 대상 온라인 그루밍과 아동 성착취물 문제를 겨냥한 규제 움직임이 강화되는 분위기다. 유럽에서는 디지털 서비스 내 아동 보호 의무를 강화하는 규범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미국과 영국 등에서도 플랫폼에 대한 식별·신고·차단 기술 도입 압박이 커지고 있다. 반면 개인 프라이버시와 암호화 통신 보호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과도한 모니터링이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플랫폼 기업들은 인공지능 기반 자동 탐지, 신고 시스템 고도화, 청소년 계정 보호 모드 등을 도입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 교사·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범죄는 계정 실명성과 권위 관계가 결합하는 특수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교직원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윤리 교육, 플랫폼 사용 가이드라인, 신고 채널 구축이 병행될 때만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특히 폐쇄형 메시징 서비스에서의 성적 접근, 수업 외 시간에 이뤄지는 1대1 접촉은 사전에 명확히 금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주 사법당국은 레이의 주장과 달리, 피해자가 해당 학교 재학생이라는 점에서 나이를 몰랐다는 진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그는 아동 성학대, 아동 성착취물 소지, 미성년자 유인, 사법 방해 등 여러 혐의를 인정한 상태다. 정보기술과 교육 현장이 맞물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각국 교육 당국과 규제 기관이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하는 새로운 규범과 기술적 장치를 어느 수준까지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산업계와 교육계에서는 기술 발전 속도에 가려져 있던 청소년 보호 체계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