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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GPU 초도 물량 확보"…정부, 대학·스타트업 우선 지원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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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연산의 핵심 자원인 GPU가 국내 공공·연구 부문에 본격 공급되기 시작했다. 엔비디아가 한국에 약속했던 차세대 GPU 초도 물량이 확보되면서, 그동안 민간 대형 IT기업에 비해 연산 인프라에서 뒤처졌던 대학과 연구소, 스타트업의 격차 완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초거대 AI 경쟁에서 연산 능력이 국가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된 상황에서, 이번 조치가 국내 AI 인프라 생태계 재편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엔비디아로부터 블랙웰 아키텍처 기반 제품을 포함한 최신 GPU 1만3000여장을 공급받았다. 이는 지난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가 한국에 제공하겠다고 밝힌 차세대 GPU 26만장 가운데 첫 물량이다. 정부는 이미 국내에 수천장 규모가 반입됐고, 이달 안에 전체 초도 물량을 모두 들여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도입에는 지난 5월 편성된 1조4600억원 규모 추가경정 예산이 투입됐다. 확보된 물량에는 엔비디아의 최신 GPU인 B200과 이전 세대 고성능 제품인 H200이 일부 섞여 있다. B200과 H200 모두 대규모 언어모델과 생성형 AI 학습에 최적화된 연산 칩으로, 데이터센터용 고대역폭 메모리와 NV링크 같은 고속 인터커넥트를 통해 수천개 수준의 GPU를 하나의 거대 연산 풀처럼 묶어 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정부는 이번에 확보한 GPU를 내년 초부터 순차 배정한다. 자체 조달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학과 공공 연구기관, AI 스타트업 등에 우선 배정하고, 일부는 공공 부문의 초거대 AI 인프라 구축에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이미 글로벌 클라우드와 직거래를 통해 GPU를 도입해 온 대기업들은 자체 조달 여력이 있다고 보고 초기 배정 대상에서 후순위로 밀린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디아는 10월 APEC 기간 한국 정부와 국내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차세대 GPU 26만장 공급 계획을 공개했다. 이 계획에 따라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차그룹은 각각 5만장, 네이버 클라우드는 6만장의 GPU를 공급받는다. 정부 몫 5만장 중 이번에 확보된 1만3000여장이 초도 물량이며, 나머지 정부 물량과 민간 기업 물량은 내년도 예산 집행 일정과 기업별 수요에 맞춰 순차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공급은 국내 AI 연구 인프라의 병목으로 지적돼 온 GPU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 빅테크 기업과 달리 대학·연구소·초기 스타트업은 고가의 GPU 서버를 대량으로 확보하기 어려워, 대규모 언어모델 학습이나 멀티모달 모델 실험에서 제약을 받아 왔다. 업계에서는 정부 주도로 최신 GPU를 공공·연구 영역에 풀어놓을 경우,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보유한 다양한 주체가 대규모 실험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GPU 쟁탈전이 심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의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와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H200, B200, 블랙웰 기반 신규 제품을 선점하는 가운데, 중소 규모 플레이어와 신흥국은 물량 확보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가 국가 예산을 투입해 일정 규모의 물량을 선제 확보한 것은, 국내 AI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최소 조건을 마련한 조치로 해석된다.

 

다만 GPU 물량 확보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AI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모델 학습에는 전력 인프라, 냉각과 데이터센터 설비, 고품질 학습데이터와 소프트웨어 최적화 기술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또 공공 예산으로 도입된 GPU를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배분하고, 실제 연구 성과와 사업화로 연결할지에 대한 거버넌스 설계도 요구된다.

 

정부는 엔비디아가 약속한 나머지 GPU 물량을 내년도 예산 집행에 맞춰 순차 확보하는 한편, 공공과 민간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초거대 AI 인프라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업계는 GPU 중심의 인프라 투자가 실제 현장의 AI 서비스와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배분 구조와 운영 방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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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엔비디아#블랙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