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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기차 2백만대 돌파”…현대차·기아, 전동화 격전지→주도권 경쟁

강민혁 기자
입력

유럽 전기차 시장이 10개월 만에 2백만대 판매를 돌파하며 사상 최대 실적 달성을 예고했다. 미국에서는 세액공제 축소 여파로 전기차 수요가 급격히 식어가는 가운데, 유럽이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전동화 전략이 교차하는 핵심 무대로 재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를 비롯한 주요 브랜드들은 각자의 전용 플랫폼과 가격 전략, 현지 생산 거점을 앞세워 유럽 전기차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 ACEA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10월 유럽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202만2천173대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26.2% 증가한 수치로 10개월 만에 2백만대 고지를 넘어섰다. 유럽의 연간 전기차 판매량은 2023년에 201만8천885대로 처음 2백만대를 기록한 뒤, 2024년에는 이른바 캐즘 국면으로 지칭된 수요 둔화로 199만3천102대로 주춤했다. 올해는 이러한 조정기를 벗어나 다시 성장 궤도에 올라선 것으로 평가된다. 유럽연합이 2035년부터 신차 탄소 배출량 100% 감축을 결정해 내연기관차 신규 판매를 사실상 차단한 정책적 환경도 전기차 수요 회복을 거들고 있다는 해석이다.  

유럽전기차 2백만대 돌파”…현대차·기아, 전동화 격전지→주도권 경쟁
유럽전기차 2백만대 돌파”…현대차·기아, 전동화 격전지→주도권 경쟁

국가별 판매 구성을 보면 독일이 43만4천627대로 최대 전기차 시장 지위를 유지했고, 영국이 38만6천244대, 프랑스가 25만418대를 기록했다. 세 나라가 유럽 전체 전기차 판매의 53%를 차지하며 수요 중심축을 형성했다. 전통적인 내연기관 강국이자 제조 거점인 이들 국가에서 전기차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완성차 업체들에는 기존 생산·판매 네트워크를 전동화 전용 체제로 재편해야 하는 압력이 한층 세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전략은 분화 양상을 보이면서도, 공통적으로 유럽 맞춤형 전기차 강화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테슬라는 유럽에서 모델3와 모델Y 중심 라인업의 성장세가 둔화하자, 가격을 낮춘 모델Y 저가형 버전을 내놓으며 수요 저변 확대를 시도했다. 중국 완성차 업계는 공급 과잉으로 압박받는 내수 시장의 출구로 유럽을 택했다. BYD는 헝가리와 튀르키예에 생산 거점을 구축해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며,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3%까지 부과한 관세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려 하고 있다. 체리자동차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에 조립공장을 세우는 것도 동일한 맥락으로 읽힌다.  

 

유럽 토종 브랜드들의 대응도 발 빠르다. 폭스바겐과 르노 등은 기존 고가 프리미엄 중심 전략에서 벗어나, 가격 경쟁력을 강화한 대중형 전기차를 잇달아 투입하며 유럽 내 시장 방어에 나섰다. 특히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점진적으로 축소되고 금리 고착화 우려가 상존하는 환경에서, 합리적 가격대를 충족시키는 모델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유럽 현지 금융기관들은 2026년 전기차 보급의 핵심 변수로 차 가격과 잔존가치, 충전 인프라 불확실성을 지목하고 있다.  

 

대서양 건너 미국 시장의 급격한 냉각은 유럽의 전략적 위상을 더욱 부각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자동차업계와 시장조사업체 추산에 따르면 미국은 세액공제 종료와 금리 부담 확대가 맞물리며 2025년 10월 전기차 판매량이 6만4천대 수준으로 급감했다. 전년 동월 대비 감소 폭은 57%에 달했다. 전동화를 성장 동력으로 삼았던 글로벌 브랜드 입장에서는, 정책과 수요가 동시에 수축된 미국을 대신할 성장 무대를 확보하는 과제가 시급해졌고, 그 공백을 유럽이 상당 부분 메우고 있는 양상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유럽 전략도 이러한 구조 변화에 맞춰 정교해지는 모습이다. 두 회사는 현재 14종의 전기차를 유럽 시장에 판매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10종이 E-GMP 기반의 전용 전기차로 집계됐다. 전용 전동화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라인업 구축을 통해 주행 효율과 실내 공간, 충전 성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디자인 측면에서도 유럽 소비자 취향을 반영한 모델을 늘려가고 있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제기된다.  

 

판매 실적도 성장세를 뒷받침한다. 2014년 유럽 전기차 판매를 시작한 현대차와 기아는 2025년 1∼10월 기준으로 각각 6만6천747대, 8만6천414대의 누적 판매를 기록했다. 두 회사의 전용 전기차 판매만 따로 보면 같은 기간 9만9천77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5만1천164대 대비 약 95% 증가했다. 연말까지 10만대 돌파가 확실시되면서,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이들 브랜드의 존재감이 한 단계 격상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판매량의 회복세 이면에 구조적 과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진단한다. 충전 인프라의 지역 간 불균형, 배터리 원자재 가격 변동,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와 보조금 논쟁 등이 대표적 변수로 꼽힌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가격 인하에만 의존하지 않고 배터리 공급망 현지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 구독형 서비스 모델 도입 등을 통해 수익성을 방어해야 하는 과제도 주어졌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유럽의 강력한 전기차 정책 기조가 시장의 단기 변동성을 뛰어넘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유럽이 내연기관 퇴출 시한을 명확히 설정한 만큼, 글로벌 완성차 브랜드 간 전기차 주도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며, 유럽 소비자의 요구는 에너지 효율과 주행 성능을 넘어 충전 편의성과 디지털 서비스 품질까지 포괄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술, 가격, 서비스가 맞물린 복합 전략을 선점하는 기업이 향후 유럽 전기차 시장을 이끌 핵심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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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기차시장#현대차#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