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 시대의 그림자…채팅앱 악용한 임신 사기 기승
인공지능 정밀의료와 시험관 시술, 유전자 진단 등 생식보조 기술이 빠르게 고도화되는 사이, 그 주변부를 파고드는 디지털 기반 임신 사기가 온라인을 오염시키고 있다. 난임과 임신 관련 정보를 찾기 위해 모바일 플랫폼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이를 악용한 장기매매·인신매매·성착취 연계 시도가 온라인 공간에서 반복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비대면 채널을 통한 불법 생식 거래는 디지털 헬스케어 신뢰를 무너뜨리는 요소”라며 “플랫폼 감시 체계와 법 집행을 동시에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5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한 이용자가 모바일 채팅 앱에서 받은 메시지 내용을 캡처해 공개했다. 메시지를 보낸 상대는 대화명부터 삼억 드립니다라고 적어두고, “남편 대신 임신을 시켜주면 3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자신을 중개인이라고 소개한 그는 “부인은 서울에 혼자 살고 있고, 남편이 임신 능력을 잃어 건강한 남성을 찾고 있다”며 조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상대는 유전 질환이 없고 신체적으로 건장한 남성을 우선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어 계약이 성사되면 계약금 1억 원을 즉시 송금하고, 임신이 확인되면 2억 원을 추가 지급해 총 3억 원을 보상하겠다고 구체적인 금전 조건까지 제시했다. 대화에 응한 이용자가 “혹시 캄보디아에 가는 것은 아니냐”고 묻자, 상대는 곧바로 쪽지를 삭제하고 대화방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게시글이 퍼지자 온라인에서는 즉시 장기매매·인신매매 연계 범죄라는 의심이 제기됐다.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건강한 사람만 찾는다는 점에서 장기 적출을 노리는 수법 같아 보인다”, “정말 돈이 있다면 정자 기증이나 체외수정 등 합법적인 난임 치료를 이용했을 것”, “해외 면담을 강요한 뒤 여권을 뺏고 신변을 통제하는 인신매매 패턴일 수 있다”, “신체검사를 명목으로 각종 비용을 선결제하게 하는 금융사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임신·출산 대가 제안이 대부분 사기나 중범죄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우선 임신과 출산을 조건으로 한 금전 거래는 국내 법체계에서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를 무효로 규정하고 있어, 특정인의 임신이나 출산을 전제로 거액을 제공하겠다는 계약은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 그럼에도 계약금 선지급, 비밀 면담, 외국 출국 등을 내세우는 방식은 온라인 성매매·원정출산 알선, 장기매매 사기에서 반복돼 온 전형적인 패턴이라는 지적이 많다.
의료·법률계에서는 이러한 제안이 합법적인 생식보조의학 기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난임 부부가 정식 의료기관을 통해 받는 체외수정이나 정자·난자 기증은 의사 주도 하에 신원 확인, 감염·유전 질환 검사, 동의 절차, 기록 관리 등이 엄격하게 진행된다. 반면 채팅 앱·커뮤니티를 통해 비공개로 이뤄지는 임신 대가 제안은 의료진 개입과 기록이 없어 피해 발생 시 구조나 추적이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해외로의 이동을 요구할 경우, 국내 보호 장치 밖에서 인신매매·성폭력·강제 노동 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에서 정자 기증, 대리모, 난자 판매를 둘러싼 온라인 불법 알선이 증가하면서, 규제 공백도 문제로 떠오른다. 국내에서는 상업적 대리모와 생식세포 매매가 금지돼 있지만, 해외를 통한 우회 거래와 익명 커뮤니티 게시글은 실시간 모니터링이 어렵다.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들이 의료·바이오 관련 콘텐츠에 대한 별도 신고 채널과 자동 탐지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보보안 및 디지털 성범죄 대응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와 같은 제안이 단발성일 가능성보다, 동일한 스크립트를 활용해 다수의 이용자를 노리는 조직적 시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특정 문구와 조건을 반복 사용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응답이 온 이용자에게만 추가적인 개인정보와 금융 정보를 요구하는 이중 구조의 피싱 수법이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해외 사례에서는 유전 정보나 신체 조건을 이유로 스마트워치, 헬스케어 앱 데이터를 요구한 뒤, 이를 보험 사기나 데이터 브로커 거래에 악용한 정황도 보고된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경찰과 수사기관이 디지털 성범죄, 인신매매 의심 제보를 신속하게 수사선 상에 올리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채팅 앱과 익명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유사 문구를 포털·플랫폼과 공조해 탐지하고, 계정 차단과 동시에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금융 수사 체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난임·임신을 둘러싼 절박한 심리를 노리는 온라인 제안에 대해, 이용자에게도 “선입금 요구, 해외 면담, 신체 조건 집착 등이 보이면 즉시 차단하고 신고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산업계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료 신뢰를 지키기 위해서도 이 같은 회색지대를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 생명윤리 연구자는 “생식 관련 디지털 사기는 의학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취약성을 겨냥한 범죄”라며 “기술 발전 속도만큼, 플랫폼 책임과 법 집행, 이용자 교육이 함께 정비될 때 건강한 바이오·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임신·출산을 내세운 디지털 범죄가 어디까지 확산될지, 그리고 제도·플랫폼 대응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