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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곳 맞춤지원” 식약처, AI·데이터로 식품위생 고도화

박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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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 식품제조·가공업체를 대상으로 한 국가 차원의 위생·품질 관리 체계가 디지털·데이터 기반으로 고도화되는 흐름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은 올해 전국 1100여 개 소규모 식품제조·가공업소를 직접 찾아가는 맞춤형 기술지원을 진행해 현장의 식품위생·품질관리 역량을 끌어올렸다고 4일 밝혔다. 업계에서는 영세업체의 반복 위반을 줄이고,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국내 식품제조·가공업소 가운데 연 매출 10억 원 미만 소규모·영세업체는 약 80%를 차지한다. 인력과 시설이 부족한 데다 식품 관련 법령과 위생 기준에 대한 이해도까지 낮아, 기본적인 세척·살균 관리부터 표시 기준까지 같은 유형의 법령 위반이 되풀이되는 구조였다. 단속과 행정처분 위주의 관리로는 구조적 개선이 어렵다는 한계도 지적돼 왔다.

식약처와 식품안전관리인증원은 이런 구조를 바꾸기 위해 현장 밀착형 컨설팅 방식을 택했다. 업체별 위반 유형과 원인을 데이터로 분석한 뒤 제조공정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실제 생산 라인에 곧바로 적용 가능한 점검 자료와 분석 실습을 제공했다. 점검 체크리스트, 공정별 중요관리점 예시 등은 현장 담당자가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디지털 자료 형태로 축적되는 구조로 설계되는 추세다.

 

기술지원은 위생 개념 교육을 넘어, 기본적인 품질 지표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자가검사 역량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자가품질검사 무상 지원과 미생물 실습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업체 직원이 일반세균수, 대장균군 등 핵심 미생물 지표를 직접 분석하고 결과를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향후 이 데이터가 축적되면, 업종·지역별 오염 패턴을 파악해 사전경보 시스템이나 AI 기반 리스크 예측 모델로 연계할 여지도 생긴다.

 

수출 식품 업계의 고질적 문제였던 해외 부적합 판정에도 보다 공정 중심의 솔루션이 제공됐다. 올해 기술지원 대상에는 조미김, 냉동식품 등 수출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품목 제조업체들이 포함됐다. 식약처는 이들 업체를 직접 방문해 제조공정별 세균 관리 포인트, 냉매제 선택과 교체 주기, 냉동·해동 과정의 온도 관리, 작업 동선과 교차오염 차단 등 세부 개선안을 제시했다. 공정 단계마다 온도·시간·위생 상태를 데이터로 기록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 감지하는 방식은 이후 디지털 센서와 모니터링 시스템 도입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규모가 작은 업체가 이런 고도화 전략을 곧바로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이번 프로그램이 현장에서 호응을 얻은 배경에는, 각 공정의 특성을 전제로 한 현실적인 개선안 제시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빈스먼스 이해민 대표는 식약처가 공정별 특성을 면밀히 살핀 뒤 제안한 개선책을 도입한 결과, 위생 관리 난도가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샤론에프앤씨 이강원 대표 역시 수출용 식품 제조현장에 바로 적용 가능한 방안을 참고해 자체 위생관리 기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교육 콘텐츠를 숏폼 영상과 사례집으로 확장해 상시 학습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12월 중 주요 위반 사례와 개선 요령을 담은 5분 위생관리 가이드 영상을 자사 유튜브 채널에 공개하고, 업종별 개선 우수 사례집도 제작해 제공할 예정이다. 짧은 동영상과 업종별 베스트 프랙티스 자료는 영세업체 종사자가 공정 전후로 반복 학습하는 데 유리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검증된 마이크로 러닝 모델과 유사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글로벌 식품 산업에서는 이미 데이터와 IT를 활용한 식품안전 관리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미국과 유럽 주요 식품기업은 제조설비에 부착된 센서 데이터를 빅데이터 플랫폼에 모아, 설비 오염 징후와 제품 이상 가능성을 AI로 예측하는 스마트 HACCP 체계를 확산 중이다. 국내에서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식품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부 도입 사례가 있지만, 영세업체까지 확산된 사례는 제한적이었다. 식약처의 이번 프로그램은 향후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위생관리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는 초기 단계로도 해석된다.

 

다만 규제와 지원의 균형, 데이터 활용에 대한 신뢰 확보는 향후 과제로 남는다. 자가검사 결과와 공정 데이터가 행정처분에 직접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경우, 업체가 데이터를 축적하고 공유하려는 유인이 떨어질 수 있다. 식품안전 관련 데이터가 건강정보, 소비자 클레임 등 다른 정보와 결합할 때 개인정보 보호 이슈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식약처가 산업계와 협의해 데이터 활용 범위와 책임을 명확히 하고, 교육·컨설팅 중심의 지원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소규모 업체가 안전하고 품질이 우수한 식품을 제조·유통하는 환경 조성이 국민 안전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하며, 현장의 애로사항을 계속 청취하고 교육과 기술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맞춤형 지원이 내년 이후 디지털 기반 식품안전 관리 체계와 연계될지, 그리고 영세업체까지 포괄하는 실질적인 식품 안전 네트워크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박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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