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릭 약가 40대 책정”…정부, 1조 절감 정조준에 제약업계 직격탄 우려
제네릭 가격을 오리지널 의약품의 40퍼센트대 수준으로 낮추는 정부 약가 인하 방안이 제약업계 수익 구조를 정면으로 흔들 수 있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약제비 지출을 줄인다는 명분 아래 신규와 기등재 제네릭을 포괄하는 구조적 조정이 예고되면서, 제약사의 영업이익과 연구개발 재원, 필수의약품 공급 안정성까지 연쇄 파장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2012년 일괄 약가 인하보다 체감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 제도 개편안이 계획대로 시행될 경우 내년 하반기부터 기등재 의약품 4000여 품목의 상한금액이 순차적으로 낮아진다. 보건당국이 제시한 목표는 국민건강보험 약제비 재정을 연간 1조원가량 절감하는 수준이다. 핵심은 신규 제네릭 상한금액을 오리지널 대비 40퍼센트대에 맞추고, 기존에 등재된 제네릭 가운데 인하 대상 품목도 3년에 걸쳐 같은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내리는 구조다.

약가 인하 우선 타깃은 지난 2012년 일괄 인하 이후 별도 조정 없이 최초 산정가인 오리지널 대비 53.55퍼센트 수준에서 유지돼 온 품목이다. 다만 수급 안정성이 특히 중요한 필수 약제는 이번 조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는 3년 순차 시행을 통해 2012년과 같은 단발성 충격을 줄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제약업계는 이미 낮아진 수익성 상황에서 추가 약가 삭감이 구조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1조원 규모의 재정 절감은 제약산업 차원에서는 영업이익의 40퍼센트 이상을 덜어내는 수준으로 해석된다. 상장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약 7퍼센트로, 지난해 국내 의약품 생산실적 33조원을 기준으로 하면 업계 전체 영업이익은 약 2조3000억원 수준이다. 정부가 추산하는 약제비 절감액 1조원은 이 가운데 44퍼센트에 해당해, 업계 입장에선 사실상 절반에 가까운 이익이 소멸하는 셈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수익성은 이미 충분히 낮은 상태라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자료를 보면 위탁개발생산과 비급여의약품 비중이 높은 일부 회사를 제외한 국내 제약사 100곳의 최근 3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4.8퍼센트에 불과하다. 2012년 이전 8~9퍼센트였던 수익성이 규제와 경기 침체를 거치며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 상황에서 추가 약가 인하는 사업 지속 가능성에 직접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특히 제네릭 약가 수준을 오리지널의 40퍼센트대로 고정하는 구조가 제네릭 중심 내수 비즈니스 모델의 근간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전통제약사의 상당수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제네릭을 안정적 현금창출원으로 두고, 여기서 나온 이익을 신약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시험, 설비 확충 등에 재투자해 왔다. 약가를 원가에 가까운 수준까지 끌어내리면 연구개발과 고용을 지탱하던 핵심 재원이 빠르게 줄어들고, 그 여파가 신약 개발 지연과 글로벌 임상 축소, 첨단 바이오 분야 투자 보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필수의약품 공급망에도 위험 요인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익성이 지나치게 떨어질 경우 제약사는 상대적으로 마진이 낮은 저가 필수의약품부터 생산을 축소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 해당 품목이 제외 대상에 묶여 당장의 가격 조정에서는 빠지더라도, 전반적 수익성 악화 속에서 설비와 인력이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 이동하면 저가 필수의약품의 국내 생산 기반은 점차 약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해외 원료의약품이나 완제 수입사에 수급을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이후 나타났던 구조적 변화도 다시 거론된다. 당시 제약사들은 약가 인하로 줄어든 수익을 만회하기 위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의약품의 생산 비중을 줄이고, 비급여 의약품 또는 인하 대상에서 빠진 품목을 늘리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자체 생산 대신 수입 의약품 판매 비중을 키우는 전략도 확산됐다. 그 결과 건강보험 재정은 단기적으로 절감됐지만, 비급여 영역이 커지면서 국민 개인이 부담하는 약값은 오히려 13.8퍼센트 증가했다는 학계 분석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들은 비슷한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고 본다. 제네릭 약가가 제한적으로 책정되면 제약사는 보험약 대신 비급여 건강기능 제품, 미용·시술 관련 의약품, 수입 브랜드 유통 쪽으로 사업 무게 중심을 옮기려는 유인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기존 제네릭 기반 내수형 제약사가 자체 합성 기술과 제조 노하우를 축소하거나 해외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장기적으로 국내 의약품 개발·생산 역량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변수는 환율과 글로벌 경기다. 최근 고환율과 경기 둔화 속에 원료의약품 수입 비용과 금융 비용이 동시에 오르고 있어, 내수 중심 제약사에는 이중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약가 인하까지 겹칠 경우, 효율성이 떨어지는 국내 생산 라인을 정리하고 단기 수익성이 높은 수입 판매나 위탁생산으로 보폭을 줄이는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생산 생태계와 고용, 연구 인력 유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의 정책 방향과 별개로, 건강보험 재정 관리와 제약산업 경쟁력 사이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지가 과제로 남는다. 학계와 업계에서는 약가를 단순 삭감하기보다 연구개발 투자와 수출 성과에 연동해 차등 보상하는 방식, 필수의약품과 첨단 혁신 약제에 대한 별도 트랙 운영 등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산업계는 새로운 약가 제도가 실제로 보험 재정 안정과 국민 부담 완화, 국내 제약·바이오 경쟁력 제고라는 세 목표를 동시에 충족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