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사용 발사체로 발사비 절감…우주항공청, 2035년 상용 우주경제 노린다
재사용 발사체 기술이 한국 우주경제 전략의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주항공청이 2035년까지 독자 재사용 차세대 발사체를 개발해 발사비를 1킬로그램당 2000달러, 약 300만원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현재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킬로그램당 발사비는 2만6485달러 수준으로, 목표가 달성되면 비용이 10분의 1 이하로 떨어진다. 발사 단가 경쟁력이 확보될 경우 통신·관측·국방 위성을 포함한 국내 수요뿐 아니라 글로벌 상업 발사 시장 진입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획을 한국형 재사용 발사체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부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재사용 발사체 중심의 중장기 계획을 공개했다. 윤 청장은 2035년까지 차세대 발사체를 재사용형으로 완성해 발사비를 1킬로그램당 2000달러대로 낮추겠다고 밝히며, 구체적인 비용 절감 목표와 일정을 제시했다. 재사용 발사체는 1단 혹은 복수 단계를 회수해 재차 사용하는 방식으로, 연료와 정비비를 제외한 구조물 제작비를 반복 활용한다는 점에서 발사비 절감 효과가 크다. 특히 이번 목표는 현재 누리호 대비 비용을 90퍼센트 이상 절감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를 갖는다.

윤 청장은 지난해 이후 거둔 성과 중에서도 누리호 4차 발사를 가장 큰 이정표로 꼽았다. 누리호 4차 발사는 민간 기업이 참여한 구조로 진행돼 정부 주도의 우주 개발에서 민간 주도의 우주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시작점으로 평가받는다. 발사 서비스, 위성 제작, 지상국 운용 등 부품 단위로 민간 기업이 참여하면서 향후 재사용 발사체 개발 과정에서도 민간의 역할이 확대될 여지를 남겼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처럼 모든 단을 소모해 버리는 일회성 발사 방식의 비용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누리호의 신뢰도는 아직 개선 과제가 남는다. 윤 청장은 현재 누리호의 성공률을 75퍼센트 수준으로 진단하며, 상업 발사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최소 90퍼센트 이상의 안정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우주항공청은 2032년까지 매년 1회 이상 누리호 발사를 이어가면서 설계 검증과 운용 데이터를 축적해 성공률을 90퍼센트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반복 발사를 통한 데이터 축적은 발사체 엔진의 연소 안정성, 구조 체력, 비행 궤적 제어 알고리즘 등 핵심 요소의 신뢰도를 높이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
발사비용 절감 전략은 공공·국방 위성 자력 발사 체계 구축과도 맞물린다. 윤 청장은 발사비를 낮추는 과정에서 공공 위성, 국방 위성을 한국 발사체로 쏘아 올리는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다수의 군사 정찰위성과 공공 관측위성이 해외 상업 발사 서비스에 의존하는 구조인데, 국내 발사체의 단가와 신뢰도가 강화되면 이 수요를 국내 생태계로 흡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발사체 기술, 위성 플랫폼, 관제 인프라가 하나의 패키지로 움직이는 구조가 형성되면 국내 우주산업의 수직 계열화와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우주항공청은 달 탐사와 심우주 통신기술 확보를 재사용 발사체 전략과 연동하고 있다. 윤 청장은 누리호와 궤도 승선을 활용해 2029년에 달 통신을 위한 달 궤도선 발사에 도전하겠다고 예고했다. 여기서 궤도 승선은 이미 확보한 누리호 성능 범위 안에서 위성을 점진적으로 고에너지 궤도로 올리는 운용 개념을 의미한다. 2029년 달 궤도선은 2032년 차세대 발사체를 사용한 달 착륙선 발사에 앞서 심우주 통신과 항법 기술을 검증하는 전 단계로 설정됐다. 달 궤도에서 안정적으로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기술은 향후 화성 탐사, 소행성 탐사 등 장거리 임무에서도 필수적인 기반 기술로 꼽힌다.
국제적으로는 미국 스페이스X와 유럽, 중국 등이 재사용 발사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스페이스X는 팰컨9 1단 회수를 통해 이미 킬로그램당 발사비를 수천달러 수준까지 낮췄고, 유럽도 아리안 차세대 발사체에서 부분 재사용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중국 역시 재사용 엔진과 수직 이착륙 시험을 연이어 진행 중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발사비와 회수 기술, 발사 빈도를 둘러싼 재사용 발사체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한국이 2035년 재사용 발사체 상용화를 노리는 만큼, 기술 성숙도와 발사 빈도 확보가 경쟁력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책 측면에서 우주항공청의 예산 성장도 눈에 띈다. 윤 청장은 내년 우주항공청 예산이 1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발사체 개발, 위성 프로젝트, 지상 인프라 구축, 인력 양성까지 포함하면 예산 운용의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발사 안전 규제, 궤도 공간 쓰레기 관리, 군사·민간 겸용 기술의 수출 관리처럼 제도와 규제가 얽힌 영역도 확대되고 있어, 기술 개발 속도와 규제 정비의 균형이 관건으로 떠오른다.
전문가들은 재사용 발사체 개발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한국 우주항공 산업의 위상이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누리호의 발사 신뢰도 제고, 민간 기업 참여 확대, 발사 수요 확보를 위한 정부 조달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계는 우주항공청이 제시한 2035년 재사용 발사체와 2032년 달 착륙선 일정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